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박한 법률지식을 활용해 법망을 피해오던 ‘법꾸라지’ 조국 전 법무장관이 정경심 동양대 교수 판결로 인해 위기에 봉착했다. 자녀 입시비리 및 사모펀드 의혹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 교수 1심 판결 중에는 남편인 조 전 장관과의 공모가 세 군데에 걸쳐 언급됐다.

이에 따라 서울중앙지법 형사 21부에서 재판 중인 조 전 장관은 곤경에 처하게 됐다.

법적 책임 없는 장소에서만 ‘결백’ 주장했던 조국, 정경심 재판서 철퇴 맞아

조 전 장관은 그 동안 이들 혐의에 대해서 ‘위증죄’ 적용의 소지가 있는 상황에서는 묵비권을 행사하며 ‘결백’을 주장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정 교수 재판과 같이 형사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거짓말을 하면 ‘위증죄’ 처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인식한 영리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조 전 장관과 정 교수간의 공모 혐의를 분명히 함에 따라 ‘철퇴’를 맞았다. 이제는 법망을 피해나가기 어렵게 됐다는 관측이 유력하다.

정 교수 재판부가 공모 혐의를 언급한 3가지 범죄 혐의와 관련, 향후 재판에서는 진술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앞선 발언’에 대한 진위 여부를 추궁받을 경우 입을 열 수밖에 없다.

법원이 정 교수와 조 전 장관의 공모를 인정한 부분은 전부 3가지이다.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서류 위조, 부산의 한 호텔 인턴 서류 허위 작성, 정 교수의 ‘동양대 사무실 PC’ 증거은닉 교사 혐의 등이다.

첫째 공모 혐의는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서류 위조

2009년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증명서와 연관된 부분으로, 재판부는 “정 교수는 딸이 인턴 활동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조 전 장관과 함께 허위 내용의 확인서를 발급받아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 입시에 제출했다”고 했다. 또한 “조 전 장관이 센터장인 한인섭의 허락 없이 이를 위조했다”고 했다.

조 전 장관의 딸인 조씨는 "2009년 4월 공익인권법센터 홈페이지에 게시된 안내문을 보고 세미나 개최 사실을 알게 됐다"며 "그 무렵 한 원장으로부터 과제를 받아 5월 1일부터 14일까지 (한영외고) 인권동아리 학생들끼리 스터디를 했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또 "세미나가 개최되는 동안 한영외고 인권동아리 회원 5~10명과 함께 세미나장 맨 뒷줄에 앉아있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조 전 장관의 은사인 한인섭 교수는 "조씨가 세미나에 참석한 사실에 관해 알지 못하고 세미나 개최 전 만난 적이 없다"며 "조씨에게 전화해 스터디를 하라고 지시한 기억도 없다"고 진술했다.

둘째 공모 혐의는 호텔 인턴 서류 허위 작성

조국 전 장관의 딸은 2009년 8월 1일과 10월 1일 두 차례에 걸쳐 ‘아쿠아펠리스’ 호텔 인턴십 확인서와 실습 수료증을 발급받았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확인서 및 실습 수료증은 모두 조국 전 장관이 그 내용을 임의로 작성한 후 아쿠아펠리스 호텔의 법인 인감을 날인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아쿠아펠리스 호텔 직원들은 정경심 교수 공판에 출석해 조 전 장관의 딸이 인턴활동을 한 적이 없다고 증언했다. 재판부는 설령 조 전 장관의 딸이 실제 인턴활동을 했다고 하더라도, 실습수료증과 인턴십 확인서가 호텔에 의해 작성된 게 아니어서 이 서류들이 허위라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정경심 교수는 조국 전 장관과 실습 수료증과 인턴십 확인서를 작성하기로 공모하고, 조국 전 장관이 이 서류들을 작성하는 데 가담했다”며 “딸의 허위 경력이 기재된 서류를 서울대 의학전문대학원에 제출하는 데에도 가담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실제 호텔 이름은 아쿠아‘펠리스’였지만, 조 전 장관의 딸이 발급받았다고 하는 서류에는 아쿠아‘팰리스’로 기재돼 있었다.

셋째 공모 혐의는 동양대 사무실 PC 등 증거인멸 혐의

조국 전 장관은 정경심 교수가 동양대 사무실 PC를 빼돌린 증거인멸 혐의에도 등장한다.

재판부는 “정 교수가 자신과 조 전 장관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은닉할 의도로 자산관리인인 김경록 씨에게 저장매체와 교수 연구실 PC를 건네준 사실, 조 전 장관과 정 교수가 향후 자신들에 대해 진행될 수사를 대비해 자택 PC의 저장매체와 동양대 교수연구실 PC를 은닉하기로 공모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재판부는 정 교수를 증거인멸 혐의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형법 제155조는 증거인멸죄 처벌 대상을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를 인멸·은닉·위조·변조한 자’로 정하고 있다. 자신의 범죄 증거를 인멸한 것은 죄로 처벌하지 않는다. 정 교수 측도 앞서 재판에서 “증거인멸을 지시한 게 아니라 본인 증거를 숨기는 데 가담한 공동정범”이라고 주장했는데 재판부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3가지 공모 혐의 등에 대해 법망 피해가며 부인해왔던 조국, 모두 거짓말로 판명돼

그동안 조 전 장관은 이러한 3가지 공모 혐의에 대해 치밀하게 부인했다. 위증죄가 적용될 수 있는 법정에서는 묵비권으로 일관했다. 대신에 현행법상 자신의 발언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인사청문회, 자택앞 기자회견 등에서는 철저하게 혐의를 부인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서의 역량을 십분 활용, ‘법꾸라지’라는 비판을 받았던 대목이다.

조 전 장관이 지난해 9월 인사청문회에서 딸 조씨의 동양대 봉사활동에 대한 질문을 받고 "저희 아이가 봉사활동을 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라고 주장했다. 조씨의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활동에 대해서도 "분명히 했다"면서 “나는 그 인턴 활동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이는 정 교수 재판과정에서 모두 거짓말로 드러났다.

그러나 국회증언감정법 적용을 받는 국정감사와 달리,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한 발언은 위증 수사의 대상이 되지 않기에 처벌받지 않는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9월 23일 자택 압수수색 당일 기자들에게 "지금까지 저는 가족 관련 수사에 대해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아 왔지만 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십 관련 서류를 제가 만들었다는 보도는 정말 악의적"이라면서 "공인으로서 여러 과장보도를 감수해왔지만 이것은 정말 참기가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 역시 거짓말로 판명되고 있지만 처벌 대상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 9월 정 교수 재판에서는 ‘결백’을 주장하던 태도에서 돌변, 증언을 거부했다. 향후 위증죄 등의 처벌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해석이다.

영특한 법률 전문가답게 대중에게는 ‘결백’을 홍보하고, 법적인 책임을 지게 될 상황에서는 입을 닫는 ‘법꾸라지’의 전형을 연출해왔던 것이다.

양준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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