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올해 3분기 가계와 기업의 빚이 국가 경제 규모의 두 배를 넘어섰다. 생활고를 겪는 가계와 경영난에 빠진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고, 한편으론 대출을 통해 부동산·주식 투자 자금을 끌어모으며 가계·기업 빚이 역대 최대로 치솟은 것이다. 

한국은행이 24일 공개한 '금융안정 상황(2020년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말 현재 민간 부문의 신용(가계·기업의 부채)은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211.2%로 집계됐다.

부채 규모는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75년 이래 가장 가파르게 상승했다. 민간부문 빚은 지난 2분기(206.9%)와 비교해 불과 3개월 만에 4.8%포인트(p) 올랐고, 1년 전인 작년 3분기(194.7%)보다는 16.5%p나 뛰었다.

가계 부채는 1682조1000억원으로 지난해 3분기와 비교해 7% 늘었다. 주택담보대출과 기타대출(신용대출 포함)이 각 7.2%, 6.8% 증가했다. 이에 따라 가계 부채는 명목 GDP의 101.1%까지 치솟으며 사상 처음 GDP를 넘어섰다.

이처럼 가계 빚은 빠르게 불었지만, 처분가능소득은 1년 동안 불과 0.3% 늘어나는 데 그치면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이 171.3%로 높아졌다. 역시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2년 4분기 이후 최고 기록이다.

한은은 "가계신용은 주택관련대출, 신용대출 증가세가 확대된 가운데 가계의 처분가능소득 증가율이 낮아지면서 채무상환 부담이 늘어났다"며 "아직까지는 가계대출 건전성이 양호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경기회복 지연 등으로 소득여건 개선이 미약할 경우 취약가구를 중심으로 부실위험이 증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업 대출은 1332조2000억원으로 작년 3분기(1153조원)보다 15.5% 불었다. 이는 명목 GDP의 110.1%로, 3분기(108.3%)와 비교해 3개월새 1.8%p, 작년 3분기(101%)보다 9.1%p나 뛰었다.

한은은 자산시장과 관련해 "채권 및 주식시장의 변동성이 축소되었으나 주택시장은 가격상승 압력이 높은 모습"이라며 "자산시장으로의 자금쏠림이 지속되면서 금융·실물 간 괴리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한은은 은행의 자산 건전성에 대해선 아직 양호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은행의 수익성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인 총자산순이익률(ROA)은 올해 1∼3분기 중 0.52%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0.16%포인트 낮아졌으나, 대표적인 건전성 지표로 부실채권 현황을 나타내는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40%로 하락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정책 당국의 원리금 상환 유예 등의 조치가 영향을 끼친 만큼 리스크는 유보되어 확대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계 대출 증가에 따른 차주(돈을 빌린 사람)의 채무 상환 능력을 보면, 전체 차주의 LTI(소득 대비 부채비율)는 3분기 말 평균 225.9%로 작년 말보다 8.4%p 높아졌다. 연령별로는 60대 이상(250.6%)의 LTI가 여전히 가장 높지만, LTI 상승 속도는 30대 이하(221.1%)와 40대(229.4%)에서 가장 빨랐다. 두 연령층에서 올해 들어서만 LTI 비율이 각 14.9%p, 9.9%p 뛰었다.

특히 저소득 차주(328.4%)가 작년 말과 비교해 가장 큰 폭(15.5%p)으로 뛰었다. 이는 같은 기간 중소득, 고소득 차주 상승률(8.6%p, 7.1%p)의 거의 두 배 수준으로, 저소득층의 생계형 대출이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저신용·소득층이면서 세 군데 이상에서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를 뜻하는 '취약 차주'의 LTI(246.3%)도 올해 들어 8.6%p 높아졌다.

다만 대출금리 하락, 주택담보대출 만기 장기화 등의 영향으로 전체 차주의 DSR(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은 35.7%로 2018년 말(39.6%) 이후 계속 떨어지는 추세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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