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부 생존위한 판사들의 자각 시작됐나

법조계에서 이런 말이 있다. “검찰보다 법원, 판사들이 몇배는 더 정치적이다”

검찰의 정치성은 대통령이 검찰총장을 임명하고 검사들의 인사권을 쥐고있는 만큼 (총장 입장에서는) 대통령과 정권을 보위하고 검사들은 출세, 즉 승진을 지향하는데서 나온다. 따라서 검찰의 정치성은 철저히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기류, 심기를 쫓는 측면이 강하다.

반면 법원, 판사들의 정치성은 여론 지향성이 강하다. 가끔은 전관 변호사의 영향력이 순리와 법 상식과는 다른 판결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재판에서 판사들은 ’법과 양심‘은 물론 여론까지 살핀다.

그래서 과거 재판장들은 중요 사건의 판결을 앞두고 법원 출입 기자들의 마음을 떠보는 일도 잦았다. 독립된 사법부로써 법원이 걸어 온 생존방식이기도 하다.

뜻밖으로 받아들여진 김경수 지사 선고강행, 실형선고

법조계에서 지난 6일 있었던 김경수 경남지사에 대한 항소심 선고재판은 두가지 측면에서 ’의외‘로 받아 들여졌다. 첫째는 지금처럼 마냥 미루어질 줄 알았던 재판의 선고가 강행됐다는 점이고 둘째는 사건의 본안인 ’드루킹‘ ’킹크랩‘에 의한 여론조작 대해 유죄판결이 난 점, 그리고 김경수 지사에 대해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이 유지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관계서 “다른 사람을 다 합친 것 보다 더 영향력이 센” 실세로 알려져 있는 김경수 지사의 재판에 대해 법원 주변에서는 “계속 미루거나 어떻게 든 무죄가 되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항소심 재판만 해도 1년 이상을 끌었고, 유무죄 여부에 대한 재판장과 주심 판사의 갈등설이 계속 흘러나오자 김명수 대법원장의 ’법관 인사를 통한 솔루션‘이 예상되기도 했다.

결국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가 선고되기는 했지만 선고공판은 강행됐고, 김 지사가 현재 보석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가 아닌 실형을 선고함으로써 법원 특유의 생존 방식을 보여 주었다.

법원의 윤석열 총장 부인 회사 압수수색 영장 기각이 의미하는 것

최근 법원과 판사들의 기류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건은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 여권 및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극한갈등‘을 빚고있는 윤석열 검찰총장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법원이 기각한 것이다.

친 여권, 추미애 장관 계열인 이성윤 검사장이 이끌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9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부인이 운영하는 회사의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가 통째로 기각됐다. 이와관련, 검찰 내에서는 “중앙지검이 월성 원전 1호기 수사에 대한 보복성 조치로 윤 총장의 사퇴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법원은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2부(정용환 부장)가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에 대해 “주요 증거들에 대한 임의제출 가능성이 있고, 영장 집행시 법익 침해가 중대하다”는 사유로 기각했다.

이런 영장기각 사유는 이례적이다. 일반적으로는 범죄 소명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영장이 기각되는 경우가 많지만 법원이 주요 증거들에 대한 임의제출 가능성을 언급하는 일은 거의 없다.

한마디로 이 영장은 판사가 “작심하고 기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조국 민정수석을 통해 발탁한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후 8명의 대법관 후보를 제청했다. 자신을 포함, 대법원을 구성하는 13명의 대법관 중 9명이 이 정부에서 임명된 것이다. 이에따라 지난 9월 서울대 한규섭 교수 연구팀이 2005년 9월부터 2020년 9월까지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문 274건을 분석한 결과 문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들에 비해 훨씬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음이 나타나기도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무더기 유죄 인용에 초장기 징역형 선고, 한일문제와 관련한 ’코드판결‘ 등이 그 결과다.

최근 법원의 동향,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는 세태의 조짐?

우리 헌법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판사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삼는 최고의 지침이다.

김경수 지사 항소심 판결과 윤석열 총장 주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기각은 판사들의 독립성에 대한 자각(自覺)이 시작된 조짐으로 보인다. 앞서 본 것처럼 독립된 사법부의 판사들이 또 하나의 여론을 살피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정치에 관한 언급이 많은 논어(論語) 안연(顔淵)편에서 공자는 ‘초상지풍필언(草上之風必偃) 수지풍중초부립(誰知風中草復立’이라고 말했다. “바람이 불면 물론 풀이 눕기는 하지만 일시적일 뿐이다. 하지만 바람 속에서도 풀이 다시 일어서는 것을 누가 알겠느냐”고

한발 더 나아가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노래했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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