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명칭 논란
본질은 퇴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
자기들이 헌신처럼 버려놓고
노무현-김대중만 대통령이라니
국민에게 냉소와 분노만 불러

동남권 신공항 이슈가 정국을 빨아들이는 작은 블랙홀이 됐다. 아직 공식적으로는 정부가 기존 김해공항 확장안을 백지화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정치권과 언론 모두 부산 가덕도에 짓는 것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다. 가덕도 신공항은 설계는 커녕 아직 적정성 검토조차 들어가지 않은 단계이다. 내년도 예산에 적정성 검토 용역비 20억원이 겨우 편성됐다.

‘가덕도 신공항’ 이슈가 점화되면서 여당은 내년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참가할 명분을 얻게 됐다. 야당은 여당의 잘못과 독주에 맞서 결연히 싸워야 하는 시점에 오히려 당내 TK세력과 PK세력이 사분오열하는 모양이다. 반면 정치권 주위의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그 명칭에 관한 좋은 논란거리를 찾아냈다. 

'노무현 공항’, ‘김대중 공항’, ‘문재인 공항’, ‘오거돈 공항’?

동남권 신공항의 이름 논란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띄웠다. 안 대표는 19일 최 고위원회의에서 “검증위 발표가 나자마자 여당에선 가덕도 신공항을 기정사실로 하고, '노무현 공항'이라 는 명칭까지 흘리고 있다”고 발언했다.

조 전 장관이 같은날 페이스북에 이같은 내용의 언론 보도를 인용하고 “이런 비난 기꺼이 수용하여 공항 명을 지으면 좋겠다. 가덕도 노무현 국제공항!”이라고 제안해 논란이 커졌다. 이어 그 뒤를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씨가 “김대중 공항에 한 표 던지겠다”면서 가세했다.

이에 야권에서 비판이 나왔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그냥 ‘문재인 공항’이라고 하세요. 노무현 대통령은 보궐 선거 때문에 공항을 짓는 것에 반대했을 것”이라고 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최고위원도 “공항을 짓 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한 ‘오거돈 공항’이라고 하자”며 공방을 이어갔다.

대통령 이름을 딴 공항 실현 가능할까? 진짜 문제는?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한 번 전직 대통령 이름을 부여하게 되면 똑같은 요구가 전국적으로 도미노 처럼 쏟아질 것이다. 대통령의 업적이나 기여를 기준으로 하면 가덕도 공항은 ‘노무현 공항’이지만, 경부 고속도로는 ‘박정희 도로’이고, 호남선 KTX는 ‘노태우 철도’가 되어야 한다.

대통령의 이름을 부여해서 그 업적을 기리는 방식도 이젠 다소 시대에 맞지 않아 전근대적 느낌을 준다. 공항은 그래도 봐줄만 하지만, 대학으로 넘어가면 어떨까? 문재인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 추진하는 전남 나주 한전공대는 학생들이 고마움을 잊지 않도록 ‘문재인공대’로 해야 하고, 공공의대도 또한 ‘문재인의대’ 로 해야할까. 이쯤되면 전근대를 넘어 봉건적인 수준이다.

앞서 2014년 11월에도 영호남 국회의원들과 지방자치단체장들이 공동으로 남부권 신공항과 전남 무안공 항에 각각 ‘박정희 공항’과 ‘김대중 공항’이라는 명칭을 부여하는 사업을 추진키로 했으나 무산됐다.

전문가들도 이것이 그저 온라인 상의 담론일 뿐이지 실제 대통령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 고 전망한다. 물론 현 정부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많은 일들을 겪게 되는 만큼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찬성 여론이 높다면 고려해 봄직 할 것이다.

그러나 이름 논란 자체가 실상은 눈속임일 뿐이다. 공항의 이름이 공항 보다 더 이목을 끌게 되면서 다른 문제점은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된다. 게다가 논란이 점차 커질수록 ‘가덕도 신공항’은 더욱 기정사실화되는 프레임에 걸려들게 되는 것이다. 지지자들이 오히려 전직 대통령의 이름에 먹칠하는 일이기도 하다.

본질은 퇴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이다

‘노무현 공항’을 진지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은 해외의 사례를 예로 든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캐나다의 피에르 트뤼도 국제공항, 프랑스의 샤를 드골 국제공항 등이다. 해외 선진국들이 하 는데 우리라고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 이름 뒤에 가려진 본질이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퇴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이다. 미국의 대 통령들은 재임시 보다 퇴임 이후 더 많은 존경을 받는다. 미국인들은 공항이나 도로, 건물, 군함 등에 퇴임 대통령의 이름을 붙여 국민들의 머릿속에 계속 살아있도록 한다. 케네디 공항, 레이건 공항, 조지 워싱턴 도로, 조지 부시 도로, 지미 카터 도로, 우드로윌슨 빌딩, 아이젠하워 항공모함, 제네럴포드 항공모함 등 무수하게 많다.

우리나라의 전직 대통령들이 처한 현실과는 정반대이다. 퇴임 이후 국민들의 존경은 고사하고 감옥에 가 지 않으면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권의 모든 것을 뒤집고, 먼지 하나까지 싹 털어댄다. 정치는 증오를 이용해 국민들을 갈라친다.

여권이 노무현 공항을 말하는 것은 모순...다른 대통령에 대한 예우 먼저

내가 존중 받고 싶으면 먼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인간 사회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노무현의 업적과 김대중의 업적을 존중받고 싶다면 앞서 다른 전직 대통령들의 업적들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여권이 보낸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어떠했는가? 이명박과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 주요 혐의 중 여러 부분에서 과거 정권에서 정치적 관례로 인정되던 행위 들을 사법적 테두리에 씌웠다. 현 정권에 같은 기준을 들이대면 온전할 권력이 없을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박정희, 이승만 대통령을 역사에서 아예 지워버릴 것처럼 행동했다. 과오를 지나치게 부 풀리고 공적을 지나치게 축소했다. 국립현충원에서 파묘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너무나 이념 적인 기준으로 역사를 재단했다.

역사관이 균형을 잃었고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이미 헌신처럼 버려진 것이 오래이다. 그런데 여권은 노무현 대통령의 유업을 기리는 차원에서 ‘가덕도 노무현 공항’으로 하자는 것이다. 이것이 다른 대통령은 대통령도 아니고 노무현, 김대중만 대통령이라는 말과 어떻게 다른가?

정치가 균형을 잃으면 국민들의 냉소와 불신만 더해진다. 우리 정치가 찾아야 할 것은 대통령의 이름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균형감각이다. 

이세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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