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8일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화이자 코로나19 백신이 접종된 지 약 1달이 지났다. 코로나에 대한 인간의 ‘위대한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영국에서 출현한 코로나 변이 바이러스가 45개국에서 발견되며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백신 접종 속도가 바이러스 확산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신속한 백신접종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오히려 백신에 대한 불신이 음모론으로 포장되어 유포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대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내에서 문재인 정부가 주장해온 ‘신중론’과 맞물려 백신접종 거부 여론에 불을 지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계획된 프로젝트라는 풍설부터 백신을 접종하면 '좀비'가 될 것이라는 황당무계한 논리까지 음모론의 종류는 다양하다.

‘음모론’의 결론은 ‘백신을 맞지 말아야 한다’로 요약된다. 우리나라에 코로나19 백신이 도입도 되기 전에 음모론과 가짜뉴스가 퍼지는 것에 대한 정부의 단호한 대책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음모론의 종류와 피해를 2회에 걸쳐 취재한다.

미국 등 해외에서 유포되는 대표적인 음모론은 ‘마이크로칩 이식설’과 ‘DNA 변형설’이다.

첫째,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칩 이식설, 미국인의 28%가 신뢰

전 세계에 가장 널리 퍼져있는 음모론 가운데 하나는 ‘마이크로칩 이식설’이다. 음모론자들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코로나19 백신을 이용해 마이크로칩을 이식하려 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위치를 추적하려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5월 여론조사 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미국인 1,640명 가운데 28%가 이 음모론을 믿는 것으로 조사됐다. 공화당원 가운데에선 44%가 이 음모론을 믿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 음모론에 대해 빌 게이츠가 직접 마이크로칩 이식설을 공식 부인했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다. 영국 BBC 방송도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으며 백신 자선 사업을 해온 빌 게이츠가 음모론의 목표가 된 것 같다는 설명을 내놓았다. BBC는 “마이크로칩이 담긴 백신은 없다”면서 “빌 게이츠가 이를 계획하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도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빌 게이츠는 코로나19 대유행 기간 동안 잘못된 루머의 대상이 됐다”며 “공중보건과 백신 개발에 자선사업을 해와 표적이 됐다”고 했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도 마이크로칩 이식설은 거짓이라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둘째, 백신에 의한 인간 DNA 변형설, 인간 통제를 위해

두 번째 가짜뉴스는 유전자가 변형된 사람을 만들기 위해 백신이 활용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BBC는 이와 관련해 과학자에게 물은 결과 "백신이 DNA를 바꾸지 않는다는 답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 옥스퍼드대 제프리 알몬드 교수는 "RNA를 주사해도 인간 세포의 DNA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코로나 19 백신 후보군 25개 가운데 사람의 DNA를 바꾸는 건 없다"고 말했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이 사용한 mRNA(메신저 리보핵산)는 면역 반응을 일으키는 방법을 세포에 가르치는 방식이다. 인간의 DNA를 조작해서 인간을 통제하려는 것이 백신을 통해서 자행되고 있다는 것이 음모론자들의 주장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은 각 나라 국민의 생명이 달린 것이기 때문에 이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 검증을 한다"며 "과학적인 데이터가 검증된 뒤 승인이 되기 때문에 마이크로칩, DNA변형설 등은 모두 가짜 뉴스"라고 설명했다.

낙태 태아 조직 활용설과 자연치유설도 나돌아

이 외에도 황당한 음모론들이 많다. 코로나19 백신에 낙태된 태아의 폐 조직이 포함돼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실험실에서 배양한 배아세포 조직을 백신 시험에 활용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옥스퍼드 대학 백신 개발자들은 "복제된 세포를 가지고 연구했지만 낙태된 태아의 세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에 감염된 사람들의 회복률이 99.7%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1만 명이 감염돼도 이 가운데 30명만 숨진다는 계산이다. 코로나 자연치유설이다. 이 역시 백신접종의 불필요성을 강조하는 논점이다. 이를 근거로 음모론자들은 "코로나 19 백신을 맞는 것보다 가만히 있는 게 더 안전한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가짜뉴스이다. 제이슨 오크 옥스퍼드 대학 수석통계학자는 "코로나 19에 감염된 사람의 회복률은 99.0%"라고 말했다. 1만 명이 감염되면 이 가운데 100명이 숨진다는 설명이다.

천 교수는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코로나19 백신을 검증할 때 논문에 적혀 있지 않은 로우 데이터까지 확인하는 등 철저한 작업을 거친다"며 "효과와 안전성이 검증된 백신은 가장 중요한 코로나19 치료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 백신과 관련한 음모론이 가장 만연한 나라는 미국이다. 미국에서 퍼져 있는 음모론의 실체는 ‘그림자 정부’로 통칭되는 비밀 엘리트 그룹이 빌 게이츠에게 세계 시민들을 조종하기 위한 백신 개발과 보급에 앞장서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 득세한 ‘큐어넌’이 음모론 유포 주도

이런 음모론을 신봉하는 대표적인 단체가 ‘큐어넌’이다. 큐어넌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말부터 ‘Q’라는 닉네임이 터뜨리기 시작한 음모론 혹은 이를 추종하는 집단이다. 큐어넌은 자신이 정부 고위 공직자라고 주장하는 Q와 익명(anonymous)을 합친 단어이다. 아직 이 Q의 존재는 밝혀지지 않았다.

비밀 관료 집단인 ‘딥 스테이트(Deep State)’가 사실상 국가를 통제하고 있고 이에 맞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을 구원하려 한다는 것이 큐어넌의 핵심 주장이다. 그들은 코로나19가 조작됐다는 설, 마스크나 코로나19 백신 무용론 등 여러 음모론을 유포했다.

큐어넌이 등장해 급속히 세를 불린 건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였다. 큐어넌이 이처럼 대중적으로 성장하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방관 혹은 동조가 있었다는 게 현지 언론들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큐어넌의 주장들을 리트윗하는 식으로 지지기반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지난 6일 초유의 불법 의회 점거를 주도한 것 역시 큐어넌이란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들에게는 트럼프가 체제수호자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음모론 주도세력 ‘큐어넌’, 코로나 방역 실패한 트럼프를 추종

큐어넌은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 이유를 코로나 방역에 실패한 탓이라고 보지 않는다. 오히려 트럼프가 백신 개발을 저지했다고 믿는다. 실제 트럼프가 백신 개발을 앞장섰음에도 그런 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이들에게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다.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을 두고 지난 9일 JTBC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니까요. (온라인을 통해서) 머릿속에 들었던 어떤 생각들을 확인해 주는 그런 것들만 보게 되는 것이죠”라며 “이 음모론이 무서운 것이 한두 개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10개를 동조하게 되기는 굉장히 쉽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큐어넌에 빠져 든 20대 여성 역시 ‘페이스북’을 통해서 큐어넌을 알게 되면서 빠져들었다고 증언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내용 역시 ‘5G를 통해서 코로나바이러스가 전파된다’ ‘코로나 19는 빌 게이츠가 만들었다’는 등이었다. 이런 음모론은 SNS를 통해서 급속도로 퍼지면서 상당수 미국인들이 믿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실제 지난 연말 크리스마스에 미국에서는 5G 통신센터를 폭파시킨 범죄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역시 큐어넌의 소행이라는 설이 제기되고 있다.

전세계 확진자의 25% 차지하는 미국, 음모론 맹신하는 확증편향 커져

지난 10일(현지시간) 코로나로 인한 전 세계 누적 확진자가 9천만 명을 넘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실시간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22분 현재 글로벌 누적 확진자 수는 9천만5천787명이다. 이 중 미국이 확진자 2천225만5천827명으로 전 세계 확진자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사망자도 37만3천463명으로 가장 많다고 존스홉킨스대학이 밝혔다.

코로나 음모론이 미국에서 가장 많이 퍼져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사실이나 과학과 무관한 음모론을 맹신하는 확증편향이 코로나 극복의 최대 장애물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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