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축산물 레드라인 그어 지키려다 자동자 분야 내줬다는 평가
對美 철강 수출, '관세폭탄' 피했지만 '70% 쿼터' 설정으로 타격 불가피
정부의 핵심 민감분야 지켰다는 발언에 이병태 교수, "1차산업 지키고 3차산업 내줬다고 자랑한다"며 비판

연합뉴스 제공

이번 한미 FTA 재협상에서 한국은 농축산물을 지키고 자동차는 내주었다. 대미(對美) 철강 수출과 관련해서도 '관세폭탄'은 피했지만 '15년~'17년간 평균 수출량(383만톤)의 70%(268만톤)에 해당하는 쿼터가 설정되어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26일 외교부 청사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협상에서 농축산물이나 자동차 분야 등에서 하나는 내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정부는 농축산물 시장 추가개방, 미국산 자동차부품 의무사용 등은 핵심 민감분야(Red-Line)로 설정하여 끝까지 입장을 관철시켰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인해 국내 자동차 시장의 타격은 불가피해졌고 철강 분야도 적지 않은 타격이 예상되고 있다.

재협상 결과로 미국은 한국 안전기준을 맞추지 못해도 미국 안전기준만 충족하면 제작사별로 연간 5만대까지 한국에 자동차를 수출할 수 있게 됐다. 기존 2만5000대에서 허용 물량이 두배로 늘어난 것이다. 또 한국에 수입되는 차량에 장착되는 수리용 부품에 대해서도 미국 기준을 인정해주기로 했다.

기존 협정에서 미국은 2021년까지 픽업트럭에 대한 25% 관세를 완전 철폐하기로 했지만, 이번 합의에서 철폐 기간을 오는 2041년까지 20년 연장했다.

양국은 5년 단위로 설정하는 연비·온실가스 기준에 대해 현행(2016~2020년) 기준을 유지하되, 차기 기준(2021~2025년) 설정시 미국 기준 등 글로벌 추세를 고려하고 판매량이 연간 4천500대 이하인 업체에 완화된 기준을 적용하는 '소규모 제작사' 제도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휘발유 차량에 대한 배출가스 시험 절차와 방식도 미국 규정과 더 조화를 이루도록 개정한다.

이에 대해 자동차업계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 속에서 정부가 자동차업계를 희생시켰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미 국내 내수시장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육박한다. 업계에선 이번 FTA 재협상으로 그 비중이 30%까지 높아져 국내 자동차 업계는 그에 상응하는 타격을 받지 않겠냐는 시각이다.

철강협회 관계자는 "무역확장법 232조 조치에서 한국이 제외된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미국의 초강경 입장으로 더 많은 쿼터를 확보하려 했던 정부의 노력이 온전히 성사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전했다.

산업부는 이번 재협상에 대해 미국의 관심 분야에서 일부 양보하면서 핵심 민감 분야는 성공적으로 방어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국 정부가 협상 전부터 '레드라인'이라고 설정한 농축산물 시장에서 미국의 추가 개방 요구를 수용하지 않음에 따라 자동차시장과 철강에서 손해를 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병태 카이스트 교수는 이번 한미FTA 개정에 대한 정부의 발표에 대해 "1차산업 지키고 3차산업 내줬다고 자랑한다"고 비판했다. 이어 "미국산 자동차란 미국 브랜드 차가 아니라 거기서 생산된 모든 차이다. 그렇지 않아도 흔드리는 한국 자동차 산업 도전이 시작되었다"라며 우려를 표했다.

현 집권세력은 과거 야당 시절 미국과의 협상이 있을 때마다 '굴욕 협상' 운운하면서 비판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 한미 FTA 재협상에서 한국이 새로 얻은 것은 아무 것도 없이 우리가 어느 선까지 양보하느냐가 초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막상 집권한 뒤 과거의 발언들이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홍준표 기자 junpyo@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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