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인들의 조국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제국’의 그것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포츠담선언’을 전격 수용함으로써 한반도에 진주(進駐)한 연합군이 3년 간 군정(軍政)을 실시했고, 여러 국제적 여건 속에서 1948년 5월10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의회가 이승만(李承晩) 박사를 대통령으로 선출, 같은 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완전히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일본으로 넘어간 대한제국의 주권은 1947년 5월 왕공족, 화족(華族) 등 일본 내 특수 신분 계급의 폐지와 함께 소멸해버렸다.

박순종 펜앤드마이크 기자
박순종 펜앤드마이크 기자

최근 나는 어느 독자로부터 ‘더럽게 할 일 없는 기자’라는 지적을 받았다. 독자의 지적인 만큼, 겸허한 마음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히 ‘급변하는 지구촌에서도 태평세월 한반도의 더럽게 심심한 기자’가 ‘더럽게 할 일이 없는’ 관계로 ‘더럽게’ 황당한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때때로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을 법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조선(대한제국)은 우리나라인가요?”

이 질문도 그런 질문들 가운데 하나다. 이 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은 황당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당연한 질문을 어째서 하느냐는 뜻이다. 그러면 나는 “조선(대한제국)은 ‘우리나라’라고 할 수 없다고 본다”는 내 생각을 가감없이 말해준다. 이런 내 주장을 들으면 사람들은 “그게 말이 되느냐?”며 더욱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오늘날 한국사 교육에서는 우리나라의 시원(始原)이 ‘단군조선’에 있다고 가르친다. 기원전 2333년에 천손(天孫) 단군왕검이 아사달(阿斯達)에 도읍을 만들고 건설했다는 ‘단군조선’을 중심으로 형성된 ‘우리 민족’은 뒤이어 고구려·백제·신라를 건국했으며 이들 세 나라 간 항쟁의 결과 통일신라가 등장했고, 이후 고려와 조선(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에 이르기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단일한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찬란한 문화를 꽃피워왔다고 가르친다.

거짓말이다. 우선 ‘민족’(nation)이라는 단어 자체가 18세기 프랑스 혁명기에 만들어진 비교적 신조어라는 점과 이 신조어가 20세기 초 일본을 거쳐 유입됐다는 점을 안다면, 한국사 교과서가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는 이같은 역사 기술이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점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민족’이라는 낱말이 존재하지 않는데 ‘민족’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사실 내가 주목한 점은 따로 있다. 바로 ‘주권’(主權, sovereignty)에 관한 문제다.

조선(대한제국)도 ‘우리나라’이고 대한민국도 ‘우리나라’라고 한다면 ‘우리나라’인 조선(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은 ‘같은 나라’라는 뜻이다. 실제 현대 한국인들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주권의 연속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과연 조선(대한제국)과 대한민국이 ‘같은 나라’인지를 따지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주권이 명백하게 단절돼 있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헌법에 해당하는 ‘대한국국제’(大韓國國制, 이하 ‘국제’)를 살펴보면 ‘국제’는 제2조에서 “대한제국의 정치는 이전부터 오백 년 간 전래(傳來)하시고 이후부터는 항만세(恒萬歲)에 불변하오실 전제(專制) 정치이니라”라고 정하며 대한제국이 이전에 존재한 조선을 승계한 나라임을 분명히 하면서 그 주권이 백성이 아니라 그 군주에게 오롯이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국제’는 또 그 군주가 무한한 군권(君權, 군주로서의 권리)를 향유하면서(제3조) 육·해군의 통솔과 계엄 및 해엄을 명할 권리(제5조), 법률을 제정하고 반포하며 외국과의 조약을 체결하고 대사(大赦)·특사·감형·복권을 명할 권리(제6조)를 갖고 있다고 선언하고 있다. 즉, ‘국제’를 우리는 통해 대한제국의 국가체제가 그 군주가 의회의 견제도 받지 않을 정도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진 ‘전제군주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난 1965년 국교정상화 때 한·일 양국 사이에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이 비록 대한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모든 조약이 무효임(제2조)을 선언하고는 있지만, 대한제국 황제가 오롯이 누리던 대한제국의 주권은 1910년 8월22일 조인(調印)된 한일병합조약이 정한 바에 따라 일본으로 이양됐다. 이후 대한제국 황실 구성원들이 일본의 특수 신분 계급인 왕공족(王公族)으로 편입돼 호의호식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대한제국의 주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강제성이 있었느냐 없었느냐로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그것은 대한제국 황실과 일본이 상호 간에 따질 일이지, 주권을 갖고 있지도 않았던 당시 백성들이나 그 후손들이 따질 일은 아니다.

1948년 8월15일 중앙청 청사(옛 조선총독부 청사) 앞에서 거행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사진=국가기록원)
1948년 8월15일 중앙청 청사(옛 조선총독부 청사) 앞에서 거행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국민 축하식.(사진=국가기록원)

현대 한국인들의 조국 ‘대한민국’의 주권은 ‘대한제국’의 그것을 이어받은 것이 아니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포츠담선언’을 전격 수용함으로써 한반도에 진주(進駐)한 연합군이 3년 간 군정(軍政)을 실시했고, 여러 국제적 여건 속에서 1948년 5월10일 국회의원 총선거를 통해 구성된 제헌의회가 이승만(李承晩) 박사를 대통령으로 선출, 같은 해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됨으로써 완전히 새롭게 생겨난 것이다. 일본으로 넘어간 대한제국의 주권은 1947년 5월 왕공족, 화족(華族) 등 일본 내 특수 신분 계급의 폐지와 함께 소멸해버렸다.

대한민국헌법은 제1조에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과(1항) 대한민국의 주권이 국민에 있음을(2항) 천명하고 있다. 그 군주에게 무소불위의 권력을 부여한 ‘국제’ 따위에 비교될 수 없는 것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이 근본적으로 대한제국이나 그 이전 시기 한반도에 존재한 국가들로부터 승계된 것이 아님을 바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상의 논거를 들어 나는 한국사 교육을 재편할 것을 틈만 나면 주장해 왔다. 1948년 건국된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국사’로 하고 그 이전에 일어났던 모든 일을 ‘만주·한반도사’로 묶어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역사 인식이 설 때, 한국인들이 그 엉터리 같은 ‘민족’ 개념에서 탈피, 자립하는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오늘날 한·일 두 나라 사이의 역사 문제도 이런 인식 아래에서 비로소 해결될 수 있다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단일 민족’이라는 허상의 개념 속에서 자폐를 앓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이 언제쯤이면 세계 시민의 일원(一員)이 될 수 있을까?

‘급변하는 지구촌에서도 태평세월 한반도의 더럽게 심심한 기자’가 ‘더럽게 할 일이 없는’ 관계로 ‘더럽게’ 황당한 망상의 날개를 펼쳐 본다.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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