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수사권 분리가 시행됨에 따라 수사권을 독점하게 된 국가수사본부(이하 ‘국수본’)가 출범하자마자 몸집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모든 형사사건에 대해 어떤 통제도 받지 않는 수사권을 행사하게 되는 국수본은 균형과 견제라는 민주주의 대원칙과 정면 충돌하는 대표적인 권력기관이다.

경찰은 이같은 부작용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 마련은 제쳐두고 대규모 승진인사를 단행, ‘공룡기구’로 키우고 있다. “누가 국수본을 견제하느냐”에 대한민국 국민의 인권과 자유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수본 핑계로 벌써 역대급 승진잔치, 경무관 승진만 100% 가깝게 늘어

경찰청은 7일 107명의 총경 승진자를 발표했다. 총경은 경찰 서열 5위 계급으로 경찰서장과 지방경찰청 과장 업무를 담당한다. 국수본 출범과 자치경찰제 시행에 따라 수사·생활 안전·여성청소년·교통 등 현장 치안 전문가를 적극적으로 발탁했다는 게 경찰청의 설명이다. 경찰 최고위직급은 치안총감, 치안정감, 치안감 경무관, 총경 등의 순이다.

하루 전인 지난 6일에는 ‘경찰의 별’로 불리우는 경무관 승진인사를 단행했다. 총경 37명을 경무관 승진 임용 예정자로 내정했다. 국수본 신설에 따라 ‘수사통’이 대거 발탁됐다는 게 경찰청의 주장이다.

올해부터 경찰이 국가·자치·수사 경찰로 나뉘면서 경무관 자리는 기존 65개에서 77개로 12개나 늘었다. 실제로 연말 및 연초에 20∼25명이던 경무관 승진자가 이번에는 37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증가율이 100%에 육박하는 셈이다.

‘경찰권력의 비대화’를 예견했던 현상을 실제로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달 9일 경찰법 전부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함에 따라 시작된 사상 유례없는 변화이다. 경찰 조직 자체가 국가경찰·자치경찰·수사경찰로 나뉘었다.

경찰 조직이 바뀜에 따라 지휘·감독 체계의 변화도 불가피해졌다. 국가경찰은 원래대로 경찰청장의 지시를 받지만, 자치경찰은 시·도별 독립 행정기관인 시·도자치경찰위원회의 관리를 받게 된다. 수사경찰은 국가수사본부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국수본의 수장인 수사본부장은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경찰청장의 지시도 받지 않는다. 그야말로 새로운 괴물권력이다. 일선 수사관들이 잘못된 판단을 하거나 비리에 연루돼도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수사본부장이 눈을 감으면 영원히 숨길 수 있는 구조이다.

한 공간에서 근무하는 수사경찰과 국가경찰, 지휘권은 서로 달라

혼란은 또 있다. 지휘권자는 제각각인데 근무는 한 공간에서 한다.

자치경찰은 관할지역 주민의 생활과 밀접한 생활안전·교통·학교폭력 업무·다중 운집 행사 안전관리 등을 담당하고, 국가경찰은 자치경찰 사무를 제외한 정보·보안·외사·경비 등 임무를 맡는다. 수사경찰은 범죄 수사를 맡는다.

역할의 구분은 생겼지만 국가·자치·수사경찰은 기존처럼 같은 경찰관서에서 함께 근무한다. 업무 혼선을 줄이고, 조직·시설 신설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다. 따라서 국민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치안 서비스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예를 들어, 긴급한 112 신고를 받으면 소속을 불문하고 가까이에 있는 경찰관이 출동해 초동조치를 하는 식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자치경찰의 방범·순찰·교통·여성·청소년 등과 관련한 치안 서비스는 지방자치단체 업무와 바로 연결이 된다"며 "지역 여건에 맞게 주민 요구에 반응하고 정책을 수립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복잡한 조직으로 분화하면서 경찰 내부에서조차 개정된 경찰법에 대해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자조가 터져나오는 형국이다.

경찰청장도 못말리는 국수본의 수사권 독점

법 개정 목적은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지는 경찰 권력을 분산·통제하려는 것이지만, 오히려 조직이 더 비대해졌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특히 국수본은 한국판 FBI(연방수사국)'로 불리는 수사전담기구이다. 경찰 내 모든 수사를 총괄하는 부서로, 치안행정을 담당하는 일반 경찰과 분리돼 수사 업무를 전담하게 된다. 국수본은 경찰청 산하 조직으로, 본부장은 경찰청장(치안총감) 바로 아래 계급인 치안정감이 맡는다.

권력 분산의 취지에 따라 경찰청장은 국수본 수사에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할 수 없다. 다만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의 수사'에 대해서는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했다.

국수본은 원래 국가정보원이 담당하던 국내 대공 업무까지 넘겨받았고,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검사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게 됐다. 책임수사체제가 구축될 것이라는 기대감과 달리 출발은 순조롭지 못하다.

국수본은 4일 출범, 초대 국수본부장은 아직 미정

국수본이 지난 4일 공식 출범했지만, 초대 국수본부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업무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수장없이 간판부터’ 먼저 건, 반쪽짜리 출범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4일 국수본 현판식에 참여한 김창룡 경찰청장은 "형사사법체계 개혁에 담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국민이 부여한 권한을 남용하지 않겠다"며 "인권을 최우선 가치로 하는 공감받는 수사, 공정성과 책임성을 갖춘 전문수사로 국민 눈높이에 부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수본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이유는 올해부터 경찰이 ‘수사종결권’을 보유하기 때문이다. 경찰은 앞으로 범죄 혐의가 없는 사건은 이제 검찰로 넘기지 않고, 수사를 종결(불송치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국수본을 이끌어갈 초대 국수본부장이 현재 공석이다. 국수본부장은 경찰청장(치안총감)의 바로 아래 직급인 치안정감으로 임용되며, 임기는 2년(단임)이다.

초대 국수본부장은 현재 외부 선발 절차를 진행 중으로 한 달 뒤에 선발 절차가 마무리될 것으로 보인다. 국수본 초기 운영은 ‘직무대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직무대리는 최승렬 경찰청 수사국장이 맡았다.

국수본부장 요건으로는 △10년 이상 수사업무 종사한 고위공무원 △판사·검사·변호사 10년 이상 △공공기관 법률 사무에 10년 이상 종사한 변호사 △법률학·경찰학 분야 교수(10년 이상) 등이다. 현재 고위 경찰 출신의 법조계 인물 등이 물망에 오른다.

검찰개혁한다고 혈안이 됐던 文 정부, ‘경찰의 권력 독점’ 만들어

하지만 국수본을 바라보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눈길은 따갑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경찰 권한의 분산·견제나 민주적 통제 강화라는 경찰개혁의 원칙이 관철되지 않았다며 개정 법을 비판하고 있다.

참여연대 등이 참여한 경찰개혁네트워크는 "경찰의 권한과 기능을 분산하는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거꾸로 권한만 늘린 것"이라며 "애초에 정부·여당에 권력기관인 경찰의 권한을 분산·통제할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년 내내 윤석열 총장을 쫓아내는 데 혈안이 된 문재인 정부가 오히려 경찰의 권력은 더 늘리고 말았다. 이번 정인이 사망 사건을 통해서 경찰의 무능이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에서, 검찰개혁보다 경찰개혁이 먼저다”라고 비판했다.

금태섭 전 의원, “정인이 구할 기회 놓친 경찰이 수사 덮어도 통제불능”

금태섭 전 의원은 지난 4일 JTBC 토론회에서 통렬한 비판을 가했다.

“(검경수사권 조정으로) 검찰이 직접 수사를 못하는 대신에 경찰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정인이 사건만 해도 그렇다. 경찰에서 3번이나 정인이를 구할 기회가 있었는데, 못하고 말았다. 지금은 검찰이 경찰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데, 검경수사권 조정이라는 미명하에 경찰을 통제할 권한을 다 뺏어가면 앞으로 경찰을 통제할 수 없게 된다.”

국수본이 수사를 덮더라도 검찰이 아무런 통제를 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경찰청장은 국수본 수사에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할 수 없지만,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는 긴급하고 중요한 사건의 수사'에 대해서는 지휘·감독할 수 있도록 예외 조항을 뒀다.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에 벌어졌던 것과 유사한 권력투쟁이 재연될 소지도 배제할 수 없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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