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하면서 여권 내 후폭풍이 일파만파로 일고 있다. 집권 여당 세력 내부에서 이낙연 대표 사퇴론과 같은 극단적인 강경론이 힘을 얻고 있다. 박 전 대통령 사면은 소위 ‘촛불혁명’에 대한 배신이라는 입장이다. 심지어 이 대표를 낙마시키고 강경론자인 추미애 법무장관을 대선후보로 추대해야 한다는 과격한 주장이 소위 대깨문들 사이에서 공론화되고 있다.

대깨문은 이낙연 사퇴를 제기하며 추미애 추대론까지 진도 나가

그러나 이 대표의 사면론은 청와대와 원칙적인 교감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 만만치 않다. 그럴 경우 문빠 강경파들이 이 대표는 물론이고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까지도 무시하고 정국을 뒤흔드는 국면으로 접어든다는 분석이다. 문 대통령의 레임덕이 여권내부에서조차 격화될 조짐이라는 관측이다.

따라서 이 대표의 사면 건의는 그의 대선 가도에서 하나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그가 당내 반대파들을 설득해내지 못한다면 상당한 정치적 손상을 입게 된다. 반대로 현 시점에서의 사면론이 대통령의 뜻과 맞는다는 것이 확인되고 당내 조율을 원활하게 이끌어 낸다면 향후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낙연 1일 인터뷰서 “두 전직 대통령 사면, 대통령에게 건의할 것” 공언

이 대표는 지난 1일 연합뉴스와의 신년 인터뷰에서 "적절한 시기가 오면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문재인 대통령께 거론하겠다"며 "시기에 따라 다른 방법도 있다. 집행이 확정되면 사면이 가능하지만 그 전에 형 집행 정지라는 것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거론한 것은 처음이다.

전직 대통령 사면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집권여당의 대표가 직접 거론했다는 점에서 정치권의 반응은 뜨겁다. 이 대표로서는 가장 민감한 문제에 정치적 승부수를 건 셈이다.

이 대표의 사면론에 대한 여권 내부의 일차적 반응은 비판론 일색이다. 최근 대선후보 지지율 조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치고 나가는 데 비해 만년 3위로 고착화되고 있는 이 대표가 ‘제 살길 찾기’ 차원에서 사면론을 불쑥 던졌다는 해석을 토대로 하고 있다.

대깨문들, 이낙연을 카이사르(문 대통령)를 암살한 부르투스로 규정

친문 지지층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는 지난 1일 오전부터 이 대표를 성토하는 게시글과 댓글이 수백~수천 개씩 쏟아졌다. 이들은 “이낙연은 당대표를 사퇴하고 탈당하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지 못할 민주당 대표는 필요없다”라는 지적도 서슴지 않았다. 이 대표의 사면 주장이 문 대통령과 ’촛불 정권’에 대한 배신이라고 단언했다. 이 대표를 고대 로마 영웅 카이사르를 암살한 부르투스에 빗대는 사람도 있었다.

대표적 친문 인사인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더불어민주당을 위해 써야 하는 카드를 이낙연이 챙겨먹는다"고 비판했다.

황 씨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사면 카드가 대선용으로 쓰일 수 있다는 생각은 했다. 박빙일 때 무당파를 끌고 오는 전략으로 써먹을 수 있다"며 "그러니까, 각 당의 대통령 후보가 정해지고 난 다음에나 사면 카드를 써야 하는 것"이라며 "정치가 참 무섭다"고 했다.

친문 강경파들은 이 대표의 사퇴를 전제로 새로운 대선 판짜기까지 제시했다. “추미애 대선 후보, 박주민 당대표 체제로 가야 한다”, “유시민 작가, 추미애 장관, 박주민 의원 등을 빅 3대선후보로 만드는 판짜기가 필요하다”는 등등의 주장이 난무하고 있다.

이 대표가 갑작스레 사면 카드를 꺼낸 데 대해, 청와대와 조율된 것인지 아니면 독자적 결정으로 꺼낸 카드인지를 놓고 배경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여권의 한 의원은 “이 대표와 같이 신중한 사람이 청와대와 어느 정도 교감을 갖지 않고 불쑥 사면론을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언행과 성품을 감안할 때, 이 대표가 사면론을 제안했을 경우에 발생할 파장을 몰랐을지는 미지수”라는 분석이다. 청와대와의 교감설에 무게를 실은 발언이다.

친문 핵심 박수현 홍보소통위원장, “전직 대통령 사면은 문 대통령의 운명” 단언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홍보소통위원장은 더욱 명확한 논법으로 이 대표와 문 대통령의 ‘원칙적 교감’을 주장했다. 박 위원장은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민주당과 이 대표가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하든,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께서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하든, 그것은 이 시대를 감당한 자의 운명”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 초대 청와대 대변인을 지낸 대표적 친문인사이다.

박 위원장은 “사면을 하든 안 하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內)든 다음 정권으로 넘기든, 임기 내면 올해든 내년이든, 올해면 보궐선거 전(前)이든 후(後)든, 모두가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에 달린 ‘정치적 운명’”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표 역시 임기 내에 이 문제를 처리하든, 아니면 고의 4구를 던져 다음 대표에게 짐을 미루든 선택해야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민주당과 이 대표에게도 사면 문제는 ‘운명’”이라고 덧붙였다.

결론적으로 “민주당과 민주당의 어떤 대표든 이 문제를 대통령의 짐으로 떠넘길 수 없다”며 “대통령의 짐을 덜어드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문 대통령과 이 대표가 고민해야 할 숙명이라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이 대표가 신년벽두에 제기한 사면론이 결코 독불장군식 제안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박수현의 해석이 맞다면 대깨문은 ‘달님’을 못보고 손가락을 맹비난하는 중

박 위원장은 이 같은 자신의 해석이 이 대표 사면론에 포화를 퍼붓고 있는 여권 내 강경파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그는 “민주당 당직자로서 이 대표의 사면 건의 발언에 대해 감히 한 말씀 드린다”면서 “1월 1일 새해 첫날 ‘사면하면 탈당하겠다’는 한 선배님의 전화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즉 이 대표의 사면 건의가 ‘탈당’을 고려할만한 해당행위가 아니라 문 대통령과 함께 고민하고 있는 정치적 숙명이라고 되받아친 형국이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문 대통령과 이 대표의 숙명이고, 그것은 촛불 혁명으로 탄생한 정부가 안고 있는 숙명이라는 데에 대해 두 사람의 공감대가 있었다’는 메시지를 통해 이 대표 흔들기에 열중하고 있는 강경파에 대해 견제구를 던진 것이다. 이 대표의 사면론은 ‘달님의 뜻’이니 더 이상 부화뇌동하지 말라는 주문에 다름 아니다.

박 위원장의 해석이 맞다면, 문빠 내 강경세력은 현재 큰 혼란에 봉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대표가 ‘달님’을 가리키는데, 달님의 뜻을 보지 못한 채 손가락이 잘못됐다고 맹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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