코로나19 백신 수급문제에 대한 야당의원들의 질타에 “충분하다”고 펄펄뛰던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흘 만인 12일 돌연 백신 추가구매 계획을 밝혔다. 그 배경은 뭘까.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사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은 11일 신년사에서 남북 협력을 재차 강조했다. “남북 협력만으로도 이룰 수 있는 일들이 많다. 평화가 곧 상생”이라며 “코로나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상생과 평화의 물꼬가 트이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 남북 협력을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띈다.

김정은 “방역 협력은 비본질 문제” 일축, 문 대통령은 개의치 않고 협력 구걸

문 대통령은 “코로나 협력은 가축전염병과 자연재해 등 남북 국민들의 안전과 생존에 직결되는 문제들에 대한 협력으로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최근 8차 당 대회에서 정부가 제안한 방역 협력 등을 “비본질적인 문제”라고 일축한 것에 비하면 균형감각을 상실한 저자세라는 비판이 거세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 총비서의 일축에도 불구, 방역·보건 협력을 매개로 한 남북 간 대화와 협력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한·미 연합훈련과 첨단무기 반입 중단을 요구하며 핵잠수함 추진 등 국방력 강화 의지를 밝힌 김 총비서를 향해 대화와 협력을 구걸하는 메시지를 거듭 발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북 방역 협력에 대한 얘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백신은 부족할 때 나누는 게 진짜”

논란의 시발점은 이인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다. 이 장관은 지난해 11월 20일 경기 고양 국립암센터 평화의료센터에서 열린 남북보건의료협력 협의체 회의 모두발언에서 "머지않은 시기에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돼 보급되면 (남북 간) 서로 나눔과 협력으로 한반도에 새로운 여건이 조성될 것"이라며 남북 보건협력 성사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장관은 지난달 18일 언론인터뷰에서도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 남북 협력이 가능하냐'는 취지의 질문에 "우리가 많아서 나누는 것보다도 부족할 때 나누는 게 진짜로 나누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에 화답하듯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달 29일 저녁 ‘동북아 방역·보건 협력체 출범을 위한 역내 국가 간 첫 실무 화상회의’를 개최하며 ‘당면한 코로나19 대응만 아니라 새롭게 부상하는 감염병의 출현 등 보건안보 위험에 대비한 중장기적인 지역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명목은 동북아 방역 협력체 출범이었지만, 북한과의 방역 협력을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북한은 이 협력체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내놓지 않았다.

두 장관의 포석 아래, 이번에는 문 대통령이 직접 ‘남북한 방역 협력’을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은 한결같이 무응답 혹은 무시로 일관하고 있다.

이 와중에 나온 정세균 총리의 발언도 주목된다.

정 총리 12일 5600만명 분 이외에 추가 백신 도입 밝혀

정 총리는 12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코로나 백신 추가 도입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했다.

정 총리는 전날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백신 접종 계획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어제 대통령께서는 모든 국민이 무료로 접종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집단면역을 형성하기에 충분한 물량인 5600만명분의 백신을 도입하기로 계약했고, 다음 달부터 접종을 시작하기 위해 총력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이어 정 총리는 "불확실성이 여전하다. 백신을 맞더라도 면역이 얼마나 지속할 지 아직 알 수 없고, 안전성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접종에 속도를 내지 못하면 짧은 유효기간 때문에 백신을 그대로 폐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끝으로 정 총리는 "정부는 국민께서 안심하고 백신을 접종하실 수 있도록 또 다른 플랫폼의 백신을 추가 도입하는 노력을 해왔고, 최근에 상당한 진전이 있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계약이 확정되는 대로 국민 여러분께 소상히 보고드리겠다"고 밝혔다.

이미 도입이 확정됐다고 공언해온 5600만명 이외에 다른 제약사의 백신을 추가도입하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총리 8일 국회서 버럭 화내며 “5600만명분이면 충분” 강조

또다른 백신에 대한 추가 도입 노력은 한번도 언급된 적이 없는 내용이다. 정 총리는 최근까지도 ‘정부가 기존에 확보한 물량만으로 충분하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심지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방역실태, 백신 수급 상황 및 접종 시기에 대한 긴급현안질문’에서 야당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며 설전을 벌이기까지 했다.

‘미스터 스마일’이라는 평소 모습과는 너무나 달라진 태도에 야당의원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는 후문이 있을 정도였다.

미국, 영국 등과 비교하며 백신 수급 논란을 지적히는 야당 의원들에게 정 총리는 "남의 나라가 하는 게 뭐가 중요한가. 한국은 한국에 맞는 전략을 갖고 있다"라며 날선 반응을 보인데 이어 "무작정 빚내서 백신을 맞아야 하나"라고 반박했다.

강기윤 국민의힘 의원이 "영국이 12월8일부터 백신 접종을 시작했고, 전세계 41개국이 접종하고 있는데 안타깝게 한국은 계획조차 잡지 못했다"고 지적하자, 정 총리는 "백신을 우리가 왜 맞나. 예방하려고 맞는 것이다. 지금 앞서 말한 나라들은 하루에 확진자가 몇 명 나오는지 통계나 알고 있나"라고 반격했다.

해외 다른 국가들이 많은 물량의 백신을 확보한 이유를 따지는 강 의원의 질의에 정 총리는 "그 나라에 가서 물어보라"며 "한국의 5600만명분은 부족하지 않다는 게 정부 판단"이라고 맞섰다.

제 3의 백신을 도입하려는 계획은 ‘북한 퍼주기’ 대비용?

빚을 내서 백신을 사는 것에 반대하며 우리 정부가 확보한 5600만명분은 부족하지 않다는 정 총리의 태도가 4일 만에 급변한 것이다. 갑자기 이렇게 태도가 바뀐 것을 두고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무관하지 않다는 추측이 정가에서 제기되고 있다.

야당의 한 관계자는 “북한에서는 방역을 도와 달라는 말이 일절 없는데, 문 대통령은 못 줘서 안달이다. 5600만명분이 충분하다고 말한 지가 엊그제인데, 또다른 백신을 추가도입하는겠다는 저의를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백신의 불확실성과 안전성의 문제가 아니라, 북한에 퍼주기용이라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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