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백신구매 실패론에 시달려온 문재인 정부가 또 다른 ‘암초’를 만났다. 영국기업인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이르면 2월 중에 도입, 접종을 시작하겠다는 계획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보건당국이 30일(현지시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사용승인 시기를 당초 2월에서 4월로 연기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4월보다 늦어질 수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K방역 자화자찬하며 ‘안전성’ 강조했던 文 정부, 난장판 된 영국 뒤따르기 어려워

백신 접종의 신속성보다 안정성을 강조하면서 백신구매 지연사태를 변명했던 정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다. 2월 접종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안전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이 아스트라제네카 시험대가 되겠다고 자청하고 나서는 격이 된다.

정부는 영국의 승인을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격렬한 여론의 비판에 직면할 게 확실시된다. 영국은 현재 일일 신규확진자가 한국의 50배가 넘는다. 안전성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백신 이름표가 붙은 것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접종해야 할 처지이다.

그동안 K방역의 성공을 내세우면서 안정성을 검증한 뒤 접종해도 늦지 않다는 한국 정부가 벤치마킹할 대상은 결코 아니다.

일일 신규 확진자가 5만명 넘은 영국에서만 아스트라제네카 긴급 승인

영국의 일일 신규 확진자는 지난 28일 4만1천385명이었다. 사상 처음으로 4만명선을 넘었다. 그런데 하루만인 29일 5만3천135명을 기록, 5만명선도 돌파했다. 이런 상황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승인을 통한 대규모 접종 확대을 돌파구로 삼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영국 보건부는 30일(현지시간) 의약품건강관리제품규제청(MHRA)의 권고를 받아들여 자국 제약업체 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개발한 코로나 백신의 긴급사용을 승인했다. 이달 초 미국 제약업체 화이자 백신 승인에 이어 두 번째다.

맷 행콕 영국 보건부 장관은 이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생산이 가능해지면 최대한 빨리 보급할 것”이라면서 “이 백신은 1회차 접종과 2회차 접종 사이 기간이 최대 12주라 매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단기간에 백신 접종 인구를 늘리기 위해, 백신 접종 간격을 두 달 이상 뒤로 미루는 특단의 조치를 시행한다는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코로나 백신은 두 번 접종해야 예방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이자나 모더나 백신은 1, 2차 접종 간격이 한 달이다.

코로나 변이 확산으로 초비상 사태인 영국, 백신 안전성 가릴 처지 아냐

2차 접종 시기를 한 달이 아니라 세 달 뒤로 미루면 백신 공급에 숨통이 트일 수 있다는 계산에서다. 2차 접종분을 비축하지 않고 일단 많은 사람에게 1차 접종을 하고, 나중에 생산량이 증가하면 2차 접종을 하면 되기 때문이다. 2차 접종 시기를 뒤로 미루고 최대한 1차 접종자 수를 늘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겠다는 의미다.

영국 정부가 백신 접종 숫자를 늘리려는 것은 최근 변이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속히 퍼지면서 국토의 3분의 2가 봉쇄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매일 수백 명이 코로나로 사망하는 상황을 통제하려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효과가 화이자나 모더나의 95%에 크게 못 미쳐도 일단 백신 접종자를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에 영국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1주에 200만 명에게 접종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축구장과 경마장에 임시 백신 접종 시설까지 만들었다.

아스트라제네카는 ‘안전성’뿐만 아니라 ‘효과’도 의문?

그러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안정성만 문제가 아니다. 그 효과에 대한 의구심도 아직 완전히 해결된 상황이 아니다. 회사측은 지난달 한 달 간격으로, 첫 회에는 1차 접종량의 절반을 투여하고, 2차 접종에는 1차 접종량을 모두 투여할 경우 가짜약을 접종한 사람보다 코로나 감염이 90% 감소했다고 밝혔다.

반면 두 번 모두 같은 분량을 접종할 경우에는 면역 효과가 62%로 떨어졌다. 고용량이 저용량보다 효과가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게다가 저용량 백신 투여가 임상시험 도중 실수로 발생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면서, 백신의 신뢰성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영국 정부는 이번에 백신을 기존 임상시험처럼 한 달이 아니라 세 달 간격으로 접종한 사람은 효과가 80%까지 올랐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는 70%정도로 알려졌다. 이 결과는 아직 논문으로 발표되지 않았다.

백신 개발을 이끈 옥스퍼드대의 앤드루 폴라드 교수는 지난 30일(현지 시각) 인터뷰에서 “백신 접종 간격이 길수록 항체가 더 많이 생겼다”며 “처음에 저용량 투여가 효과가 높게 나온 것도 사실은 접종 간격이 길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의료계에서는 영국 정부의 계획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고 본다. 미국 하버드대의 마이클 미나 교수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한 해 수십 억 명에게 백신을 접종하는 일을 얘기하는 것”이라며 “(접종 간격이 늘어나면) 아마도 손해 보는 일도 있겠지만 인구 전체로 보면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 아스트라제네카 승인을 4월로 미루고 얀센 백신을 게임 체인저로 주목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유럽의약품청(EMA)이나 미국 식품의약국(FDA)에는 승인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코로나19 백신 개발 총괄자인 몬세프 슬라위 수석 고문은 3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미국 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긴급 승인은 4월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래는 2월 중 승인이 예정되어 있었다.

슬라위 고문은 "미국에서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3상 임상이 시험 중"이라며 "모든 게 잘 진행되면 자료 판독과 긴급 사용 승인이 4월 초 내려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승인에 대해서는 결정을 서둘렀다고 보지 않는다”며 영국 의료규제 당국이 과학에 기반해 결정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존슨앤드존슨(얀센) 백신에 관해서는 "1월 중 효능 판독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며 "긴급사용 승인 신청이 1월 사이 이뤄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밝혔다. 그럴 경우 2월 긴급사용 승인을 받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슬라위 고문은 백신 보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존슨앤드존슨과 협력 중이라며, 이 백신이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백신은 2회 접종이 필요한 다른 코로나19 백신들과 다르게 한 차례만 맞는다는 점이 장점이다.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1000만 명분을 선구매했으며 내년 2~3월 도입한다는 계획이다. 얀센과는 600만명분을 내년 2분기에 도입할 예정이다. 정부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해서는 미 FDA의 승인이 없어도 EU의 유럽의약품청(EMA) 승인만 받으면 곧바로 도입해 내년 2월부터 국내 접종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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