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서양 세력과 일본이 조선을 향해 돌진하고 있을 때, 조선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적의 침략이 전개되기 전에 스스로 멸망의 길로 질주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일본에게 죄가 있다면 그런 나라를 슬쩍 밀어 자멸을 부추긴 죄밖에 없다.100년 전, 150년 전 우리의 모습이 그러했는데 뭘 어쩌자고 일제 탓, 외세 탓을 염불처럼 되뇌이며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으려는 것일까?

#. 한국인의 원형질을 추적하는 대작업

1006페이지, 가히 충격적인 ‘벽돌 책’, 아니 ‘목침용 책’이다. 저자 함재봉 교수의 ‘한국사람 만들기’ 세 번째 역작이 드디어 발매되었다. 함재봉 교수는 지난 2017년부터 한국인의 원형질을 추적하는 『한국사람 만들기』라는 대작업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 결실인 『한국사람 만들기1』(452쪽)의 주제는 친중 위정척사파다. 조선의 종주국인 중국을 추종하면서 그들의 사상과 문명을 추종하는 중화(中華)주의와 주자성리학의 도를 끝까지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사람들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분석하는 작업이었다.

두 번째 결실인 『한국사람 만들기2』(544쪽)는 일본의 운요호(雲揚號) 도발로 전개된 강화도조약 체결 이후 일본을 통해 개화를 추진하려 했던 친일개화파를 다루었다. 조선의 인재들이 일본으로부터 근대 산업, 군사, 교육, 법 뿐만 아니라 ‘독립’이라는 개념까지 배운 사실을 이 책은 상세하게 추적 소개한다. 또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성공시킨 이유, 그리고 친일 개화파가 이 땅에서 번창하지 못하고 좌절한 과정의 정밀 분석기다.

이번에 발간된 『한국사람 만들기3: 친미기독교파1』(1006쪽)은 친미기독교파의 생성과 그들의 철학, 가치관, 사고방식, 그들이 우리 역사에 끼친 영향을 치밀하게 추적·관찰·분석하는 걸작이다. 미 칼튼대학애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함재봉 교수의 놀라운 통찰력으로 친미기독교파가 한국인의 원형질 형성에 미친 파장을 다층적으로 분석 제시한다. 제목이 친미기독교파1이라고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만간 친미기독교파2 발간이 기대된다.

#. ‘미국’이란 신문명과의 조우는 중국의 중매 덕분

제3권은 연대기로 따지면 1884년 갑신정변부터 1894년 청일전쟁 전야까지를 다룬다. 이 시기를 저자 함재봉 교수는 ‘조선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정의한다. 그 시기에 알렌과 언더우드, 아펜젤러와 스크랜튼, 푸트 공사와 포크 소위 등 낯선 미국인들이 우리 역사에 대거 등장한다. 효종 시절 네덜란드 사람 벨테브레와 하멜의 등장, 조선에 밀입국하여 박해를 당한 프랑스 신부들처럼 밀입국이나 표류 같은 비공식 방법이 아니라 합법적 방식으로!

조선과 미국 간 수교 통로를 열어준 것은 중국이었다. 청나라의 북양대신 직예총독 리훙장(李鴻章)이 중매를 선 덕이다. 조선에 서양 세력을 끌어들여 상호 견제와 균형을 통해 조선을 보호하고, 종주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한 균형외교 전략이었다. 리훙장은 작심하고 미·영·독·불 등 열강국과 조선의 수호조약 체결에 앞장섰는데, 알고 보니 이것 또한 영국의 작전이었다.

지구 곳곳에서 러시아와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던 영국은 러시아의 한반도로의 남진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과의 수교를 추진한다. 자신들이 1번 타자로 나서면 러시아가 흥분하여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 따라서 미국 등을 떠밀고, 청나라를 앞세워 조미 수교를 먼저 추진토록 시동을 걸어준 결과물이다.

1882년 미국과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은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그저 조선 땅이 아닌 중국 땅 톈진(天津)에서, 조선 대표가 아닌 리훙장과 미국 특명전권대사 슈펠트 제독이 조약문을 만들어 주었다. 조선은 그 조약문에 서명만 함으로써 발효된 진기한 조약이었다.

만약 미국이란 신문명이 조선에 들어오는 통로를 중국이 활짝 열어주지 않았다면 중화의 나라 조선의 운명은 어떤 변고를 맞게 되었을 것인가. 이 점 또한 가상 역사로서 추론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제다.

"한국사람 만들기"라는 대작을 집필 중인 함재봉 교수.
"한국사람 만들기"라는 대작을 집필 중인 함재봉 교수.

 

#. 선교사들이 목격한 ‘헬 조선’

조선에 왔던 외국인들이 관찰한 조선은 그야말로 헬 조선, 지옥의 세계였다. 관료들에게 월급을 못 주는 나라가 조선이었다. 국가에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관료들이 월급을 못 받으니 그들은 백성을 악착같이 착취 수탈한다. 국왕 부부는 궁궐에 앉아 관직을 팔고, 돈을 주고 관직을 산 관리들은 본전을 뽑기 위해 작심하고 백성을 등쳐먹는다. 오죽했으면 서양 관찰자들은 조선의 관리를 ‘면허받은 흡혈귀’라고 기록했겠는가.

조선이 ‘지옥’이었던 진짜 이유는 노예제 국가였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노예제 없는 나라가 어디 있었겠는가마는, 조선은 좀 독특했다. 다른 나라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다른 나라 백성들 잡아다 노예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 사례였다. 조선은 평화를 사랑하는 선비의 나라였기에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따위의 행위는 사양했다. 아니, 군사력이 형편없어 침략은 꿈도 못꾸는 불쌍한 존재들이었다.

그렇다고 노예가 필요 없는 사회는 아니었으므로 기형 변태적인 노예제를 정착시킨다. 같은 언어, 같은 핏줄의 동족 중에서 약자들을 노예로 삼아 부려먹는 지구상 최악의 노예제 국가로 악명을 날리게 된다. 한 시절 전체 인구의 40%가 노예였던 나라. 양반이 백성을 착취해야만 국가로서의 존립이 가능한 인류 역사상 최악의 헬 조선이 우리의 과거 모습이었음을 함재봉 교수는 적나라한 필치로 폭로하고 있다.

#. 기독교=자유민주주의=자유시장주의

조선에 파송된 미국 선교사들은 복음주의 개신교(Evangelical Protestantism)라는 지극히 미국적인 기독교를 조선에 전파한다. 칼뱅주의와 복음주의가 혼합된 것이 미국의 복음주의 개신교다. 미국 특유의 개신교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종교 안에 체화하고 있었다. 사실 미국인들에게 민주주의와 자유주의, 기독교는 동일한 개념이었다. 기독교의 정치적 표현이 지유개인주의,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주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사상으로 무장한 미국 선교사들이 주자성리학자들의 유토피아이자 백성들에겐 지옥인 조선의 근본을 흔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근대 의료체계를 수립하여 육신이 병든 자들을 치료해 목숨을 살렸다. 근대식 교육기관인 배재학당·이화학당을 설립하여 영어를 교육하고 근대인으로서의 가치관을 뿌리내렸다. 조선의 카스트 제도인 반상의 신분제, 남녀 차별, 축첩제도를 무너뜨리는 데 일조한 것도 미국 선교사들이다.

한글은 1446년 세종이 창제했지만, 조선의 지도층은 이를 철저히 외면했다. 모든 정부 공문서는 한문이었다. 중국 문자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자신들만 중국 문자를 익혀 문명생활을 만끽했다. 95%에 달하는 백성들은 문맹의 야만 상태로 방치해둔 채 말이다. 한글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의 연구와 보급을 통해 교육혁명을 일으킨 주인공은 미국 선교사였다.

미국 선교사들은 절대다수가 백인 중산층 출신의 주류 교단 젊은이들로서 철두철미한 칼빈주의적 청교도 정신을 한국에 이식시켰다. 조선 최초로 선거와 자치를 이 땅에 소개한 것도 미국 선교사였다. 장로교에서는 회중이 장로를 선출하고 장로가 목사를 초빙한다. 모든 결정은 장로회(presbytery, consistory)에서 결정한다. 조선의 장로교도 미국 선교사들의 지도를 통해 선거를 하여 장로를 선출하고, 임기를 정하고, 자치를 시행했다. 민주주의라는 낯선 제도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미국인 선교사 중 최초로 조선 땅을 밟은 언더우드. 언더우드 가문은 4대에 걸쳐 114년 동안 한국을 위해 헌신했다.
미국인 선교사 중 최초로 조선 땅을 밟은 언더우드. 언더우드 가문은 4대에 걸쳐 114년 동안 한국을 위해 헌신했다.

#. 신석기·청동기 시대를 그리워하는 운동권 사람들

무슨 까닭인지 한국인들은 21세기 개명천지 대한민국을 헬 조선이라고 비하한다. 1인당 소득 3만 불 시대, 전 국민이 과체중을 조절하기 위해 연간 수 조 원을 다이어트와 헬스와 뷰티에 소비하는 나라가 지옥인가. 아니면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삶의 질조차 유지할 능력이 없어 수많은 인구가 굶어죽고, 죄 없이 끌려가 공정한 재판 절차도 없이 매 맞아 죽고, 목이 잘려 거리에 내걸리고 몸뚱이는 개들이 뜯어먹는 조선 후기가 진짜 지옥인가?

이런 질문에 먹물 주자성리학자의 정신적 후예인 주사파 운동권들은 뭐라 답할까? 아마 물질문명에 혼을 빼앗긴 현재의 대한민국이 진정한 지옥이라고 타박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왜냐. 주자성리학의 원단인 유교는 요순시대를 이상사회로 상정한 시스템이니까. 요순시대는 문명사적으로 구분하면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다. 그 시대에 오순도순 살던 도덕사회를 그리워하는 이념분자들이 바로 그들이니까ㅣ.

조선 주자성리학자들의 위정척사론과 586 운동권 그룹의 사고체계, 즉 도덕지향성과 이분법적 선악관이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사실을 분석한 논문이 화제다(채진원, 「586 운동권 그룹의 유교적 습속에 대한 시론적 연구」, 『오토피아』35권 2호, 41~79쪽). 주사파 운동권들이 주자성리학의 후예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일본은 ‘황금의 10년’ 조선은 ‘잃어버린 10년’

조선에 친미 기독교파가 형성되던 1880년대는 전근대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황금기였다. 청나라는 양무운동을 통해 나름대로 자강을 추진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으로 부국강병을 추진하여 활화산처럼 아시아의 맹주로 발돋움했다.

세계의 모든 나라들이 절대왕정을 폐지하고 입헌군주제, 공화제를 도입하여 근대국가 건설을 위한 총력전을 전개하던 그 황금의 시기에 조선은 고종과 민왕후, 민씨 척족세력 합작으로 후진 기어를 넣고 중세 봉건을 향한 대질주를 시작한다.

고종과 민 왕후 공동 통치기였던 1884년부터 1894년까지의 10년은 가히 아포리아(aporia) 상태였다. 배가 좌초되어 손을 쓸 수 없는 상태, 어떤 수단이나 방법조차 동원하기 힘든 아비규환의 상태였다는 뜻이다. 개국 초기만 해도 송나라의 선진 강남농법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여 문명국으로 발돋움했던 조선이 이토록 심하게 망가진 근본 원인은 폐쇄, 쇄국, 외국과의 문물교류 단절 덕분이다. 주자성리학적 질서에 의해 빚어진 중화 문물 이외의 외래 문명은 들어올 수 없는 완전 진공 상태가 된 것이다.

내치만 실수한 것이 아니라 외교에서도 러시아를 한반도로 끌어들이는 작업에 모든 정열을 바쳤다. 그 파국의 종착역에 이르는 ‘잃어버린 10년’의 지리멸렬하는 조선의 모습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1852년, 조선에서는 고종, 일본에서는 메이지 천황이 태어났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였고, 3년의 시차를 두고 최고 통치자로 즉위했으며, 친정(親政)을 통해 권력을 행사한 시기도 비슷했다. 그런데 고종이 통치한 조선은 폐망했고, 메이지 천황이 통치한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 발돋움했다. 대체 무슨 차이 때문이었을까?
1852년, 조선에서는 고종, 일본에서는 메이지 천황이 태어났다. 두 사람은 동갑내기였고, 3년의 시차를 두고 최고 통치자로 즉위했으며, 친정(親政)을 통해 권력을 행사한 시기도 비슷했다. 그런데 고종이 통치한 조선은 폐망했고, 메이지 천황이 통치한 일본은 아시아의 맹주로 발돋움했다. 대체 무슨 차이 때문이었을까?

 

#. 민주주의, 자유주의 혁명의 불씨가 발화되다

조선에 파송된 개신교 선교사들은 추상적인 신학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조선의 일상을 개혁하는 데 뛰어든다. 개신교가 조선에 빠른 속도로 뿌리내릴 수 있었던 이유는 미국 선교사들이 파송될 시점에 주자성리학의 나라 조선이 급속 붕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선교사들이 가져온 복음주의 개신교는 이 땅에 기적과도 같은 대부흥운동을 일으킨다. 그것은 기독교가 주자성리학의 자리를 대체하고 있음을 알리는 사이렌이었다. 한 시절 평양은 ‘동양의 예루살렘’으로 불릴 정도로 폭발적인 기독교 확장이 전개된다. 가히 문명의 충돌이었다.

선교사들은 단순히 기독교만 전파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가져온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혁명의 불씨였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불씨, 민주주의와 인권, 개인의 자유라는 사상과 이념의 불씨, 그리고 근대라는 문명의 불씨였다. 그들이 가져온 혁명의 불씨가 발화하면서 전근대 봉건의 질서가 깊이 뿌리박혀 있던 이 나라에 변혁의 기운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 나라는 자신이 먼저 해친 후 외적이 무너뜨린다

한국인들의 가장 익숙한 가치관은 ‘남 탓’이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고 있었는데 일제가 침략하여 나라가 망했고, 외세가 38선을 그어 분단되었으며, 분단의 모순으로 인해 우리가 이 모양 이 꼴이라고 자학·자탄한다. 강성학 교수는 ‘조선은 여전히 순한 양처럼 유교적 미덕을 추구하면서 마키아벨리의 국제정치 바다에 떠 있는 외로운 플라톤의 섬’(강성학,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사무라이』 중에서)이라고 시적으로 표현했다.

함재봉의 『한국사람 만들기3: 친미기독교파1』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서양 세력과 일본이 조선을 향해 돌진하고 있을 때, 조선은 해체 수순을 밟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적의 침략이 전개되기 전에 스스로 멸망의 길로 질주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일본에게 죄가 있다면 그런 나라를 슬쩍 밀어 자멸을 부추긴 죄밖에 없다.

100년 전, 150년 전 우리의 모습이 그러했는데 뭘 어쩌자고 일제 탓, 외세 탓을 염불처럼 되뇌이며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걸으려는 것일까?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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