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동부구치소 코로나19 대량 감염사태에 대한 ‘늑장대응’ 비판에 대해 적극 해명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이 사전에 특별대책 마련을 지시했다는 게 청와대측 해명이다. 이 같은 해명이 사실이라면 대통령의 영(令)이 먹혀들지 않았던 게 화근이 된 셈이다. 주무부처인 법무부 혹은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대통령 지시를 한 귀로 흘려들으면서 특별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수용자들이 마스크도 구입하지 못한 채 감염병에 고스란히 노출되는 기상천외한 사건이 벌어지게 됐다는 게 청와대의 주장인 것이다.

이는 ‘책임회피’를 하려다 ‘바지사장’임을 자인한 격이다. 코로나 백신 구매 지연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문 대통령이 신속한 백신 구매를 독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적기 구매에 실패했고 연말에 문 대통령이 모더나 최고경영자(CEO)와 화상통화를 통해 극적으로 백신 구매를 타결짓는 세리머니를 연출해야 했다.

“대통령이 특별점검 외쳐도 정부부처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청와대 변명

대통령이 아무리 외쳐도 정부부처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청와대의 변명은 ‘레임덕’ 현상을 자인하는 역설적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복수의 언론매체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지난 3일 문 대통령이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와 관련해 특별점검을 수차례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문 대통령이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여러 차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동부구치소 사태의 심각성이 언론에 의해 공개된 것은 이미 한 달 이상 된 일이다. 그 사이에 대통령이 특별점검을 하라고 ‘수차례’ 지시했다는 게 진실이라면 추 장관은 거의 ‘항명’에 가까운 태도를 보인 셈이다. 그 기간 동안 추 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 때려잡기에 몰두했을 뿐이다. 동부구치소를 방문하기는커녕,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동부구치소가 수용자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법무부가 지난달 31일 긴급 브리핑을 열어 수용자 접견이나 교육 등을 전면 중단하는 내용을 담은 교정시설 집단감염 대책을 발표한 것도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조치로 보인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추 장관이 손놓고 있자 답답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선 듯

주무부처 총책임자인 추 장관이 손을 놓고 있자, 문 대통령이 대신 나선 것이다. 법무장관이 사태의 심각성을 능동적으로 파악, 대책을 마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게 상식적인 국정운영임은 물론이다.

가관인 것은 정세균 국무총리가 연말에 동부구치소를 방문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던 추 장관이 SNS에 "국민께 송구함을 말씀드린다"고 두 번씩이나 사과한 것도 문 대통령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점이다.

법무부는 코로나와 관련해 구치소에 내린 조치는 접견제한 조치 이외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5월 29일 법무부가 경기도 부천시 쿠팡 물류센터에서 시작된 코로나19 확진자 급증으로 다음달 1~14일까지 2주간 수도권 소재 교정시설의 일반 접견 횟수를 단축한다고 밝힌 게 거의 전부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앞으로도 코로나19의 교정시설 유입 및 확산 차단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와 관련해서 법무부가 내린 두 번째 조치도 역시나 접견제한이 전부이다.

지난해 8월 18일 법무부는 전광훈 목사 발 코로나19 확진 환자 급증과 관련해, 교정시설 내 바이러스 유입을 원천 차단하고자 일반 접견 횟수를 줄이는 등 조치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서울동부구치소에서 코로나 집단감염이 시작된 것은 지난해 11월 27일이다. 출정교도관 가족이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다. 동부구치소가 처음 내린 조치는, 감염 확산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구속 피고인의 법원 출정을 전면 중단한 게 전부다.

수용자에게 마스크 착용 불허한 동부구치소, 대통령과 추 장관은 언제 알았나?

더욱이 수용자들이 보건용 마스크를 쓰게 해달라고 하소연을 했으나, 교정당국은 철저하게 묵살했다.

지난 3일 대표적인 친여매체인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해 9월 9일 교정시설에서 보건용 마스크를 자비로 구매할 수 있게 해달라는 진정을 기각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는 광복절 집회 이후 전국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던 시기였다. 법무부 관계자는 “교정시설 특성상 구매물품으로 지정돼야 살 수 있는데 9월 9일(기각 시점) 당시까지는 보건용 마스크가 구매대상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고 확진자가 계속 나오면서 11월 30일부터 보건용 마스크를 살 수 있게 조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늑장대응을 인정했다.

김우주 고려대 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재소자들이 마스크 착용만 제대로 했어도 교정시설 발 코로나19 감염은 크게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방역의 기본인 ‘마스크 착용’을 교정 당국이 불허하는 초유의 사태에 대해 추 장관이 언제 인지했고, 문 대통령은 언제 보고받았는지도 중대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3일 법무부에 따르면, 서울동부구치소 발 코로나 감염 누적 확진자 수가 1천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11월 27일 직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은 뒤 불과 1개월여 만이다. 일각에서는 ‘세월호’보다 더한 참사라고 규명하며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4월부터 백신 구매 독려했지만 말을 안 들어?

문 대통령을 ‘바지사장’으로 격하시키는 청와대의 해명은 이번만이 아니다. 백신구매 지연 사태에 대해 비판 여론이 들끓자 문 대통령은 지난 4월부터 백신물량 확보를 지시했다는 ‘새로운 학설’을 청와대가 제기한 바 있다.

백신 확보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늦었다는 보도가 이어지고 민심이 들끓자 청와대는 지난달 22일 이례적으로 비공개 자료들을 공개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4월부터 백신 물량 확보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 자료대로라면 대통령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청은 ‘직무 유기’를 한 셈이다.

이 같은 해명을 통해 문 대통령의 ‘책임회피’는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주무부처 관계자들이 말을 듣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한 것이나 다름없다. 문 대통령이 ‘바지사장’임을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내부에서 레임덕은 최소한 지난 4월부터 이미 깊어졌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의 입을 통해 확인되고 있는 것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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