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오늘날 세계적 기업으로 만든 주인공인 이건희 회장이 작고했다. 그는 세계 속에 한국의 존재를 심어준 사람이다. 이건희가 회장이 된 1987년까지만 해도 우리가 미국 등 해외에 출장을 가면 한국산 전자제품은 상점 뒤편에 놓이는 저가품이었다. 이런 시기에 선대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회장에 취임한 이건희는 회사의 비전을 위해 승부수를 띄웠다. 무려 4개월에 걸려 1,800여 명의 임직원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새로운 정보화 시대를 맞는 삼성의 변화를 촉구했다. 그때 나온 유명한 말이 "처자식 빼놓고 다 바꾸어라."라는 말이다. 그 후 삼성의 신경영 전략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면서 반도체, 액정표시장치(LCD), 모니터, 휴대전화 애니콜 등 세계 1등 제품을 줄이어 내놓았다.

한국은 이런 재벌들의 활약에 의해 세계 7, 8위 권의 교역국이 되었다. 우리가 건국 시에 세계에서 끝에서 2번째 정도 되는 극빈국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대기업을 일구어 온 이건희 회장 같은 기업가의 활약에 당연히 경외심을 갖게 된다. 그런데도 오늘날 한국 사회는 재벌 총수들이 만들어낸 성과에 합당한 존경심을 갖고 있지 않다. 마치 대기업의 경영이란 누가 해도 다 저절로 되는 것으로 여기는 듯하다. 이런 정서를 반영하는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재벌 대기업 승계 시 무려 65%라는 지분 상속세를 매겨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을 막는 제도다. 그 밖에도 대기업 재벌을 옥죄는 규제가 너무 많아서, 오늘날 대기업 재벌의 자율 경영이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다. 아마도 오늘날 한국인의 정서로는 대기업 재벌을 그 창업자의 가문이 승계하는 것보다는 똑똑한 전문경영인을 세우는 것을 정의로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소유권과 결부되지 않은 전문경영인 체제가 늘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대기업이 자유 시장 체제의 제도로 자리 잡는 데 있어서 그 발명자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도 간혹 전문경영자의 문제가 드러난다.

이 사례는 스콧 페이퍼사의 회장이었던 알 던랩(Albert J. Dunlap)이라는 사람에 관한 것인데, 스콧 페이퍼사는 나중에 킴벌리 클라크 사에 인수된 회사다. 자기 업적에 대해서 들으려고 하는 사람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업적에 별 관심이 없는 사람에게까지 억지로 “나는 이런 사람이며, 우리 회사는 이런 회사다.”라고 하면서 자랑을 하려고 애를 썼다. 그가 최고경영자가 되고 나서 19개월 후, “스콧 페이퍼는 미국 기업 역사상 가장 성공적이며, 가장 빠르게 혁신한 사례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는 다른 회사에 앞서 또 다른 혁신을 시도할 것이다.”라는 인터뷰 기사가 비즈니스 위크지에 실렸다. 이런 자랑의 결과, 그는 스콧 페이퍼에 단지 603일 동안 근무하고 CEO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자신이 보유했던 회사 주식에서 개인적인 부를 약 1억 달러나 챙길 수 있었다. 이 금액을 603일로 나누어 보면, 하루에 16만 5천 달러, 즉 하루에 2억 원 이상씩 벌어들인 셈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큰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결국 근로자에 대한 임금 삭감이라든가,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해서 회사의 장래를 어둡게 하면서도, 그가 집요하게 공들인 ‘거품 만들기’의 결과였다. 그는 회사를 매각하기로 처음부터 마음먹고, 매각 직전까지 회사에 성장 호르몬을 놓아 아주 가파른 성장을 할 것 같이 만드는 수법을 썼던 것이다. 던랩은 그 후 자신의 자서전에서, 자기자신을 ‘경영자의 옷을 입은 람보’라고 자랑스럽게 묘사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이 사례는 소유권과 결부되지 않은 전문경영자는 관료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큼을 보여준다. 관료주의란 쉽게 말해 진정한 책임을 지지 않고 형식만을 갖추는 행태를 말하는데, 그런 사람이 책임자로 있는 조직은 실질적인 경제적 성과는 내지 않으면서 경영이 아닌 ‘정치’를 하고, 그 결과 서서히 침몰한다. 우리 사회가 대기업의 경영체제를 소유권과 관계없는 전문경영체제로 몰아가는 것은 어쩌면 재벌을 해체하여 관료주의의 희생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문근찬 자유경영원 대표, 전 숭실사이버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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