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족적 개념의 민족을 앞세우고, 중시할 경우 그 종착역은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종족적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있다는 사실은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2016년 가을부터 계속된 촛불 시위,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 위안부·징용공 배상 문제를 둘러싼 국가 차원의 반일 히스테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 한국인의 우울한 자회상

코로나 우울증,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 및 폭정(暴政)에 시달리느라 이 나라의 아이덴티티에 절망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대한민국은 참으로 대단한 나라다. 세계 10위권의 경제 강대국이자 세계 7위의 군사강대국 아닌가.

세계 최상급의 무선통신 시스템, 카드 한 장으로 지하철·버스 승차는 물론 환승 할인까지 가능한 나라, 택배·배달의 유토피아, 양질의 저렴한 전기 공급, 미국·일본을 비롯한 유럽 선진국들이 부러워하는 의료보험제도, 거의 완벽하게 작동하는 중화학공업 시스템, 빌보드 차트와 오스카상을 휩쓸고, 전 세계에 마니아를 형성한 K-팝의 문화적 위력….

이처럼 위대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 시민들은 한국을 헬 조선이니 언제 망할지 모르는 나라로 자학·자탄하며 한숨을 쉰다. 급기야 ‘연성 파시즘 국가’라는 신조어가 등장하질 않나, 많은 사람들이 “사상이 불그죽죽한” 친중 주사파 집권세력이 이 나라 자유민주 체제를 뒤집어 전체주의 국가로 향하는 것 아닌가 걱정되어 밤잠을 설치는 분들이 점점 늘고 있다.

오죽했으면 예일대와 하버드대학 출신의 임마누엘 페트라이쉬는 한국은 이미 선진국이 되어 있고, 전 세계인이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한국인들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지적할 정도가 되었겠는가.

 

#. 국가 건설의 어려움

어떤 지역에 근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아직도 광란의 무법천지 상태인 아프가니스탄과 소말리아, 독재정권 붕괴 후의 이라크와 시리아, 팔레스타인을 돌아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1945년 일본의 항복 이후 38선으로 분단된 한반도에서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과정의 혼란은 아프간·시리아·소말리아·팔레스타인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이승만의 정치고문 로버트 올리버의 기록에 의하면 해방 직후 한국의 1인당 GDP는 35달러, 문맹률 78%였다. 그런 어둠을 딛고 탄생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온전한 통일국가가 아니라 38선으로 분단된 반쪽짜리 탄생이었고, 북한의 남침으로 3년간의 국제전쟁까지 치른 상처 투성이의 누더기 출발이었다. 미국의 한국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1950년대의 한국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1953년, 한반도는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남쪽의 부산에서 북쪽의 신의주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은 죽은 자들을 묻고 잃은 것들을 슬퍼하면서, 그들 생애의 남은 것들을 주워 모으느라 여념이 없었다. 수도 서울에서는 콘크리트와 파편이 뒤범벅이 된 길가에, 텅 빈 건물들이 마치 해골처럼 서 있었다. 수도 주변의 미군 병사(兵舍)에는 수많은 거지들이 외국 군인들이 내버리는 찌꺼기를 줍고자 모여들었다…. 마을들은 텅 비었으며 거대한 댐들은 더 이상 물을 저장할 수 없게 되었다. 동굴과 터널 속의 두더지 같은 생활에서 기어 나온 사람들은 밝은 햇살 속에서 악몽에 부닥치게 된 것이다.’(브루스 커밍스, 『한국전쟁의 기원』, 일월서각, 1986, 11쪽)

1953년 한국의 GDP(국민총생산)는 아프리카의 소말리아와 비슷했다. 지하자원도 부족했고, 훈련된 고급 인재도, 축적된 자본도 인프라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나라에서 기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1956년 한미경제협의회의 미국 측 경제조정관으로 한국에 파견되어 근무했던 윌리엄 윈이다. 그는 AP통신 기자로 일하다가 뉴딜 정책 하에서 내무성 수자원담당 부차관보를 역임했다. 한국에 오기 전 이란과 브라질 원조 사절단장을 역임한 거물이었다. 그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에 참석, ‘교육에 배고픈 한국’이라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이 연설한다.

“아침 7시를 전후해서 중앙청이 보이는 광화문 네거리에 서 보라. 7~8세의 어린이로부터 성년이 된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제복을 입고 손가방을 들고 혹은 메고 가는 학생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 씩씩하고 명랑하고 혈색이 좋다. 그들에게는 신생 공화국의 앞날을 책임질 막중한 의무가 주어져 있다. 한국의 교육은 이러한 사명을 충분히 완수할 수 있다고 본다.”(송인상, 『재계회고8』, 한국일보사, 88쪽)

세계적인 석학 새뮤얼 헌팅턴이 2001년 9월 펴낸 『문화가 중요하다(Culture matters)』라는 저서의 서문에 ‘1990년대 초, 나는 1960년대 당시 한국과 가나의 경제상황이 아주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하고서 깜짝 놀랐다’는 구절이 나온다. 양국의 1인당 GNP 수준이 비슷했고, 1차 제품(농산품), 2차 제품(공산품), 서비스의 경제 점유 분포도 비슷했다. 당시 한국은 제대로 만들어 내는 2차 제품이 별로 없었고 상당한 경제 원조를 받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1950년대,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아프리카의 소말리아, 가나와 흡사했던 지구상 최빈국이었다.

한국은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한 취약국가다. 인적자원, 민족자본, 지하자원은 물론 먹을 것조차 부족하여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상태로 출발함으로써 모든 모순이 켜켜이 쌓인 사회가 되었다.
한국은 모든 것이 부족한 상태에서 출발한 취약국가다. 인적자원, 민족자본, 지하자원은 물론 먹을 것조차 부족하여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상태로 출발함으로써 모든 모순이 켜켜이 쌓인 사회가 되었다.

 

#.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

그러한 대한민국이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건설을 지원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가운데 가장 성공한 나라로 점프 업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을 가능케 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먹물 지식인, 학자들은 그동안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반란사건이나 학살, 국가폭력에 대한 연구는 수없이 많이 했지만, 건국의 성공 과정에 대해서는 일제히 침묵했다. 그 결과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에 대해 “애초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지구상에서 빨리 소멸되어야 할 나라”로 저주를 퍼붓는 데 너무나 익숙한 자학과 자탄의 달인들이 되어버렸다.

그 동안 방치되었던, 아니 외면했던 이 분야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서가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이다. ‘국가건설의 시대 1945~1950’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의 저자는 이택선 교수다.

그는 이 책의 머리말에서 우리는 왜 짧은 시간 동안 이루어낸 놀라운 성과에도 불구하고 조국을 자랑스러워하지 못하는가? 왜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들을 부끄러워하며 급기야 일본과 외교적으로 극한의 갈등을 빚는가? 왜 우리 정치권은 지금도 극한의 대치 정국을 연출하면서 갈등을 반복하는가? 왜 우리는 높은 경제력과 교육 수준을 갖추고도 ‘되는 것도 없지만, 안 되는 것도 없는 나라, 헬조선’을 탄식하는가? 왜 21세기 번영의 대한민국을 붕괴 직전의 구한말로 비유하는 담론이 사회구성원들에게 설득력을 얻으며 전파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저자 이택선은 ‘취약국가(Vulnerable State)’라는 화두를 제시한다. 모든 것이 부족했던 시절, 부족한 자원의 결핍을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그러한 결핍을 감추기 위해 다른 자원을 끌어다 땜질식으로 돌려막기를 했던 임시 처방의 역사가 대한민국이었다. 그러한 돌려막기 임시처방 방식으로 임시 교량이나 가건물처럼 세워진 나라였으니 이 나라, 체제에 대한 믿음이 생겨나질 않았다는 관측이다.

두 번째 이유는 지배층 문제다. 서양의 근대국가는 부르주아가 스스로 얻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귀족이나 왕을 제압하고 정치적 정당성을 획득하여 형성되었다. 한국은 서양과는 달리 국가가 인위적으로 부르주아를 육성했다. 그 결과 정치적 정당성을 바탕으로 사회적 인정을 받으면서 시민사회를 이끌어나갈 지배 계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 결과 정치적 혼란이 무한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모든 자원이 부족한 가운데 한국인들이 국가 건설(national building) 과정에서 가장 중시했던 가치는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민족주의였다. 그러한 민족주의 이념마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대한민국의 국가 건설은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승만과 함께 국가 건설에 참여한 많은 인물들은 주어진 여건과 현실적 제약 속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통일된 민족국가를 바라는 민족주의 바람을 충분히 흡수하자 못하고 분단된 미완성 국가 건설을 진행했다. 그런 원죄로 인해 주인공 자리에서 밀려나 잊혀진 존재, 버림받은 존재를 뛰어넘어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을 한 빌런(villan, 악당),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폐기처분되어야 할 존재로 취급당하고 있다.

그 대척점에 선 세력들은 이승만과 건국 참여세력을 도덕적 흠결이 없는 완벽한 영웅으로 묘사하려는 신파조 위인전기를 답습해 왔다. 두 세력은 도무지 합치를 이룰 수 없는 적대 관계가 되어 대치전선을 형성해 온 결과가 오늘의 우리 모습이다.

책의 저자 이택선 교수. 그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은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자원을 돌려막는 식으로 임시처방, 땜질, 날림공사 식으로 출발함으로써 취약국가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책의 저자 이택선 교수. 그는 이 책에서 대한민국은 결핍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분야의 자원을 돌려막는 식으로 임시처방, 땜질, 날림공사 식으로 출발함으로써 취약국가가 되었다고 분석한다.

 

#. 대한민국이 취약국가일 수밖에 없는 진짜 이유

책의 저자 이택선 교수는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서의 비극은 국가 건설에 필요한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공산국가 건설을 위한 청사진을 통해 신속하게 소련을 추종하는 공산국가 건설에 성공한다. 반면 미군정은 아무런 준비 없이 진주하여 ‘관망 정책(Wait and See)’으로 일관했다. 준비부족 상태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건설은 날림공사 수준이었고, 부족한 부분은 미국의 원조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이 만족할 만큼 한국을 지원한 것도 아니다. 미국의 대외 전략에서 한반도가 차지하는 위상은 미국이 사활적 이익이 걸려 있어 반드시 지켜야 할 16개 지역(국가) 중 15위 정도에 불과했다. 이 정도 가치밖에 없는 나라에 만족할 만한 지원을 할 만큼 미국의 재원이 풍족하지는 않았다.

이 교수는 대한민국 건설 과정에서 가장 심각한 결격사유는 인적 자원의 부족이었다고 분석한다. 친일파 등용은 그들이 예쁘고 귀한 존재여서가 아니라, 훈련된 고급 인재의 부족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한 현실적 한계로 인해 대한민국은 출발부터 정치적 정통성이 크게 훼손되어 정치적 위기가 상존하는 국가가 되었다는 것이 이택선 교수의 견해다.

게다가 김구와 김규식은 건국에 참여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통일된 민족국가를 열망하던 민족주의를 충분히 흡수하지 못했다. 그 결과 국가 밖에 ‘민족’이 존재하는 상황이 발생했고, 그런 현상은 지금까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모든 자원이 부족한 상태에서 반쪽 국가로 출범한 대한민국은 출발부터 정당성 부재, 정통성 하자에 시달린다. 민족국가, 민주공화국은 출범했지만 언제 망할지 모르는 위기의식에 시달리면서 좌파와 북한의 공작에 맞서 하루하루 살아남기 위해 민족주의 ‘오버 액션’을 남발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성급하고 충동적으로 국가 폭력이 사용됨으로써 적지 않은 국민을 적으로 돌렸다. 제주 4·3이 그랬고, 여수·순천 반란사건이 그랬으며, 반민특위 해체가 그랬다.

이승만 정부는 정치적 정당성을 갖추기 위해 토지개혁, 의무교육 등 개혁을 추진했다. 이를 통해 국가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와 귀속감이 증대하면서 국가의 자율성이 확대되었다. 이를 지켜보던 중도파들이 제2대 총선을 통해 국가 건설에 참여해 정치적 정당성이 증가했고, 균형재정이 달성되면서 점차 근대국가로서 갖춰야 할 최소한의 요건들이 충족되어 간다.

이 와중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허약한 신생국가를 살리기 위한 국민의 헌신과 균형재정 달성 등 대부분의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한국은 출발 이래 간신히 국가 붕괴를 면하고 근대국가로 발돋움했고, 아직도 여전히 취약국가라는 무서운 사실을 섬뜩하게 깨닫도록 하는 책이 이택선의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이다.

한국인들이 개인보다 민족을 앞세우고, 개인의 자유보다 통제를 중시할 경우 그 종착역은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종족적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있다는 사실은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2016년 가을부터 계속된 촛불 시위,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 위안부·징용공 배상 문제를 둘러싼 국가 차원의 반일 히스테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한국인들이 개인보다 민족을 앞세우고, 개인의 자유보다 통제를 중시할 경우 그 종착역은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종족적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있다는 사실은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2016년 가을부터 계속된 촛불 시위,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 위안부·징용공 배상 문제를 둘러싼 국가 차원의 반일 히스테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 ‘개인’보다 ‘민족’을 선호하는 국가의 불안한 미래

근대국가는 민족이 아니라 ‘개인(individual)’의 발견으로부터 시작된다. 사르트르의 견해에 의하면 개인이란 자유 의지를 실현하는 주체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문구는 주체로서의 개인을 잘 나타내는 명언이다. 헤겔에 의하면 세계 역사는 절대 이성의 발현과정이고, 개인은 이러한 역사 발전의 한 역할을 담지하는 존재다.

개인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조물주는 몇 개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했으며, 그 권리 중에는 생명과 자유와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 인민은 정부를 조직했으며, 정부의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로부터 유래한다. 어떤 형태의 정부든 이러한 목적을 파괴할 때에는 언제든지 정부를 개혁하거나 폐지하여 인민의 안전과 행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가져올 수 있는 새로운 정부를 조직하는 것이 인민의 권리라고 미국 독립선언서는 규정하고 있다.

민주정체란 정부(즉 국가)가 하늘이 한 인간에게 내린 개인의 근본적 자유를 극력 보호하는 것이라고 설파한 사람이 대한민국 건국의 주인공 이승만이다. 개인의 자유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소유한 사유재산의 보호다.

불행하게도 한국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개인’이 아니라 ‘민족(Nation)’이다. 민족이란 하나의 언어·문화·역사·풍속 등을 공유한다고 여기는 인간 집단을 지칭하는 단어다. 하지만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혈통·언어·문화 등은 기준이라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주관적이며, 역사적으로 그런 기준이 고정적으로 이어진 적은 없다. 지극히 주관적이며 비객관적 지표를 통해 구성된 개념이기 때문에, 민족이 무엇인지 이 지구상에서 명쾌한 정의를 내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이란 근대화와 함께 나타난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일 뿐이라고 설파했다. 주류 학자들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견해를 지지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아직도 “우리는 배달겨레 단군의 자손 단일민족”을 외치며 혈연, 즉 종족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로서의 민족이 존재한다고 확고부동하게 믿고 있다. 한국인들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가 아닌, ‘종족적 민족’에 해당하는 원시적 공동체(Primordial community) 수준이다.

이러한 종족적 개념의 민족을 앞세우고, 중시할 경우 그 종착역은 나치즘이나 파시즘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집단적으로 종족적 민족주의에 함몰되어 있다는 사실은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 2016년 가을부터 계속된 촛불 시위,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는 일본에 대한 불매운동, 위안부·징용공 배상 문제를 둘러싼 국가 차원의 반일 히스테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개인보다는 집단이나 사회를 우선하는 사회, 개인의 자유보다는 국가의 통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사회는 근대 국가로 인정받을 수 없다. 한국은 아직도 여전히 취약국가인 동시에 전근대 국가다. 이것이 이택근 교수의 『취약국가 대한민국의 탄생』을 독서한 필자의 솔직한 소감이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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