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하기 힘든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렸으며 피해를 배상받지도 못했다"
지난 2020년 4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총 네 차례 변론 기일...日 정부, '주권면제' 근거로 각하 요구
법원, "일본 정부의 계획적이며 조직적인 비인도적 불법행위 인정된다...'주권면제' 적용 안 돼"
원고 측이 日정부 국내 자산 압류 명령 요구할 수도 있어...日 외무성, 주일 한국 대사 초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호소해 온 원고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했다. 이날 할머니 측 소송대리인인 김강원 변호사가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호소해 온 원고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으로 승소했다. 이날 할머니 측 소송대리인인 김강원 변호사가 재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법원이 사상 처음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호소인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한일 양국 간 외교적 파장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34부(재판장 김정곤)은 8일 오전 고 배춘희 씨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호소해 온 원고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반(反)인도적 행위에까지 국가 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며 원고 측 청구를 모두 인용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증거와 각종 자료, 변론의 취지를 종합해 볼 때 피고의 불법 행위가 인정된다”며 일본 정부에 대해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태평양전쟁 당시 있었다는 ‘강제연행’으로 의사에 반해 ‘일본군 위안부’가 된 원고들이 상상하기 힘든 정신적·육체적 고통에 시달렸으며 피해를 배상받지도 못했다는 것이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번 재판은 배춘희 씨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 호소인 12명이 지난 2013년 8월13일 서울중앙지법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조정을 신청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일본 정부는 조정신청서 수령을 거부했다.

이후 조정 기일이 두 차례 열렸지만 일본 정부 측이 기일에 출석하지 않아 2015년 12월20일 재판부는 ‘조정을 하지 않는 결정’으로 사건을 마무리하고 2016년 1월28일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정식으로 개시했다. 이어 재판부는 지난해 1월30일 일본 정부 측에 공시 달을 결정, 2020년 4월24일부터 같은 해 10월30일까지 총 네 차례의 변론 기일을 연 끝에 이날 이같은 판결을 내렸다. 공시송달이란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지 않고 재판에 응하지 않을 때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게재함으로써 내용이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다.

재판이 시작되자 일본 정부 측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채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국제법상의 원칙인 ‘주권면제’(국가면제)를 근거로 소송이 각하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날 판결에서 “이 사건 불법 행위는 계획적, 조직적으로 자행된 비인도적 행위로서 국제 규범을 위반했다”며 “주권면제론 등 국가 면제는 이러한 경우까지 적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이에 법원은 이 사건 재판권을 행사할 수 있다고 봤다”며 “각종 자료와 현저한 사실, 변론 전체 사실 등을 종합하면 (일본 측의) 불법 행위가 인정된다”고 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호소해 온 이들이 일본 정부를 한국 법정에 세워 승소하는 사상(史上)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데 대해 한일 양국 간의 외교적 파장은 피할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재판에서 승소한 원고 측이 배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주한일본대사관이나 주한일본문화원 등 일본 정부의 국내 자산에 대한 압류 명령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고 또 그같은 신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매우 크기 때문이다.

일본 외무성은 이날 한국 법원의 선고 직후 남관표 주일 대사를 초치하고 강력 항의했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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