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지난 이야기다.

법원과 법무부, 검찰청을 취재하는 이른바 ‘법조(法曹)기자단’ 소속 각 언론사 기자들이 외유(外遊)를 앞두고 있었다. 당시 취임한지 얼마 안된 법무부장관은 기자단에 경비를 보태고 싶었지만 법무부에는 당연히 그런 용도의 예산은 없었다.

장관이 차관을 불러서 상의를 하니 차관은 “아무 걱정마십시오. 검찰국장을 검찰총장에게 보내 총장의 특수활동비를 좀 가져오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장관은 이 돈으로 ‘축 장도(祝 壯途’라고 적힌 봉투를 기자단에 전달했다.

국정원장과 비교하면 ‘새발의 피’이지만 검찰총장에게는 영수증 없이 써도 되는 특수활동비라는 명목의 돈이 있다. 줄고 줄어서 현 윤석열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는 연 100억원이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과거에는 그 규모가 200억원 가까이 되기도 했다.

특활비, 전두환 대통령시절 검찰조직의 충성도 관리 위해 대폭 증액

특수활동비는 수사기관인 검찰이라는 조직의 특성 때문에 배정된 예산이다. 검찰 수사에는 공식 예산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첩보 및 정보수집, 내사(內査) 과정에서 많은 돈이 든다. 마약사범의 경우 정보제공 댓가로 돈을 주기도 했다.

공식적인 수사가 시작되면 경찰 국세청 등에서 파견된 수십명의 수사팀이 몇 달동안 쓰는 식사비용만 몇천만원에 달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과거 대검 중수부나 서울지검 특수부에서 검찰총장의 특수활동비를 주로 가져다 썼다.

뿐만 아니라 과거 법무부장관들도 매년 최소 10억원 이상의 검찰총장 특활비를 가져다 썼다.

경찰청장에게는 거의 책정되지 않는 특수활동비를 검찰총장의 호주머니에 쓰고도 남을 정도로 넣어준 것은 전두환 대통령 시절 때 부터로 검찰조직의 충성심을 관리하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 실제 5공 시절 시국사범을 다루던 공안부 검사들은 총장 특활비의 주요 수혜자들이었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규모는 줄었지만 이번에 확인된 것처럼, 윤석열 총장도 적지않은 규모의 특활비를 사용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중요한 것은 이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등 이른바 ‘적폐수사’ 과정에서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은 사람들을 처벌하는 관례를 만들었다는 점이다.

국정원 특활비 상납 청와대 관계자들 뇌물죄 처벌...추미애 윤석열도 처벌 가능성

검찰은 이른바 ‘국정원 특활비 상납사건’과 관련, 2017년 11월 박근혜 정부 때의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국정원장 3명과 이원종 전 청와대 비서실장 최경환 경제부총리 조윤선 현기환 김재원 전 청와대 정무수석 등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해 구속기소 했고, 대부분은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당시 검찰이 적용한 뇌물죄의 근거는 이들간, 박근혜 대통령의 청와대와 국정원장의 ‘상하관계’였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최근 “검찰총장은 법무부장관의 부하”라고 연거푸 강조한 바 있어, 10억원 가까운 검찰총장의 특활비를 추미애 법무부장관측에서 가져간 행위는 명백히 뇌물죄에 해당된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 때 청와대 관계자들이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아 쓴 것이 뇌물죄에 해당된다는 법원의 판결이 확정된 만큼 추미애 장관의 행위도 사실상 같은 범죄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야당 또는 시민단체 등의 고발로 이 사건의 수사가 시작된다면 제공자인 윤석열 검찰총장도 수사선상에 오르고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청와대가 도저히 가닥을 잡지 못하던 윤석열 총장 퇴진 문제를 추미애 장관과 공동 사법처리에서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극단적으로는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이 이에대한 책임을 지고 함께 퇴진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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