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차베스, 지방분권 개헌과 자치위원회를 혁명의 도구로
-지방분권은 자칫 각급 인민위원회 창설하는 통로로 될 가능성
-생업에 전념하는 선한 시민들을 동네 정치판으로 내몰고 말 것

정규재 대표 겸 주필.
정규재 대표 겸 주필.

 촛불 탄핵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집권세력으로서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하겠지만 한마디로 문재인 정권이 제안한 이번 헌법개정안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며 정치 변란적이다. 왜 촛불시위를 혁명으로까지 불러야 하는지를 의심했더니 결국은 개헌과 사회체제의 변개 즉, 정변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랬던 모양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을 정당화하며, 대중의 시기심을 부채질하고, 지방분권의 이름 아래 각급 인민위원회를 창설하려는 시도로 볼 수밖에 없기에 문재인 헌법개정안을 전면 거부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민주주의를 지키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국가적 희망과 요구사항을 붉은 문자로 써서 바람벽에 높이 내걸기만 하면 국민들의 삶과 정치수준이 마치 주술처럼 개선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두교의 정치학이거나 혹은 전통의 문자 숭배로 비치는 것이 바로 이번 헌법 개정안이 드러내는 지성의 수준이다.

문재인 헌법 개정안의 두드러진 특징의 하나는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지극히 우울증적으로 묘사한다는 점이다. 이는 항거와 투쟁, 반란과 폭동을 정당화하는 것이며 억눌린 자, 저항하는 자의 헌법일 뿐 대한민국인들의 보편적 삶의 궤적이며 그것을 기록하는 전문이랄 수 없다. 헌법 전문에 6월 항쟁과 5.18까지 써 넣고 나면 오늘날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그리고 위대한 성취를 이룬 대한민국과 그 나라를 건설한 국민들은 4.19와 부마항쟁과 5.18로 타도되어야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는 대한민국을 두 개의 세력으로 분할하는 것이며 소위 민중민주화 세력들이 저항과 항쟁을 통해 서서히 자유민주주의 국민을 타도하는 일련의 혁명의 성공 과정을 서술할 뿐인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겐 이런 일견 철학적이며 사상사적 분석의 잣대를 들이댈 시간적 여유가 없다. 헌법은 놀랍게도 지방정부라는 새로운 개념을 끌어들이고 풀뿌리 민주주의를 간판으로 내세우면서 국민들의 정치일상을 바꾸고 한국 사회를 소위 인민위원회 체제로 개편하려는 음험한 시도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나는 시급히 고발하지 않을 수 없다. 인민위원회는 지방 정치를 동네 좌익들에게 쥐어주는 것이며, 대한민국을 작은 촌락공동체의 연합으로 환원하는 것이며, 6.25 이후 사라졌던 작은 인민 독재자들의 지배체제를 되살리려는 시도요, 세계를 향해 열려있는 큰 시장을 동네 시장, 골목시장으로 치환하게 되는 퇴행이며 퇴보다.

이는 정확하게 베네수엘라의 차베스가 시도했던 바로 그 2009년 전후 시기의 정치변동과 같고, 거슬러 가면 소비에트 단위로 혁명의 전위조직을 만들고자 했던 레닌의 시도가 재연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지방분권 주장이 북한과의 연방제를 준비하기 위한 명분이요 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는 우선 대한민국 전역에 걸쳐 각급 자치조직의 이름으로 인민위원회를 창설하려는 시도라고 봐야 할 것이다. 각급 단위의 사회주의적 정치동력을 확보하고 민중적 정치구조를 마치 한국 민주주의의 인프라처럼 불가역적으로 깔아놓으려는 혁명적 계획이다.

차베스가 재선 대통령으로 취임한 것은 20071월이다. 그러나 그의 사회주의 개헌안은 그해 12월에 깨끗하게 부결되었다. 차베스가 내걸었던 국정 과제는 5개였다. 비상대권을 규정한 수권법이 첫째였고, 볼리바리안 대중교육이 둘째,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셋째, 개헌이 넷째라면 지방분권이 다섯째였다. 차베스는 1, 헌법이 만들어진지 40년이 넘었고 2, 그동안 세계가 많이 변했기 때문에 새 헌법이 필요하고 3, 민중 혁명이 일어났기에 그 의지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차베스 개헌안은 1,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고 2, 사회복지와 시민의 권리를 대폭 확대하며 3, 새로운 국가의 권력구조를 창출하기 위해 주민자치위원회를 청설하고 4, 사적경제를 사회적 경제로 전환하고 5, 대통령의 권한을 확대하자는 주장을 담아내는 36개 개정안으로 제출되었다. 놀랍게도 50%가 넘는 반대가 형성되면서 차베스 개헌안은 부결되었다. 그러나 차베스는 2006년부터 주민자치위원회를 창설하기 시작했다. 2007년이 되었을 때 위원회는 1만개에 이르렀고 최종적으로는 6만개의 위원회가 1만개의 코뮨을 구성하며, 3000개의 사회주의 도시(마을), 200개의 연방지역을 설립하는 목표가 제안되었다. 이들 자치위원회는 각급 지방행정기구를 견제 혹은 대체하면서 지역 권력을 장악하는 방법으로 차베스 혁명을 완수하는 역사적 의무를 지는 조직들이었다. 국가 조직에 병행해서 설치되는 이들 자치조직은 말 그대로 차베스의 전위대요 지지조직이며 언제라도 국가를 전복할 수 있는 정위치에 도열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히틀러가 국가 동형권력이라고 부르는 광범위한 외곽 조직들을 만들어 정치를 틀어쥐었던 수법과 너무도 유사하다. 이 개헌안은 나중에 기어이 통과되었다.

문재인 지방분권의 숨은 의도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자칫 성미산 마을의 전국판이 되거나 좌익들이 공을 들이고 있는 공동체 마을사업의 확장판이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우리는 이미 6.25전쟁 중에 나타났던 인민위원회의 다양한 악행을 경험한 바 있다. 그들은 붉은 해방구들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고 죽창과 완장을 휘둘렀다. 물론 21세기에 그런 종류의 동무들이 갑자기 그리고 노골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이 규정하는 지방분권 정치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게 되면 그 결과를 예상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지방은 중앙 정치와는 달리 권력의 견제나 균형이라는 논리가 성립하기 어렵다. 아니 성립하지 않는다. 권력의 원천인 인민을 누가 감히 견제하고 그들의 방종을 꾸짓는다는 말인가. 제도적 균형 따위는 간접민주주의 혹은 대의제에서나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인민은 원천적으로 독재적이다. 지방의 작은 시민단체들과, 그것과 결탁한 좌익 정치지망생들과, 이권을 추구하는 작은 장사꾼들이 모여서 생업에 전념할 뿐인 보통의 건전한 시민들을 억압하고 차별하며 작은 자유조차 닦아세우는 그런 공포와 혼란 그리고 정치로 온통 어지러울 뿐인 그런 마을들을 만들어 내게 될 것이다. 선량하고 생업에 바쁜 보통의 시민들은 기실 정치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다. 이는 재건축 지역에서 필연적으로 터져나오는 크고작은 분쟁들만 봐도 명백하다.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선호하는 것은, 정치는 전문가들에게 맡기고 시민들은 생업에 전념코자 함인데 좌익은 모든 인민들이 기어이 광장에서 멱살을 틀어쥐는 독재적 권력추구 행위만을 활성 민주주의라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에 미친 그들에게는 법치주의와 국가의 절제를 키워드로 하는 안정된 제도로서의 자유민주주의가 여간 불편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좌익과 우익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좌익은 정치를 끊임없이 동요하는 무언가로 만들어야 민주주의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소요유발자들의 운명을 갖고 있다. 이들은 지방자치 혹은 분권이라는 이름으로 세계를 부정하고, 큰 시장을 거부하며, 광역적 논리를 부정하여, 골목의 이권들을 놓고 투쟁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국가와 도시를 중심으로하는 문명적 발전은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방과 혁신은 뒤로 밀린 채 골목을 더 잘게 분할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져 결과적으로 나라 경제는 후퇴와 쇠락의 뒷걸음질을 치게 될 것이다. 베네수엘라처럼 소위 동반성장식의 논리가 동리단위로까지 치고 들어가면 이제 한국의 지방들은 중세봉건적 경제구조를 서서히 받아들이게 되는 일련의 쇄국적이며 폐쇄적인 경제구조로 함몰하게 될 것이다. 큰 기업과 세계를 뛰는 기업가들이 지방 자치에 접속될 기회는 없다.

바보들의 풀뿌리 민주주의는 그렇게 인민의 만세를 부르게 될 것이다.

정규재 대표 겸 주필 jkj@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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