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플라자 합의' 될 수도... 최악의 경우 외환위기 가능성 배제 못해
정부, 한미FTA 개정에 "한국 정부의 환율 개입 금지에 대한 약속을 받아냈다"는 美 발표에 반발
정부의 환율 개입 금지에 대한 약속, 추후 '문서화' 되나

가뜩이나 삐걱거리는 한미(韓美) 관계에 '환율 문제'가 새롭게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환율 합의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발표가 엇갈리는 가운데 미국무역대표부(USTR) 홈페이지에 환율 합의와 관련한 내용이 게시됨으로서 양국간 환율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한국 정부의 환율 개입 금지에 대한 약속이 문서화 된다면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고 있다. 그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간순으로 본 양국의 한미FTA 및 환율 문제 발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6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를 발표하며 환율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는 농축산물 시장을 지켜냈고, 픽업트럭 관세 20년 연장과 철강 수출에 대한 70%쿼터 설정 등을 언급했을 뿐 환율에 대한 발표는 일절 없었다.

그러나 로이터 통신은 27일(현지시간) 미 정부 고위관계자와의 전화 브리핑에서 FTA 개정 협상 시 미국 재무부와 한국의 기획재정부 사이에서 환율정책과 관련한 부가적인 합의도 있었다고 처음으로 보도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합의가 원화의 평가절하를 억제하고 한국의 외환개입에 대한 투명성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환율과 관련한 한국 정부의 감추기식 발표 문제가 불거지는 가운데 28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미국무역대표부(USTR)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의 원칙적 합의와 철강 232조 관세조치의 한국 면제 관련 한미 간 합의에 대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미국 USTR발표가 난 뒤 김현종 본부장은 일부러 발표하지 않은 게 아니냐는 의혹에 “28일 한미통상장관끼리 발표된 공동선언이 있다. 한미 FTA와 철강관세 관련 내용만 포함됐을 뿐”이라며 ”환율 내용은 별개의 사안이며, 미국 라이트하이저 USTR(미국 백악관 무역대표부)대표와 합의를 본 사안이다“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라이트하이저 USRT 대표 역시 환율이 별개의 사안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기획재정부는 "동 협의는 이미 사실상 타결이 된 한미FTA 개정협상과 별개로 양국 재무당국, IMF 등과 논의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28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협상에서 환율문제는 의논되지 않았다는 한국정부의 발표화는 달리, USTR은 홈페이지에 한미FTA 개정 협상의 결과물로 환율 협상과 관련한 내용을 게재했다. 

USTR 홈페이지에 게시된 환율 협상 관련 내용
28일 USTR 홈페이지에 게시된 환율 협상에 대한 내용

USTR은 세 번째 항목의 환율 협정(Currency Agreement) 부분에서 첫 줄에 “미 재무부는 한국의 기획재정부와 환율과 관련한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적혀있으며, 그 아래 문장에 "무역과 투자를 위한 공정한 경쟁의 장을 증진시키기 위해 경쟁력 있는 평가 절하와 환율 조작을 강력히 금지하는 조항에 대한 합의(양해각서)가 최종 단계에 접어 들었다. 투명성과 책임에 대한 강력한 약속이 이 조항에 포함되어 있다”고 적시되어있다.

이후 정부가 환율과 관련한 합의를 고의적으로 숨겼다는 비판적 여론이 갈수록 거세지자 기획재정부는 29일 "미국과 환율협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별개"라며 미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4월 발표되는 미국 환율보고서에서 환율조작국에 지정되지 않기 위한 방법을 검토 중”이라며 “이것이 문서화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일단 환율 합의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발표가 엇갈리는 가운데 미국무역대표부(USTR) 홈페이지에 환율 논의와 관련한 내용이 게시됨으로서 양국간 환율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는 것은 기정 사실화되고 있다. 현재 엇갈리는 것은 환율 문제가 한미FTA 재협상과 같이 묶여있는 패키지딜(Package deal)인지 별개의 사안인지가 논란이다. 또 환율과 관련하여 '문서화'가 이뤄질지에 대한 문제가 최대 쟁점이다.

출처: 한국경제신문

외환시장 개입 억제와 관련해 양해각서 맺으면 큰 경제적 파장 예상돼

한국 정부의 환율 개입 문제는 미국이 국제 통상적으로 가장 눈여겨 보고 있는 문제다. 더군다나 터프한 협상가로 잘 알려진 트럼프 대통령은 외국 정부가 자국 통화가치를 의도적으로 낮출 경우 미국이 입게되는 피해에 대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임기 초 부터 대대적으로 천명해왔다. NATFA 소속인 캐나다와 멕시코를 시작으로 남미, 유럽연합(EU), 동아시아국들과 호주까지도 재협상을 단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무역주의자로 잘 알려져있지만 미국 내에선 대국을 어떻게 이끌어갈지 아는 타고난 협상가로서의 평가가 더 짙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외환시장 개입 억제와 관련해 양해각서를 맺게 된다면 경제적으로 매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사건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국가의 이른바 '환율 주권'에 대한 매우 이례적인 침해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다만 원칙적으로 환율은 시장(市場)의 수급 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반론도 있다.

역사적으로 이와 비슷한 상황을 동아시아권으로 한정한다면 일본이 1985년 미국의 압력에 의해 '플라자합의'를 체결한 뒤 급속한 엔고(高)로 수출이 둔화됐고 이후 '잃어버린 20년'을 맞게됐다. 만약 한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다면 최악의 경우 일본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또 일각에선 이번 외환시장 개입 억제로 인해 중장기적으로는 심각한 위기로 치달을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하고 있다. 만약 외환시장 개입 억제와 관련해 양해각서를 맺게 될 경우 원화 강세로 수출이 격감하고 경제성장률이 추락하더라도 정부가 환율 정책을 통해 대응할 수단은 사실상 없어지게 된다.

한국은 이미 지난해 10월 환율보고서 기준으로 이미 무역수지, 경상수지 조건 2가지에 해당해 현재 미국의 관찰대상국(monitoring list)에 올라와 있는 상황이다. 미국 재무부는 매년 4월과 10월 환율보고서를 통해 ▲ 대미 무역수지 흑자 200억 달러 초과 ▲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3% 초과 ▲ GDP 대비 순매수 비중이 2%를 초과하는 환율시장 한 방향 개입 여부 등 3가지에 해당하는 국가를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이 같은 상황들을 고려해 국내 경제연구소들은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지난 18일 ‘미국 통화정책 정상화의 영향과 한국의 정책대응방향’ 보고서를 통해 외환위기가 발생할 경우 외환보유액이 1200억달러 정도 부족한 것으로 추정했으나 실제 위기가 발생한다면 부족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분석한 바 있다.

또 이번 한국 정부의 환율 개입 금지에 대한 약속이 외환위기 전 상황을 연상시킨다는 의견은 단순히 한미FTA 개정 협상 내용에만 국한되어있지 않다. 1997년 김영삼 정부 시절 미국산 소고기 수입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의 요청에 한국 정부는 소극적이었고 외환위기가 본격적으로 발발하기 직전인 그해 11월 당시 임창열 경제부총리는 미국과의 자동차 협상에서 "한국은 이제 미국과 이혼할 때가 됐다"고 발언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를 악화시켰다.

이후 한국 정부가 위기에 처하자 일본에 외환보유고 문제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지만 당시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로버트 루빈은 일본의 미쓰즈카 대장상에게 "한국에 대한 지원은 IMF의 틀 내에서 실시한다. 일본도 이같은 방침에 협력해 달라"며 사실상 지원을 차단했다. 당시 강만수 통상산업부 차관은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중국에 외환보유고 문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국가간의 관계가 악화되면 최악의 상황에서 구제를 받을 수 없고 특히나 미국이라는 강대국과 외교적 마찰은 빚는다면 상대적으로 약소국인 한국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다.

해외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이번 한미FTA 개정 문제를 북한 문제와 연동시켜 해결하려는 협상가적 기질을 발휘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맥락으로 보아 트럼프의 무역 정책이 단순 보호무역주의의 일환으로 보기엔 힘들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통상과 안보는 서로 다르다는 투트랙 전략을 고수하고 있어 대중·대북 문제에 대한 견해 차이가 결국 미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불러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번 환율 문제에 대해 협상 내용 자체도 문제가 많지만 정부가 국내 여론을 의식해 미국의 발표가 잘못됐다며 섣불리 탓을 돌렸던 것은 미국과의 관계를 너무 가볍게 보고있기 때문이 아니냐며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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