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본색’ 시작과 끝

1995년 9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권 4수’를 위한 정당 새정치국민회의가 만들어졌다. 창당을 앞두고 각계 각층에서 새 인물이 속속 영입되는 가운데 김대중 총재가 가장 반색한 인물은 사시 24회 출신으로 춘천과 인천, 전주지방법원 및 광주 고등법원 판사 출신인 추미애였다.

당시 야당의 형편상 요즘과는 달리 판사 출신을 구하기 쉽지 않았는데, 무엇보다 추미애는 호남 정치인 일색이었던 새정치국민회의의 분위기를 바꿔줄 대구 출신 세탁소집 딸이었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결정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지난 24일 오후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배제 결정에 대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 초년병 시절 추미애, “웃음 많고 서글서글한 새댁”

김대중 총재(DJ)를 처음 면담하는 자리에서 추미애는 “평소 총재님을 존경해서 판사시절에 몰래 총재님의 유세장을 찾아가곤 했습니다”라고 했고, 기분이 너무 좋았던 DJ는 가는 곳 마다 이를 자랑하곤 했다.

이런 추미애는 권노갑 김옥두 등 동교동계 정치인들이 애지중지하는 ‘보물’이 됐다. 그 무렵 행사가 있으면 측근들은 늘 DJ 옆에 서려고 하는 호남 정치인들을 끌어내고 추미애를 그 옆에 세웠다.

다음 해인 1996년 제 15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안전하게 뱃지를 달기 위해 전국구(비례대표) 행을 고민하던 추미애에게 DJ는 서울 광진을 출마를 권했다. 당시 그에게 광진을을 준 것은 이곳이 서울에서 호남출신 유권자의 비율이 가장 높다는 단 한가지 이유였다.

새정치국민회의 영입후, 정세균 설훈 윤호중 등과 함께 부대변인으로 활동한 추미애는 웃음기 많고, 그저 서글서글한 새댁의 모습이었다. 부대변인으로서 논평을 쓰면 “한번 읽어 봐 달라고”고 먼저 기자들에게 보여주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치를 하기에는 너무 유약(柔弱)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1997년 대선 때 대구서 ‘추다르크 유세단’ 이끌며 김대중 당선...독해진 계기

‘추다르크’라는 별명을 얻게된 것은 1997년 대선 때 김대중 후보의 유세단장으로 대구에서 활동하면서 “지역감정의 악령으로부터 대구를 구하는 잔다르크가 되겠다”며 유세단 이름을 ‘잔다르크 유세단’이라고 불렀던 데서 유래한다. 당시 야당 특히, 김대중 후보에 대한 반감이 극심했던 대구에서 활동하면서 정치인 추미애는 독해지고 강단도 생겼다고 한다.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이 되고, 추미애가 여당 국회의원으로 활동 할 때, “사람이 독해졌나?”라는 생각이 들게하는 일이 있었다. 역사가 오래된 한 언론사 간부 및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언쟁이 생기자 “이런 친일파의 후손 같은 X들”이라고 호통을 쳐서 화제가 됐다.

추미애는 2002년 제16대 대선를 앞두고 펼쳐진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율이 낮을 때부터 지지했다. 노무현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되고 난 후,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당내에서 대선 후보 교체를 위한 움직임이 일어났지만 “후보 교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지지를 철회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 분당사태 때 열린우리당에 합류하지 않고 민주당에 잔류하며 오늘날의 ‘친문그룹’과는 정치적으로 결별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도 초반에는 반대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곧이어 실시된 17대 총선에서 추미애는 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는데, 민주당이 탄핵에 동참한 것을 사죄하는 ‘3보1배’를 해야만 했다. 하지만 탄핵역풍을 맞은 민주당은 9석의 의석을 얻는데 그쳤고 본인도 낙선했다. 훗날 그는 “내 정치 인생 중 가장 큰 실수이자 과오가 탄핵에 찬성한 것”이라고 했다.

노무현 탄핵찬성으로 낙선, “내 정치인생의 가장 큰 과오”

좋게 표현하자면 ‘행동주의 소신파’라고 할 수 있는 그의 캐릭터를 잘 보여준 것은 2009년 12월 야당인 민주당의 4선 의원으로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할 때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은 회의장에도 못 들어오게 하고 한나라당 의원들과 조율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전격 통과시킨 것이 꼽힌다.

당시 추미애 위원장 혼자서 여당 의원들과 함께 통과시킨 노조법 개정안은 야당과 진보 노동계가 반대해온 복수노조를 허용하고 노조 전임자의 임금지급을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추미애 위원장이 자신의 민주당 및 민노당 의원들의 출입을 막기위해 질서유지권까지 동원해 날치기를 하자 민주당은 해당행위자로 규정, 출당 등 징계를 논의했다. 과거 노무현 탄핵에 찬성했던 것과 연결돼 ‘추미애 본색’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추미애 본색’은 ‘진영 콤플렉스’의 산물...친문 대표주자 노리나

그동안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찍어내기 위해 억지와 졸렬, 궤변과 유치함으로 일관함으로써 여당 의원들까지 혀를 차게 만들었다. 마침내 24일 윤 총장에 대해 직무집행 정지명령을 내리자 “어쩌다가 저런 정치괴물이 생겼나”라는 탄성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정치는 어떻게 정치인 추미애를 ‘괴물’로 까지 불리게 만들었을까? 핵심은 현재 추 장관 뒤에 숨어있는 문재인 대통령이다. 윤석열 총장을 축출해야 한다는 문재인 대통령 및 친문세력의 강력한 의지와 추미애 장관의 캐릭터가 합쳐진 결과인 것이다.

그래도 판사 출신이자 법률가인 추 장관이 이토록 무리하게 법 상식과 정반대의 행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법무부장관으로서 보여주는 ‘추미애 본색’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이에대해 여의도의 정치평론가들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나섰다가 정치적으로 큰 좌절을 맛보아야 했던 경험이 추 장관으로 하여금 친문 진영에 의존하게 만드는 상황으로 해석하고 있다. ‘진영 콤플렉스’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와관련, 정치분석가 최우영씨는 “정치인 추미애에게 법무부장관은 스쳐 지나가는 자리일 뿐 더 큰 목표가 있을텐데 철저하게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그룹과 연대하고 조국 전 장관, 김경수 경남지사를 대체할 친문의 대표 주자가 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고 말했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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