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41주기 추도식에 참석한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참석자들로부터 야유를 받았다. 지난해 40주기 추도식 때는 황교안 당시 미래통합당 대표가 “배신자”라는 욕을 먹기도 했다.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사람들이 한목소리로 주장한 것은 2017년 3월31일 이후 3년7개월째 수감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이었다. 박근혜 전대통령은 이른바 ‘국정농단’ 등 온갖 죄목으로 징역 35년을 구형받았고 법원에서 22년형이 확정돼 수감중이다.

박근혜 전대통령이 갇혀있는 시간은 12·12, 5·18 내란과 뇌물죄로 채 2년도 감옥에 있지 않았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두배에 달한다.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은 김영삼 정부 때 구속됐다가 김대중 대통령의 취임을 앞두고 국민화합 차원에서 사면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역대 최장기 수감 ‘정치범’이자 ‘양심수’

문재인 대통령 등 소위 ‘민주화세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민주화세력을 탄압, 구금하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민간인에게 총격을 가했기 때문에 ‘학살자’라고 불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취임 두달을 앞두고 그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수감된지 2년도 지나지 않아 풀어주도록 김영삼 정부에 사면요청을 했다.

앞서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전두환 등 신군부는 내란음모조작사건을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형선고까지 내렸지만 감형조치 등을 거쳐 미국 망명에 이르기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실제로 수감된 기간은 2년7개월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12·12 5·18 반란수괴’이자 민주화세력이 ‘학살범’이라고 부르는 전두환 전대통령 보다 현재까지 1년7개월이나 더 오래 감옥에 갇혀있다. 그것도 민주화세력에 인권변호사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 치하에서...

군사반란에 민간인 학살, 수천억원의 뇌물로 비자금을 만들어 쓴 사람, 전 재산이 29만원 뿐이라며 추징금도 다 납부하지 않은 사람(전두환)과 국정농단이라는 애매한 죄명에 개인적으로는 단 한푼의 뇌물도 받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간의 불균형과 역차별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촛불이 대한민국을 휩쓸던 4년전에 비해 무수히 많은 사실이 밝혀진 지금, 박근혜 전 대통령 이렇게 긴 옥살이를 해야 할 정도로 실정법 위반, 악질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에게 덕지덕지 붙인 온갖 직권남용죄는 법조계에서 가장 애매한 죄목이다.

결국 박근혜 대통령은 좌파, 촛불세력이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하던 노조 등 공공부문 개혁을 저지하기 위해 세월호 사건과 국정농단이라는 없는 죄를 뒤집어 씌우거나 과장해 탄핵하고 세조가 단군을 유배하듯 감옥으로 보내진 ‘정치범’이자 ‘양심수’인 것이다.

일제하 기라성 같은 독립투사들 대부분 ‘4년이하 징역’, 박근혜 전 대통령에 10배 구형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투사, 1970,80년대에는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투옥된 사람들이 ‘정치범’이자 ‘양심수’였다. 그런데 일제치하 국내에서 벌어진 최대의 항일투쟁 조직사건인 신간회 사건 관련자의 최고 형량이 4년이 채 안됐고 중간에 석방됐다.

3·1운동의 유관순 열사가 받은 확정 형량은 징역 3년, 많은 사상자를 낸 윤봉길 의거의 배후로 지목돼 구속된 도산 안창호 선생의 형량도 4년이었다. 독립운동 혐의로 구속된 여운형 선생은 징역 3년, 조만식 선생은 징역 1년에 20일 정도만 구금됐다. 이들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들은 모두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최고의 훈장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에비해 21세기 한국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최고의 독립운동가들 보다 10배나 높은 징역 35년형을 구형했고 법원은 20년이 넘는 형량을 선고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초장기형 언도와 장기구금은 인권의 문제로 귀결된다. 돈 한푼 안받은 사람에게 뇌물죄, 현 정부 들어와서도 무수히 벌어지고 있는 직권남용죄를 전직 대통령이기 전에 한 인간, 가녀린 여성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다.

인권은 곧 국격의 문제다. 영화 ‘남산의 부장들’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중정부장 김재규는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하기 전에 국가의 품격, 즉 ‘국격’이라는 말을 읖조린다. 정치평론가 최우영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장기구금에 따른 인권유린이야 말로 진정한 ‘국격’의 문제”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기대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장기구금을 끝낼 수 있는 현실적이고 사실상 유일한 방법은 문재인 대통령에 의한 사면이다. 과연 문재인 대통령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을 기대할 수 있을까?

문재인 대통령이 사면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촛불혁명’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임기를 탄핵으로 중단시키고 대통령이 됐기 때문에, ‘박근혜 석방=탄핵무효’라는 프레임이 생긴다. ‘친문’을 비롯, 여권 인사 중 그 누구도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문제를 입에 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퇴임 직전에 선심 쓰듯이 사면을 할 수도 있지만 아직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는 20개월이나 남았다.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통령은 6년에 가까운 옥살이를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거의 넬슨 만델라 수준의 인권유린이다.

박근혜 문제에는 ‘꿀먹은 벙어리’...국민의힘

지난 26일 국립현충원에서 있었던 일로 돌아가보자. 현재 제1 야당인 국민의힘을 이끌고 있는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 문제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않는 ‘꿀먹은 벙어리’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에 반대하는 보수 및 중도세력이 탄핵찬성과 반대파로 나눠져 있기 때문에 양쪽 표를 다 먹으려다 보니 생기는 현상이다.

2016년 12월 9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표결 당시 여당인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중 62명이 찬성표를 던졌고, 2017년 11월 3일, 자유한국당은 '1호 당원'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출당·제명 조치를 취한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장기구금은 탄핵찬반 문제를 넘어선 인권과 국격의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1 야당, 국민의힘 국회의원들 중 그 누구도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주장하는 사람이 없다.

기자가 최근 몇 명의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물어봐도 문재인 정부와 검찰, 법원 탓을 할 뿐 먼저 석방을 외치거나 행동을 할 의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는 염량세태(炎凉世態)를 탓하기 전에 국민의힘은 정당으로서 기본이 안돼있는 상황이다.

이상호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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