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성 기자.

뉴욕이나 도쿄에서 살면 어떨까?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부산에서 태어나 사랑하는 가족과 정든 친구들 몇 명을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 가면 성공할 거 같았다. 가끔 뉴욕이나 도쿄를 상상하는 이유도 바로 그 성공에 대한 갈증 때문일 것이다.

부산보다는 서울이 더 큰 도시고 회사도 많다. 서울보다는 도쿄가 그럴 것이고 도쿄보다는 뉴욕이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세련된 도시, 넘치는 활력, 뭔가 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도시의 일원이 됐다는 것에 ‘지옥철’이라고 불리는 대도시의 지하철에 매일 아침 몸을 싣고도 천국에서 사는 사람처럼 웃는다.

부산에서 서울까지는 왔지만 도쿄와 뉴욕으로까지 진출하지는 못했다. 서울이 나에게 충분한 기회를 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쿄와 뉴욕으로 갈 정도의 자신은 있지 않았다. 문화적으로 다른 곳에서 생활한다는 것이 결코 녹녹치 않을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은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글로벌 시대가 됐다고는 하지만 타국은 타국이다. 타향이 주는 느낌과는 차원이 다르다. 선뜻 해외로 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작년 한국을 떠난 이민자가 1458명이었다. 1년 전인 2016년에는 455명이었다. 미국에 가장 많은 923명, 캐나다에 207명, 호주·뉴질랜드에 151명, 남미·유럽·아시아 국가들로 떠난 이민자가 177명이었다.

한국은 과거 해외이민이 많았으나 급속한 경제성장과 삶의 질 향상으로 이민이 줄어드는 추세였다. 몇 백명 단위였던 이민자는 1970년 1만명을 넘어섰고 1974년부터 1981년까지 3만명을 유지하다 1993년 8133명으로 다시 1만명 이하로 내려왔고 지난 2016년 몇 백명 단위로 돌아왔다가 작년 급격히 늘었다.

기업할 자유가 줄어들고 연구할 자유가 줄어들고 취업할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사람들은 자신의 꿈을 이뤄줄 뉴욕과 도쿄와 같은 곳으로 향했다. 행복한 노후를 준비할 자유가 있는 5060세대와 좋은 직장을 가질 자유가 있는 2030세대가 집중적으로 한국을 탈출했다.

엉터리 탄핵, 선동꾼이 된 언론, 포퓰리즘을 남발하는 지도자를 보면서 절망하고 마음을 둘 곳이 없는 중장년층은 미국으로, 글로벌 경제 호황에도 불구하고 '나홀로 불황'을 만들어내는 정치로 인해 일자리가 없는 청년들은 일본으로 각각 향했다.

대한민국 이민의 역사는 자유를 찾아 떠나는 미국행이었다. 정확한 이민자 통계가 잡히기 시작한 것은 2002년부터지만 1962년부터 이민자에 대한 기록이 있다. 1962년부터 2017년까지 55년간 전체 이민자 116만8576명 중 미국으로 향한 자는 83만5407명(71%)에 달했다. 

미국으로 간 이민의 역사는 1902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한제국의 한인 102명이 인천항(당시 제물포항)을 출발해 1903년 1월13일 하와이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이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자로 취업이민을 떠났다. 

1887년 조선과 미국의 통상수호조약이 미국 이민을 가능하게 했고 타국에서 느끼는 불안정은 종교에 의지했다. 기독교 탄압에 힘들어하던 당시 인천 내리교회 신자들은 종교의 자유를 찾아 하와이 이민을 적극적으로 검토했고 최초 미국 하와이 이민자 102명 중 상당수가 기독교 신자였다.

가난과 자유를 찾아 한 달 이상을 배를 타고 하와이로 간 선조들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5060세대는 13시간이면 미국의 본토까지 날아갈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지만 1948년부터 70년에 불과한 대한민국의 짧은 역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자신들이 더 이상 마음 둘 곳이 없어 이민까지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는 것에서 누가 더 비극적인지는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다.      

윤희성 기자 uniflow84@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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