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으로 1930년대 통상전쟁 발발
反세계화와 경제불황 결국 2차 세계대전 낳아
현재 세계경제 성장수준 예전 같지 않아
미국, 자국 일자리 위해 냉전시대 무역법 꺼내
美中통상전쟁 상황에서 한국 세밀한 전략 세워야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최근 가열되고 있는 미중(美中)통상전쟁은 그 끝이 어디인지 예상하기 힘든 상황으로 치닫고 있어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트럼프와 시진핑이라는 강대강의 파열음이 더욱 커지고 있는 모습이다. 이를 두고 1930년대 대공황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지적도 등장하고 있다. 1930년 6월 통과된 스무트 홀리(Smoot-Hawley) 법안은 2만 여개가 넘는 수입품목에 대해 40%의 고율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이었다. 이렇게 되자 영국 독일 캐나다 등에서 보복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통상전쟁이 대공황을 심화시켰다는 주장이다.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보다 정확하게 인과관계를 살펴 보면 대공황은 이미 1929년 10월 29일 이른바 ‘검은 화요일’의 주가 대폭락으로 발생해 미국을 비릇한 세계경제를 강타하고 있었다. 1920년대 미국경제는 1차 대전(1914. 7~1918.11) 중 군수물자였던 자동차 라디오 등 신기술 제품을 중심으로 경제가 호황을 보이고 덩달아 부동산 증권도 활황을 기록해 주가는 1921년 8월부터 1929년 9월까지 장기간 상승세를 지속했다. 거품을 우려한 미국연방준비은행은 1929년 8월과 9월 연이어 재할인율 인상 등 금융긴축을 단행하자 거품증세를 보이던 주가가 폭락하면서 대공황의 서막을 열었다.

주가가 폭락하자 기업부도가 급증하고 은행들의 부도가 이어졌다. 그러나 당시 금본위제로 인한 통화정책의 경직성으로 인해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해 신용경색이 심화되면서 소비와 투자가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성장률은 1930년부터 마이너스로 급락하고 실업률은 급증하는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서둘러 자국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기 위해 1930년 6월 스무트 홀리법을 제정해 고율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으나 영국 독일 캐나다 등의 보복관세를 부과하는 등 효과가 없자 1933년 관세휴전을 추진했다.

이처럼 1930~33년 간의 통상전쟁은 대공황의 원인이 아니고 결과였다. 경제불황이 심화되면 자국의 일자리 보호를 위한 통상전쟁이 발발하게 마련이다. 물론 통상전쟁으로 대공황이 심화되었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주가폭락이 대공황으로 이어지게 된 원인으로 소득과 투자의 감소, 금본위제로 인한 통화정책의 경직성, 은행부도로 인한 신용경색, 통상전쟁이 지적되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통상위축 등 반세계화와 그로 인한 경제불황 장기화가 마침내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 발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국제정치적 원인들이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미국 영국 등 선발공업국과 독일 일본 등 후발공업국 간의 세계시장 쟁탈전으로 볼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첫 번째 세계화 시대는 1870~1914 기간 중이었다. 이 기간 중 국제무역은 연 평균 4% 증가해 세계GDP에 대한 국제무역의 비중이 1870년 10%에서 1914년 22%로 증가하고 자본이동규모도 연 평균 4.8% 증가해 세계GDP에 대한 자본이동규모의 비중도 1870년 7%에서 1914년 20%로 증가했다. 그 결과 세계경제는 세계 1인당 GDP 연평균 증가율이 1820~1870년 중 0.53%에서 1870~1914년 중 1.3%로 증가하는 등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14년 1차 대전 발발과 함께 세계화가 후퇴하는 대반전이 일어났다. 1914년부터 대공황이 발발한 1929년 기간 중 세계GDP에 대한 세계무역의 비중은 22%에서 16%로 하락하고 세계GDP에 대한 자본이동의 비중도 20%에서 8%로 하락했다. 그리고 마침내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하고 1930년대 경제불황을 배경으로 국가가 실업문제를 해결해 주겠다는 국가사회주의인 파시스트 (Fascists)와 나치(Nazis)가 대두했다. 국가사회주의로 실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음이 자명하게 되자 마침내 시장쟁탈을 위한 세계2차 대전이 1939년에 발발한 것이다. 이로서 세계화의 후퇴는 재앙이 된다는 점을 역사는 가르쳐 주고 있다.

이에 대한 각성으로 전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orld Bank)(1944), 관세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1947) (후일 세계무역기구(WTO)로 재탄생) 등 자유무역과 자본이동 증진을 위한 새 제도들이 창설되었다. 그 후 세계무역은 매년 11% 증가해 세계GDP에 대한 무역의 비중이 22%에서 42%까지 증가하고 세계GDP에 대한 자본이동의 비중도 5%에서 21%로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그 결과 세계 1인당 소득도 매년 2%씩 증가하는 등 세계경제는 큰 발전을 이룩해 왔다. 한국경제의 도약도 이 시기에 이룩했다.

그러다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의 제로금리정책과 양적 완화 통화정책으로 이제 세계경제는 회복국면으로 접어들었지만 성장수준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를 두고 하버드대의 래리 서머스(Larry Simmers) 교수 등은 세계경제 장기정체론(secular stagnation thesis)을 주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자국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나온 정책들이 미중을 중심으로 한 통상전쟁이다.

특히 최근 들어 철강관세 부과 근거로 안보상 이유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냉전시대의 유물인 미국 무역법 232조를 제시하고 있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USTR), 래리 커들로 미국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등이 연이어 반중연합세력 필요성을 제기하며 반중동맹결성을 촉구하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이에 대응해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추진하고 아시아의 미국맹방으로 자타가 인정하고 있는 일본마저 미국을 제외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추진하고 있는 등 국제통상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세계경제 환경이 이처럼 완전히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어떻게 하면 후대에 번영하는 대한민국을 물려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역사적 안목을 가지고 능동적이고 세밀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잘 못하면 미중통상전쟁 와중에 등터지는 새우가 되는 정도가 아닐 수도 있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에 북핵문제를 두고 미중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들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숨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오늘 대한민국의 선택은 미래 대한민국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일들이 한꺼번에 몰려들고 있다. 격화되고 있는 미중통상전쟁에다 북핵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미중관계까지 가세해 한반도가 분쟁의 중심이 되는 비극이 초래되어서는 안된다.

오정근 객원 칼럼니스트 (한국금융ICT융합학회 회장, 디지털통화금융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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