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 전라도 지역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켰다는 기우만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기우만 관련한 《매천야록》의 기술을 발췌해 소개하면서도 같은 책에 나오는 불리한 기술은 누락시켜

국가보훈처는 기우만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이미지=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는 기우만을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이미지=국가보훈처)

국가보훈처가 ‘이달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한 의병장 기우만(奇宇萬, 1846~1916)과 관련해, 《매천야록》에 나오는 동일 인물에 대한 일부 기술(記述)을 소개하면서도 불리한 기술은 소개하지 않았음이 확인됐다.

국가보훈처는 2021년 1월의 독립운동가로 호남 지역에서 의병을 일으킨 기우만을 선정했다. 국가보훈처의 설명에 따르면 기우만은 전라도 지역에서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인물로 1895년 민비 시해 사건과 단발령에 항의하는 상소를 조정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국가보훈처는 한일합방조약 체결 후 음독 자살한 매천 황현(黃玹, 1855~1910)의 저서 《매천야록》의 기우만 관련 기술을 발췌해 소개하면서 “호남에만 의병이 일어나지 않음을 수치로 여긴 사람들이 기우만을 추대하여 의병을 일으키게 했다는 것” “유학자들은 전라도에서 의병이 일어나지 않음을 부끄럽게 여거 노사학파를 대표하는 기우만더러 의병을 권했던 것 같다. 앞서 기우만은 복수토적과 단발령 반대를 주장하는 상소 운동을 전개한 바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가보훈처가 발췌한 《매천야록》의 기우만 관련 기술은 다음과 같다.

“전 참봉 기우만이 (전라도) 장성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그는 고 참판 기정진의 손자로, 가풍을 이어받아 문유로 추대받았으나 다른 재간은 없었다. 이때 호남사람들이 다른 도에서는 모두 의병이 일어났으나 전라도만이 의병이 없음을 부끄럽게 여겨 기우만에게 권유하여 기치를 세우도록 하였다.”

하지만 국가보훈처는 해당 기술 바로 다음에 나오는 기술은 소개하지 않았다.

황현은 기우만과 관련해 국가보훈처가 발췌한 기술 바로 뒤에 이어서 “그러나 그의 문족(門族)이 횡포를 자행하여 그 고을 사람들은 그들을 매우 고통거리로 여기고 있었다” “의병들이 모일 때는 모두 심의(深衣)와 대관(大冠) 차림을 하였고, 서로 만나면 맞절을 하고 길을 나설 때에도 차례로 줄을 지어 걸었다. 그들에게는 아무런 군량이나 병기, 기율도 없었으므로 그들을 보는 사람들은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광주(光州)로 가서 진(陣)을 치고 있었으나 해남(海南) 군수 정석진(鄭錫振)이 이겸제(李謙濟)에게 살해되자, 기우만은 두려움을 느껴 무리들을 해산시키고 도망을 갔다”고 적었다.

국가보훈처는 해당 기술을 그대로 소개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매천야록》에 나타난 기우만과 관련된 기술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 중인 한국사데이터베이스 공식 웹사이트(db.history.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정부는 기우만에게 지난 198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 바 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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