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성의 자유로운 세상] 자유주의가 가장 진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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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초승인 2018.03.28 09:18:37
  • 최종수정 2018.04.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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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자유주의가 민주주의 타락을 막는다
국가우위, 官우위의 4400년 역사
개인의 자유 우선시하는 우파야말로 가장 진보적
현재 대부분의 우파는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우파'
민주우파이면서 동시에 '시장우파'여야 해
박기성 객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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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유주의와의 조우(遭遇)

1982년 9월 어느 날 가을 햇빛이 들어오는 사회과학관 1층에서 시카고대학교(the University of Chicago) 대학원 경제학과 신입생 60여명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하버거(Arnold C. Harberger) 교수는 사람들은 시카고에서 이념(ideology)을 가르친다고 하는데 우리는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 후 5년여의 대학원 생활 동안 자유는 공기 같은 존재였다. 어디에나 있는 것으로 간주되고 생존에 필수불가결한 공기처럼 자유는 아주 당연한 것이었다. 경제학의 이론적 모형이나 경험적 연구에도 선택의 자유가 항상 전제되었다. 대학원생들은 충족해야 하는 요구사항 이외에는 무슨 강의를 수강하든지, 강의 출석을 전혀 안 하든지, 무슨 연구를 하든지 자유였다. 박사학위를 위한 자격시험도 본교 대학원 경제학과 학생이 아니어도 누구나 응시하여 차별 없이 합격할 수 있었다. 실제로 외부인으로 이 시험에 합격한 후 장학금을 받고 입학하는 경우도 있었다.

효용을 극대화하는 소비자와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이 시장에서 어우러져 최적의 결과를 가져온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은 최대한 보장된다. 이런 개인들이 모여 사회나 국가를 구성하므로 사회나 국가 자체의 목적을 위해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을 시장만능주의 사회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두 축은 시장(market)과 자발성(voluntarism)이다. 빌 게이츠(William H. Gates)와 워런 버핏(Warren E. Buffett)과 같은 부호들이 큰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는 것을 비롯해서 지체장애 학생의 학업과 생활을 도와주는 봉사 등 수 많은 자발적인 봉사가 이루어진다. 자발성을 고양하기 위해 학교에서의 교육과 국가의 세제 등 여러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자발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개인에게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 골목 슈퍼나 빵집, 서점 등이 문을 닫아 골목상권이 위축되는 것이 안쓰러운 국민은 골목 상점에 가서 상품을 사는 자발성을 발휘하면 된다. 그렇지 않은 국민은 아무 제약 없이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는 무슨 역할을 해야 하는가? 정부는 모든 국민에게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을 제공하면서 국민 개개인의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하여 자원배분을 왜곡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개인과 기업에게 자유와 선택을 마음껏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2. 민주우파와 시장우파

이념적 스펙트럼은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정도에 따라 구분된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쪽이 우파이고 개인보다 사회 내지 국가를 우선시하는 쪽이 좌파이다. 좌-우프레임 대신에 진보-보수프레임을 사용하면 이념에 대한 부정확한 서술이 되고, 이미 용어사용에서 좌파에게 유리하게 된다.

한반도에서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것은 매우 파격적인 사상이었다. 예를 들면 1969년 1월 정부는 서울, 부산, 대구의 쌀 도매상의 영업을 완전봉쇄하였다. 그 대신에 농협공판장만이 쌀 소매상에게 쌀 한가마(80kg 중품)당 5,000원에 공급하여 소매가격 5,220원에 팔도록 명령하였다. 쌀 도매상들은 졸지에 가업을 잃게 되었지만 그 누구도 저항할 생각조차 못했다. 또 다른 예로 서울상대를 졸업하고 ROTC 2기로 임관해서 전방에서 복무하고 있던 한 젊은 장교가 1965년 2월 부대에서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통보받았다. 서울의 중산층이었던 그의 가족이었지만 진상조사조차 요구할 생각을 못하였다.

개인의 자유나 권리보다 국가우위, 관우위의 생각은 한반도 4,400년 역사에서 항상 지속되었으며 뼈 속 깊이 뿌리내려 왔다. 이런 사회에서 집단이나 국가보다도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우파야말로 가장 혁신적이고 진보적이다. 그러므로 진보라는 용어는 오히려 우파에게 어울린다. 보수주의(conservatism)란 미국의 건국 초기부터 헌법(Constitution) 등에서 우선시되어 온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유지・보전한다(conserve)는 의미이다. 한국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우선시된 적이 드물기 때문에 보수주의라는 용어는 오해를 야기할 수 있다.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정치체제와 시장으로 대표되는 경제체제의 두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정도에 따라 좌-우를 나눌 수 있다. 정치체제에서는 자유민주주의(liberal democracy)가 우이며 독재(autocracy)가 좌이다. 경제체제에서는 시장경제(market economy)가 우이고 계획경제(planned economy)가 좌이다. 정치를 종축으로 경제를 횡축으로 하고, 정치축의 맨 위에 자유민주주의를 맨 아래에 독재를 놓고, 경제축의 맨 오른쪽에 시장경제를 맨 왼쪽에 계획경제를 놓으면 네 개의 분면을 가진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이면서 시장경제이므로 일사분면의 맨 위 오른쪽에 위치하지만, 북한은 독재이면서 계획경제이므로 삼사분면의 맨 아래 왼쪽에 위치한다. 정치적 우와 경제적 우 그리고 정치적 좌와 경제적 좌가 반드시 같이 가는 것은 아니다. 피노체트(Augusto Pinochet) 정권 때의 칠레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가 거의 박탈되었지만 경제활동에 있어서는 꽤 자유가 있어서 사사분면에 위치한다. 유신전 박정희정권은 정치적・경제적으로는 상당히 자유로워 일사분면에 위치하나 유신후부터 전두환정권까지는 개인의 정치적 자유가 매우 위축되어 사사분면에 위치한다. 문재인정권은 현재는 정치적으로 꽤 자유롭지만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문재인케어, 토지공개념 등의 경제민주화와 무상복지정책으로 인해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제약되어 이사분면에 위치한다. 이러한 정권을 탄생시킨 것은 국민들의 대다수가 이사분면에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재산권 침해 등으로 경제적 자유가 더더욱 제약되면서 직접민주주의 등을 통해 인민독재로 향하여 삼사분면에 위치할 위험성이 있다.

경제활동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시장우파”는 우리나라에서 극히 소수이며 대부분의 우파는 정치체제로서의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우파”이다. 즉,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북한에 반대하는 “민주우파” 또는 “안보우파”이면서 시장보다는 정부의 각종 보조금이나 퍼주기 식의 온정적 정책(paternalistic policies)에 기대는 “반시장좌파”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하는 “민주우파”이면서 동시에 “시장우파”이다. 이사분면에 위치한 대한민국을 일사분면으로 이동시켜야 번영할 수 있다.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문화적 자유 중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자유는 무엇인가? 경제적 자유 즉 재산권의 보호와 행사의 자유이다. 특히 정치적 자유는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라기보다는 경제적, 종교적, 문화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유이다. 그러므로 이사분면에 위치하는 나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주의 국가가 아니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국가사회주의(nazism, fascism, national socialism)나 일본의 군국주의(militarism)는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전체주의(totalitarianism)이기 때문에 좌파로 분류되어야 하며, 최근 아베정권의 행태는 우경화가 아니라 좌경화 내지 군국주의화로 표현되어야 한다.

3. 민주주의보다 자유주의

개인의 자유는 인간의 천부적 인권이며 인간 존엄성의 근원이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실현하는 제도로 민주정(民主政)이라고 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민주적 선택의 결과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면 자기모순이며 그 결과는 자유주의 원칙에 따라 수정되어야 한다.

중위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에 의하면 유권자 양식의 평균적인 수준에 따라 그 사회의 모습이 결정된다. 끼워팔기식 선거공약이나 정책이 각 유권자에게 독이 된다는 깨달음을 가지면 민주주의는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다. 유권자가 자유주의 원칙에 충실하다면 인기영합적 공약과 정책을 제시하는 후보자는 선출되지 않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평균적인 양식에 자유주의 원칙이 확고하지 않으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공약을 남발하는 후보자가 집권할 것이다.

국민들 각자가 자유주의를 확고하게 지지하는 것이 민주주의가 타락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구체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자유인 경제적 자유에 초점을 맞추어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신장하는 쪽으로 모든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1960년대부터 민주화 시위가 있었는데, 지나놓고 보니까 항상 민주화를 외친 것에 대해 필자는 속았다는 느낌이 든다. 사실 프랑스 혁명에서는 자유라는 단어가 먼저 나온다. 즉 자유를 담아내는 시스템이 민주주의인데 우리는 늘 자유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민주주의가 지고의 선(善)인 것처럼 사회를 휩쓸었다. 어느 사회이고 민주화가 최우선적인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자유와 인권이 최우선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예외적으로 민주주의가 지고지선의 위치에 올라 광장의 촛불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사회는 자유가 뭔지 인권이 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공부가 없었고 개념정리도 없이 그저 “민주주의가 최고”라고 외쳐 왔다. 결국 민주주의만을 끝까지 주장하고 그 길을 추구하다보면 인민민주주의로 전락한다. 인민민주주의란 한 마디로 대중에 의한, 인민에 의한 독재이다. 소수가 희생당하고, 개인이 말살당하고, 그게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인민독재가 되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존중 없이 민주주의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그 귀결점은 인민민주주의 북한 아니면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박기성 객원 칼럼니스트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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