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에 의해 나포된 한국케미호
걸프 해역(페르시아만)에서 이란에 의해 나포된 한국케미호

이란 정부가 한국선적 유조선 ‘한국케미’를 나포한 것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모욕’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한국 시중은행들에 동결된 이란의 대한국 석유 수출대금 70억달러 문제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은 데 대한 강력한 보복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또 다시 무기력과 무능함의 극치로 대응하고 있다. 칼자루를 쥔 미국과의 협상은 시작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란 대통령이 두 번이나 친서를 보냈으나 그 사실을 함구한 채 손을 놓고 있다. 한국 선박과 국민이 억류된 것은 한미정상간에 긴급하게 논의할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수수방관이다.

국민이 인질로 잡혔는데, 문 대통령과 가장 많이 밥먹었다는 강경화는 꿀 먹은 벙어리

10일(현지시간) 최종건 외교부 제 1차관이 이란 외무부 차관을 만났으나 “이란 사법당국의 결정에 따를 것”이라는 이란 싸늘한 답변만 얻었다. 더욱이 최 차관은 2박 3일 간의 이란 방문을 마친 후 인근 카타르를 방문해 전통적인 친선 외교를 다진다고 한다. 열이 받은 이란 입장에서는 화를 북돋우는 상황이다. 한가하게 카타르 가는 길에 이란을 들른 격으로 해석될 수 있다.

문 대통령과 가장 식사를 많이 했다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꿀먹은 벙어리이다. 자국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게 외교부 장관의 책무이다. 대통령과 식사하는 것은 직무와 무관하다. 직무와 무관한 일에 가장 유능한 강 장관이 문 정부 최장수 장관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임기말 레임덕에 시달리는 문재인 정부가 급기야 초유의 외교력 공백사태에 처한 셈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시간) 이란 정부내 강경파 인사의 발언 등을 인용하면서 ‘이란이 한국케미호를 환경 오염문제로 나포한 것은 한국정부가 1개월 전에 코로나19 백신 대금 180만 유로를 송금해 달라는 이란 정부의 요청에 대해 난색을 표명한 데 대한 보복 조치’라는 내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한국케미호 나포는 한국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이란의 자산에 대한 동결을 해제하도록 강압하기 위한 경제적 조치라는 설명이다.

이 기사에서 이란 정부내 인사는 “우리의 투쟁은 결과를 얻지 못했으므로 그들(한국인들)은 모욕을 당할 필요가 있다”면서 “그들은 우리의 전자우편에 미안하다는 답만으로 해결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인사가 ‘한국인들(Koreans)’이라고 표현했으나 내용적으로 따지면 문 대통령과 정부인사들을 지목했다고 보는 게 맞다.

선박나포라는 모욕적 조치를 통해 한국정부가 대이란 경제제재를 유지하고 있는 미국 정부와 적극적 협상을 통해 이란의 석유수출대금에 대한 동결을 풀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최종건 차관이 10일 테헤란에서 만난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차관은 “한국 은행들이 미국의 제재에 대한 두려움을 이유로 이란의 현금자산을 2년 반 가까이 불법적으로 차단했다”고 밝혔다. 압바스 차관은 “(한국이) 미국의 몸값 요구에 굴복하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면서 “한국케미호는 환경오염 위협 때문에 나포됐고 이란 사법부가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으니 헛된 선동을 멀리하고 법적 절차를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경오염 문제를 명분으로 내걸면서 한국 내 이란의 현금성 동결자산 해제를 요구하는 상황인 것이다. 한국시중은행들에 동결된 이란산 원유 수출대금은 65억~90억달러(7조원~11조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4일 이란 혁명수비대 한국선박 나포, 동결 대금의 7분의 1 요구

이란 혁명수비대가 페르시아만 입구인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한국 선적 유조선 '한국케미'를 나포해 우리 정부에 비상이 걸린 것은 지난 4일 오후이다.

이 배에는 우리 국민 5명을 포함해 미얀마, 베트남, 인도네시아 선원 등 모두 20명이 승선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외교부는 사건 직후부터 이란 당국 및 주한 이란 공관과 협의을 벌이고 주한이란대사를 초치해 항의하는 등 분주한 모습이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이란이 코로나 백신 구입 비용으로 국내에 동결된 원유 수출대금을 활용하기 위해 한국과 협상을 벌이고 있었다”고 밝혔다.

한국케미 나포 사건을 이란 측과 논의하기 위한 정부 실무 대표단은 지난 7일 이란에 도착했다. 대표단은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과 아중동국과 해외안전관리기획관실 직원 등으로 구성되었다.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은 “나포 선박 석방 문제뿐 아니라 동결 자금을 활용한 백신 구매도 함께 논의를 시도할 것”이라고 했다.

이란의 요구는 당초 우리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는 조건으로 밝혀졌다. 이란은 동결 자금을 활용한 백신 구입뿐 아니라 동결 대금의 7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 달러(1조870억 원)를 의료 물자 구입에 사용하겠다고 정부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4000만∼5000만 달러어치로 추정되는 백신 구입비용을 훌쩍 넘는 액수다.

고경석 아프리카중동국장에 이어, 최종건 외교부 1차관까지 10일 출국했다.

최 차관은 출국 전 기자들과 만나 “상황이 엄중하고 쉽지 않다. 주요 인사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란 정부가 무엇을 원하는지 현장에서 들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미국과 협의해야 할 사안을 확인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측 속내 파악이 쉽지 않은 가운데, 이란이 요구하는 원유 수출대금에 대한 지급 문제는 미국과의 협상이 필요하다는 정부 입장을 재차 밝힌 것이다.

정부는 코백스 통해 이란의 백신 구매비용 대납 추진

앞서 8일 이란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는 미국‧영국산 백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수입금지 조치를 내린 데 이어, 이튿날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도 “안전한 백신을 구매하겠다”라고 밝힘에 따라, 한국 정부는 이란 측 속내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실정이다. 이란이 국제 거래 제재로 인해, 해외 백신 구매가 어려워지자 강경론을 앞세워 내부 결집에 나선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그만큼 한국 측이 제시할 수 있는 협상카드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애초 정부는 이란 원유 수입대금 지급을 위해 코로나19 백신 공동 구매 배분을 위한 국제 프로젝트인 코백스(COVAX) 퍼실리티에 이란을 대신해 납부하는 방안을 논의해왔다. 만약 이란 측이 중국이나 러시아로 수입선을 돌릴 경우 자금 활용‧지급 방안을 새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럴 경우 한국에 동결된 자금을 활용하기가 쉽지 않은 만큼, 미-이란 갈등 속에 불거진 이번 나포 사건이 자칫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0일 이란 관영 IRNA통신은 한국 대표단 방문을 알리는 기사를 통해 “그동안 양국 관계는 우호적이었으나 지난 10개월간 한국 정부가 이란에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은 입장을 보여 관계에 기복이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2018년 5월 미국 측의 이란 핵합의(JCPOA) 일방 탈퇴로 대이란 제재가 복원된 뒤 양국 관계가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국제 거래제재 영향으로 한국 내 동결자금 활용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한국 측이 대안을 마련해올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를 두고 외교부의 관계자는 “미국발 국제 재재에 동결된 이란 원유 수입대금 지급 문제를 풀기 위해선 미국의 협조가 필요한데, 이란 측 강경발언과 실제 행동에 따라 미국과의 관계가 경색될 경우, 선박 나포 협상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우려했다.

헝가리 유람선 침몰 때 다음 날 출국한 강경화, 이번에는 대미외교 노력 포기?

결국 미국의 협조를 받아내는 외교력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미국의 대 이란 금융 제재 조치로 인해 국민의 안전과 재산권이 침해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죄 하나 없는 대한민국 민간기업과 국민이 ‘무관한 희생자(neutral victim)’가 되어 볼모로 잡혀 있다.

따라서 국민의 안전이 달린 문제인 만큼 국제 상거래상 주어야 할 정당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먼저 미국으로부터 확약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외교부 수장인 강경화 장관은 아무런 노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강 장관은 헝가리 유람선 침몰 때는 바로 다음 날 현지로 출국했다. 한국케미 나포 사건도 그에 못지않게 중차대한 상황이다. 강 장관이 대미외교 교섭에 즉각 나서지 않고 있는 데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비판이 격화되고 있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이미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케미호가 나포될 수 있다는 정보를 받았었음에도 예방 조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 통상적이지 않은 신호가 포착되었음에도 우리 정부는 통상적으로 대응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강 장관은 지금이라도 결자해지하려는 자세로 이란에 달려가야 한다.

이란 대통령의 친서에도 묵묵부답인 문 대통령 때문에 선박이 나포돼?

한국과 이란 사정에 정통한 외교 소식통은 “이란이 지난해부터 동결 대금을 활용해 10억 달러어치의 의료 물자 등을 수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한국 외교부에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직접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에게 두 차례 친서를 보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통은 “문 대통령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는 답을 줬지만, 외교부가 미국의 이란 제재 위반을 우려해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에 이란 당국이 크게 실망하며 불만을 표시했다”고 했다. 결국 나포 사건은 “이란이 지금 미국에 시위하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청와대와 외교부는 친서와 10억 달러 문제에 대해 “외교 관행상 정상 간 교환 행위를 확인해주지 못한다”면서도 부인하지는 않았다.

이런 이유로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이 이란을 방문하더라도 쉽게 해결이 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로하니 대통령이 나서서 문 대통령에게 직접 해결을 요구해온 만큼, 외교부가 아니라 청와대가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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