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로 6일 퇴근길 교통대란, 대중교통도 ‘올스톱’...“출근길은 더 문제”
기상청 ‘대설’ 미리 경고했는데...눈 다 오고 시작된 정부의 ‘늑장 제설’
불만 터뜨린 시민들 “도로위에 경찰도, 제설차량도, 염화칼슘도 없었다”
“이럴 거면 왜 보내나”...한참 뒤에 ‘재난문자’ 보낸 서울시
불과 1년 전 “블랙아이스 철저 대비”...文의 ‘국민안전’ 이번에도 공염불

“여의도에서 오후 7시에 출발했는데 흑석동 집에 도착하니 자정이 지났습니다.”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는 L씨는 지난 6일 퇴근길에 겪은 끔찍한 교통 체증을 이렇게 털어 놨다. 평소에는 20여분 안팎이 걸린 불과 8km 남짓한 거리를 5시간이 걸려서 도착한 것이다. L씨가 수 시간 정체를 견디고 올림픽도로를 빠져 나오자 그 뒤로 더 큰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집 앞까지 가기 위해 오르내려야 하는 경사로가 모두 눈으로 덮여 있었기 때문이다. 빙글빙글 돌아 겨우 우회로를 찾아 냈다.

이는 결코 과장 섞인 경험담이 아니다. 이러한 사례들이 뉴스와 포털사이트 댓글에서 줄을 이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서초구로 퇴근하는 또 다른 직장인 A씨도 회사에서 나와 7시에 버스를 탔지만 2시간 30분이 지난 9시 30분에 중간 지점인 한남대교에 서 있었다.

대설로 6일 퇴근길 교통대란, 대중교통도 ‘올스톱’...“출근길은 더 문제”

6일 저녁 수도권에 내린 대설로 인해 서울 도심의 주요 도로와 경기도 고속도로 등지에서 극심한 교통 체증이 발생했다. 서울에서 가장 많은 눈이 내린 서초구에는 최고 11.7cm의 눈이 쌓였고, 수도권 전체 에서는 경기 광주가 12.8cm로 가장 많은 눈이 내렸다.

퇴근길 시민들은 큰 불편을 겪었다. 차선이 보이지도 않는 눈 덮인 도로 위로 차량들이 뒤엉켜 있어 한 자리에 서서 30분 정도씩 정차한 것이 부지기수였다. 미끄러진 자가용과 버스를 시민들이 함께 밀기도 했다. 도로 곳곳에서 추돌 사고가 잇따랐지만 수습하기 위한 차량들이 접근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대중교통도 ‘올스톱’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짧은 구간 버스를 30분간 기다린 것은 예사였고 광역 버스는 116분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지하철의 경우 정부가 코로나 확산 방지를 위해 일부 노선에서 운행량 감축과 운행시간 단축을 함에 따라 뒤늦게 찾은 일부 시민들이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또한 경기 용인시에서 운영 중인 용인경전철은 오후 9시 30분부터 새벽까지 운행을 중단했다.

폭설에 한파가 겹쳐 7일 출근길은 더 문제다. 오전 6시 현재 서울 전역 등 수도권에 한파경보가 발효된 상태이다. 체감 기온은 영하 24도로 밤새 내린 눈으로 도로가 결빙될 것이 예상되므로 교통 혼잡과 안전 사고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기상청 ‘대설’ 미리 경고했는데...눈 다 오고 시작된 정부의 ‘늑장 제설’

그렇지만 시민들을 더욱 짜증나게 한 것은 정부가 이같은 상황을 예견하고 사전에 대비하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기상청은 6일 오전에 이미 이날 밤부터 서울 전역에 눈이 내리고 이에 따라 심한 교통 혼잡이 발생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기상청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늘 밤부터 내리는 눈은 영하권 에서 내리고 서울 포함 수도권은 퇴근 시간대와 겹치면서 빙판길과 차량 지체가 심할 수 있다”며 “크고 작은 교통사고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니 운전할 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에서 눈이 내리기 직전인 오후 5시 무렵에도 수도권 전역에 대설주의보를 발효했다.

하지만 정부 대응은 미흡했다. 당국의 제설 작업과 안전 조치가 늦었다. 예방적 제설에 실패했다. 관련 당국은 적설이나 결빙이 우려되는 대기 여건(온도와 습도)이 형성될 경우 교통로에 미리 제설제를 살포 해야 하는데, 작업이 늦게 시작돼 제설차량이 도로에 제대로 진입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교통정리하는 경찰도 거의 보이지가 않았다. 

“도로위에 경찰도, 제설차량도, 염화칼슘도 없었다”...한참 뒤에 ‘재난문자’ 보낸 서울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도로 위에서 몇시간째 발이 묶였던 시민들이 글을 올리고 이구동성으로 “도로위에 경찰도, 제설차량도, 염화칼슘도, 아무것도 없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퇴근길이 시작된 오후 6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대략 5시간 내외의 시간 동안 도심은 행정기능이 사실상 사라진 ‘무정부 상태’나 다름 없었다.

서울시의 대응은 더욱 더 기가 막히다. 국민재난안전포털(www.safekorea.go.kr)을 확인한 결과, 이날 서울시가 서울시민 전체를 대상으로 보낸 ‘재난문자’는 단 한 건에 불과했고, 그마저도 당면한 상황 대응 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정말로 한심한 일은 그 문자메시지가 눈이 시야를 가릴 정도로 내리고 있던 오후 8시 28분에 전송됐다는 사실이다.

해당 문자메시지의 내용은 “금일 많은 눈과 한파에 따른 도로결빙으로 출근길 교통혼잡이 예상되니 대중 교통을 이용해주시고 내집앞 눈치우기에도 적극 동참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것이었다.

불과 1년 전 “블랙아이스 철저 대비”...文의 ‘국민안전’ 이번에도 공염불

정부는 매해 겨울철 교통안전 대책을 강조했다. 특히 지난 2019년 12월 경북 상주~영천고속도로에서 블랙아이스(도로 위 결빙)로 인해 차량 44대가 연쇄 추돌한 사고로 7명이 목숨을 잃자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 안전은 국가의 무한 책임”이라고 강조하고 관계 부처에 겨울철 교통안전 긴급 점검과 블랙아이스 안전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하지만 얼마후 2020년 2월 순천~완주고속도로 사매2터널에서 5명이 사망 하고 43명이 부상한 사고가 다시 일어났다.

문 대통령은 국민안전을 국가의 최우선 가치이자 무한 책임이라고 언급했다. 물론 정부가 모든 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가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막지 못하는데, 모르는 문제가 닥친다면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또한 기본적인 문제를 예방하지 못하는데 분초를 다투는 긴급한 문제에는 어떻게 대응 할까. 사후 관리 보다 사전 예방이 우선이다. 겨울에 큰 눈이 올 수 있다는 것은 누구든지 예상 가능하다. 기상청은 일주일 전에 예보하고 당일에도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과하다 싶을 만큼”이나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라는 표현을 자주 활용했다. 코로나 대응 조치, 예방 점검, 경제 챙기기, 심지어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썼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 지켜지고 있는가. 정말 또 큰 사건이 터지면 그 때는 어떻게 할까. 국민들은 “수 차례 대응을 지시했다”는 대통령 의 변명이 코로나 백신 확보 문제와 동부구치소 집단 감염 사태 두 가지 경우로 이미 충분하다.

이세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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