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칼럼] 10월, 박정희를 생각한다
[여명 칼럼] 10월, 박정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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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근거없는 '친일파' 공세로, 반민주적 독재자로 묘사되는 인물
사회적 맥락, 현실의 삶과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선 입체적인 평가할 수 없어
2020년, 박정희 정부에 버금가는 테크노크라트적인 엘리트 집단있다고 자부할 수 있나
여명 객원 칼럼니스트

10월은 (살짝 오버해서) 박정희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0월 유신과 10.26일 서거일, 그리고 11월 14일 그의 생일까지. 유난히 빨리 다가온 찬바람을 스산하게 느끼며 박정희와 그의 시대를 반추해 본다. 100년도 안 되는 한국정치사에서 박정희라는 인물은 그를 옹호하는 전통주의자들과 그를 극렬하게 비판하는 수정주의자들의 끝나지 않는 대립 의제다. 그만큼 박정희가 한국사에 남긴 족적이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크다는 이야기다.  

누구는 박정희의 만주군 이력을 갖고 뼛속가지 친일파라고 한다. 이 주장은 2015년 박근혜 대통령의 위안부협상이 ‘그 집안의 친일본색의 발로’ 라는 궤변으로 이어진다. 누구는 권력 의지에 불타있던 박정희가 승진에 불만을 갖고 있던 장교들을 부추겨 정군운동을 명분으로 쿠테다를 벌였다 한다. 또 누군가는 경제성장은 쿠테타를 합리화시키기 위한 명분일 뿐이며, 잘 굴러가고 있던 민중의 수레바퀴를 박정희와 반란세력이 멈춰 세웠다고 한다. 여기서 ‘민중의 수레바퀴’가 대체 뭔진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들에 따르면 박정희의 야욕은 10월 유신을 통해 정점에 다다르는데, 새마을운동은 유신체제를 농촌 구석구석 침투시키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박정희는 일본식민지인 舊조선에서 태어났고 당시 신생국인 만주국은 조선의 청년지식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리고 군은 엘리트집단에 편입될 수 있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김수환 추기경도 만주국 경력이 있다. 한편 ‘민중사학자’들이 주장하는 박정희의 천황 충성맹세 혈서는 발견된 바가 없으며 그가 군에 있을 때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다. 

5.16 군사정변 모의가 정군운동 시기에 세워진 것은 맞지만, 1) 장면 정권은 정권을 지킬 의지가 없었고 2) 4.19 이후의 사회의 혼란으로 장준하 선생마저 사상계 권두언을 통해 5.16을 지지했다. 3) 당시 우리 군 작전지휘권을 갖고 있던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은 박정희를 싫어했지만, 장면 정부의 무능력함으로 인해 사태를 관망했다. 

70년대에 들어와 미국이 닉슨독트린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제의했을 때 김일성과의 막바지 체제경쟁 시기라 판단한 박정희는 자주국방은 중화학공업화의 성공여부에 달렸다고 판단, 김영삼과 김대중을 필두로 거세지고 있는 야당의 공세를 유신체제 선포로 누를 수밖에 없었다. 유신체제 하에서 시행된 새마을운동은 농촌의 삶의질 개선을 넘어서서 국민 체질 근대화 운동이었으며 이로서 농민대중이 ‘국민’ 으로 정체성을 체화했다.  

여러 사건들로 구성되는 한 시대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기록하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나 유독 박정희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은 양 진영에서 ‘정당성 문제’로 직결돼 타협이 없다, 특히 박정희 집권 시기의 어둠에만 주목하는 이들은 민주주의와 (그것이 제도로서의 민주주의인지 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인지 본인들도 정의하지 못하는) 역사의 진보라는 당위를 설정해놓고 그 당위에 맞지 않는 것은 사회적 맥락과 현실의 삶과 한계를 고려하지 않고 나쁜 것이다 치부해버린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당시 박정희의 반대편에 위치해 있던 김영삼 김대중 두 사람은 민주주의자였을까? 두 거물 정치인 역시 가신 정치인을 거느리고 있었고, ‘돈 선거’를 치렀으며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며 IMF 위기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기업을 다룬 방식은 상당 부분 권위주의적이었다. 당시 야당이 정치적 자유에 대한 대중의 갈망을 잘 응집했을 지언정 그들 자신들은 그 시대의 정치인들이 그랬듯 민주주의를 체화하지는 못했다. 

미래세대로서, 우리는 박정희를 어떻게 평가하고 연구해나가야 할까? 필자는 91년생으로, 이제 막 30대 초입에 접어들었다. 우리세대는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의 역사논쟁에 있어 직접적인 갈등에 빗겨나 있다. 그러나 역사를 글로 배우기 때문에 체험이 결여된 상상이 한 인물에 대해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평면적인 이해를 갖고 있고 거대한 신화처럼 이해하고 있다. 그 시대를 함께 만들어간 사람들, 그리고 그 시대 자체에 대한 입체적인 연구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 혹은 경제발전이라는 한 잣대로 인물의 생각이나 사상, 정책 결정을 재단하는 것이 아닌 시대 자체에 대한 이해가 우리가 지나간 역사에서 발전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삼성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다. 1세대 기업가들에 이어 2세대 기업가의 대표주자인 이건희 회장은 때로는 국가와 협력하며, 때로는 대립하며 국가 경제를 견인해왔다. 박정희 집권기의 기업가는 박정희 정부의 테크노크라트(기술공무원·참모)와 더불어 시대를 고민하고 책임을 갖고 일을 추진해나간 엘리트 집단이었다. 2020년의 엘리트 집단은 어디일까? 박정희와 오늘날을 비교하면 늘상 떠오르는 이 질문에 명확히 ‘이 집단이다.’ 라는 대답이 돌아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계절만큼 씁쓸한 현실이다.

여명 객원 칼럼니스트 (서울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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