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도입하고 '임금 개편'은 빼자?...임금피크제 빠진 정년연장과 다를 바 없어
노사 간 균형 뒤흔드는 '노조법 개정안'...노조에 기운 운동장의 경사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
강성 노조가 대기업-공공기관 장악하고 있는 한국, 文 정부 들어 완성되는 노조공화국

추경호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분석한 ‘2021년 공공일자리 현황’에 의하면 내년에도 노인 일자리 83만여개, 청년 일자리 8만여개 등 1년 이하 공공 일자리 97만개가 쏟아진다고 한다. 주 1시간만 일해도 취업자로 분류되는 통계상 허점을 노린 일자리 창출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대규모 ‘공공알바’는 ‘고용의 질’을 떨어뜨린다. 경제 현상에 우연은 없다. 이 같은 고용참화는 문재인정권이 자초한 것이다.

모든 일에는 그에 합당한 ‘근본 원인’(root cause)이 있기 마련이다. 정책은 계층 간에 중립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지고 집행 돼야 한다. 그럼에도 문재인 정권은 영혼을 끌어 모으듯이 노사 간에 기울어진 운동장의 경사도를 더욱 급격하게 만들었다. 노사 중립적 노동개혁을 외면하고 노조의 권한을 키우는 방향의 ‘친(親)노동정책’을 노골화했다. ‘정책의 편향성’이 누적되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민간기업의 활력이 북돋아질 리 없고 해외자본의 국내진출이 이뤄질 리 없다. 시장을 통한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진정한 의미’의 일자리가 만들어질리 없다.

하나씩 짚어보자. 지난 25일 대통령 직속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는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공식화했다. 제도화를 위한 국회 차원의 입법이 뒤따를 것으로 전망된다. 경사노위는 노동이사제 도입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붙였지만 ‘문대통령 공약사항’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경사노위 발표를 보면서 2017년 5월 12일 문대통령의 인천공항공사 방문이 오버랩 됐다. 문대통령이 당선 후 제일 먼저 인천공항공사를 방문한 것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공약 때문이었다. ‘비정규직 제로’가 결코 정책이 될 수는 없다. 인천공항공사에 자회사를 만들어 그곳에 비정규직을 배속시키는 방식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풀었다. 일종의 변칙이다. 비정규직은 척결되어야 할 ‘악(惡)’이 아니다. 고용형태가 다양해지면서 다양한 비정규직이 만들어지고 있다. 본질은 ‘비정규직의 처우개선’이지 폐지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세금으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을 대폭 늘려왔다. 내년에도 97만개의 정부 발(發) 세금 임시 일자리를 만든다고 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O 노동이사제 거머쥐고 집권 4년차 문재인정부 탑승한 노조

집권 4년차에 ‘공약이기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는 경사노위의 주장은 정말로 군색(窘塞)하기 짝이 없다. 모든 공약이 정책화될 수는 없다. 공약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노조의 집요한 이익추구 행위가 결실을 맺은 것이다. 노조는 ‘노동이사제’라는 승차권을 거머쥐고 문재인 정부의 열차에 올라탔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해 의결권을 갖고 경영에 참여하는 제도이다. 취지는 근로자의 참여로 경영 투명성을 높이고 부실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 논리대로라면 ‘아직 노동이사제가 도입되지 않은 현재’ 모든 공공기관은 부실하고 투명하지 않아야 한다. 무릇 제도를 도입하려면 그 효익(效益)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게 투명성을 제고하고 부실을 막을 수 있는지를 논증해야 한다. 이 같은 설명 의무를 지지 않고 ‘노동이사제가 필요하기 때문에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이는 ‘동어반복(同語反覆)’일 뿐이다.

공기업에는 이미 강력한 노조가 조직되어 있고 매년 노사 간에 임단협(임금및단체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제도적으로 노사 간에 균형이 맞춰져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노동이사제는 이사회의 ‘옥상옥(屋上屋)’이거나 아니면 ‘사족(蛇足)’ 중 하나가 될 수밖에 없다. 노동이사제를 반대로 해석하면 ‘노조집행부에 사측이 추천하는 인사가 반드시 포함돼야’ 맞다.

경사노위는 노동이사제는 받아들이되 직무급제는 추후 ‘연구과제’로 남기겠다고 했다. 합의문에 의하면 ‘직무급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노력하되, 획일적·일방적 방식이 아니라 기관별 특성을 반영해 개별 공공기관 노사 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추진한다’로 되어있다. 신중을 기해야 한다면 노동이사제도 획일적 일방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노사합의를 통해 자율적·단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노동개혁 차원에서 노동이사제가 논의될 때 ‘임금체계 개편’도 정책 패키지로 ‘동시 논의’ 대상이었다. 결과적으로 단 것만 삼키고 쓴 것은 뱉은 꼴이다. 박근혜 대통령 때에도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정책묶음에서 유리한 것만 취사선택했다. 정년은 연장되었지만 임금피크제는 유야무야 폐기됐다. 노동이사제가 도입되고 나면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은 없던 것으로 치부될 공산이 크다.

일각에서는 독일사례를 들어 노동이사제의 정당성을 주창한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독일의 기업 지배구조는 집행기구 역할을 하는 경영이사회와 견제 역할을 하는 감독이사회로 나뉘어 있다. 그리고 경영이사회에 노조 추천인이 들어가지 않는다. 맥락이 다르다.

O ‘노조법 개정안’ 통과되면 기울어진 운동장 경사도 더 가팔라질 것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6일부터 노동법 3법 심의에 착수했다. 노동 3법은 “전(全)국민고용보험,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개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과 연계한 노동조합법 개정”이다. ‘노조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노조 쪽으로 기운 운동장의 경사도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측된다.

노동계는 차치하더라도 정부와 여당마저 ILO 협약비준이 늦어지면 ‘노동 후진국’의 오명을 뒤집어쓸 것이라고 주장한다. ILO 협약비준 찬성론자들은 유럽연합(EU)의 무역제재 가능성을 들어 조속한 비준을 주창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겁박에 가까운 과장이다.

ILO 협약의 이면(裏面)에는 ‘노동권 희생의 대가’로 저가 상품을 생산해 경쟁 우위를 견지함으로써 공정한 무역질서를 흔들어선 안 된다는 논지가 숨어있다. 따라서 무역제제를 가하려면 ‘노동권을 보호하지 않아 통상질서를 저해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특정기업과 특정재화가 아닌 ‘한 국가를 대상으로’ 무역 제재를 가할 만큼의 객관적인 증빙을 하기는 불가능하다.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의 대기업 임금은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걱정해야 할 만큼 이미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국제적으로 비교 가능한 글로벌 자동차 조립기업의 임금을 보면 된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노동 단결권은 최고수준 수준으로 보장되어 있다. 빈발하는 파업사태가 이를 웅변하고 있다. 국내에 진출한 외국자본이 철수를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인데 무슨 노동권의 희생인 가.

노조법 개정안에는 ‘해고자·실업자의 노동조합 가입 허용’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 자체가 노동시장을 뒤흔들 메가톤급 조치들이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 이들 조치가 더해지면 노사 간 공정경쟁의 장(level of playing field)인 운동장은 기울다 못해 뒤집힐 것이다. 노조천국이 될 것이다.

O 친(親)노동의 노조천국이 되면..

노동이사제 도입, 노조법 개정 이전에 우리나라 노사관계는 ‘동등무기원칙(equal footing)’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노조의 파업권이 인정되면 사측의 영업권도 같은 비중으로 인정돼야 한다. 파업권은 최고로 인정되지만 영업권은 사실상 부정되고 있다. 사측의 ‘대체근로 투입’이 제한되어 노조의 파업에 대항할 무기가 제공되고 있지 않다. 생산현장 점거 파업도 불법이다. 생산현장의 각종 시설 및 설치물은 노조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생산현장을 떠나 ‘피켓 시위’를 하는 것이 맞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글로벌 대기업과 공공기관은 이미 강성 노조가 장악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노조에게 힘을 실어주는 법과 제도가 추가적으로 도입되면 한국은 노조공화국이 된다. ‘주주와 공공’의 이익보다 노조의 이익이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공공기업의 경우 노조의 이익이 공공의 이익과 등가물(等價物)일 수 없다. 민간 기업의 경우, 주주에 앞선 노조이익 추구는 기업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글로벌 대기업의 경우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가 일반화돼 있다. 단체교섭을 지렛대로 생산성에 비해 높은 임금을 받았다는 것을 자백한 것이다. 편의점 알바 근로자는 해고가 살인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기회임금을 받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고용의 질이 계속 악화되어 왔다. 민간 영역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 않아 정부가 세금 일자리로 미봉(彌縫)했기 때문이다. 노동계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어떻게 활발한 경제 할동이 일어나고 해외자본의 한국 진출이 문전성시를 이룰 수 있겠는가. 경제는 혁신과 투자로 견인되어야 한다. 그러면 고용이 뒤따르고 시장에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비정규직을 없애겠다고 부산을 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을 가장 많이 양산한 정부로 기록될 것이다. 청년은 희망을 잃은 지 오래이다. 정부가 떨어뜨리는 부스러기를 집기에 바쁘다. 노조천국을 만들기 위해 영혼을 끌어 모을수록 요즘 유행하는 말로 ‘영끌’할수록 젊은이의 현실은 더욱 참혹해진다. 문재인 정권만 이를 모른다. 한국의 비극이다.

조동근 객원 칼럼니스트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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