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형 이래진 씨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후 동생을 아버지처럼 보살펴...동생은 절대 월북 아냐”
“해경의 ‘월북’ 발표는 우리가족에 대한 인격모독과 명예살인”
공무원 아들 “또다시 나라가 원망스럽고 분노 차올라...해경의 발표가 나를 무너지게 만들었다”

북한군에 의해 피격당한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가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북한군에 의해 피격당한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가 24일 추모 집회에서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정부가 북한군에 의해 총살당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씨를 '월북'으로 몰아가는 가운데 그의 억울한 죽음을 추모하는 시민들의 집회가 24일 오후 서울 종로 경복궁역 인근에서 열렸다.
‘꿈꾸는 청년들’ ‘THE 300’ ‘긍정의 힘’ 등 청년단체들은 지난달 21일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총살당한 이모씨의 사망 한 달을 맞아 추모식을 개최했다. 형 이래진 씨는 유족 대표로 참석해 추모사를 낭독하고, 조카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자필 편지를 공개했다. 코로나19와 정부와 언론의 '월북' 몰이 때문인지 이날 집회는 취재진을 제외하면 일반 시민들은 거의 참석하지 않을 채 조촐하게 진행됐다.   

이래진 씨는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 후 동생을 아버지처럼 보살펴왔다며 동생은 절대로 월북한 것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구체적인 증거도 없이 ‘월북’으로 몰아가는 군과 해경에 진실규명을 촉구했다.

이씨는 “동생이 북한군에 의해 무참하게 피격당한 지 한 달이 넘었으나 군과 해경은 ‘정신적 공황’이라는 말로 망자의 치부를 밝히는 데만 혈안이 돼 있다”며 “이는 우리가족에 대한 인격모독과 명예살인”이라고 했다. 앞서 해경은 지난 22일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실종자는 출동 전후와 출동 중에도 수시로 도박을 하는 등 인터넷 도박에 깊이 몰입돼 있었고 정신적 공황상태에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이씨는 “일등항해사였던 동생은 당일 새벽 전 승조원들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 선박을 점검하고 고속단정의 이상유무를 점검하는 등 근무 중 실족으로 인해 바다에 빠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당시 즉각 대응통신과 구조를 할 수 있었던 골든타임이 있었는데도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데 무력함과 무능함을 보여주고, 진정성 있는 사죄는 단 한 번도 없었던 군과 해경은 사죄하라”고 했다.

이씨는 이날 추모식에서 조카 이군이 아버지에게 부치는 편지를 공개했다.

이군은 “공부 잘 되냐고 물어보시던 아빠 전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서도 상상해본 적 없는데 아빠가 우리 곁을 떠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다”며 “한 달이라는 시간이 엄마와 저에게 얼마나 끔찍한 시간이었는지, 아빠가 지금 이 상황을 보고 계신다면 눈을 감지 못하고 우리 곁을 떠나지도 못 하실 것”이라고 했다.

이군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은 자기들 편한 대로 말하고 판단하여 그것이 사실인 것처럼 얘기를 한다”며 아버지를 ‘월북’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을 한탄했다.

이군은 “아빠가 47년 동안 걸어온 삶은 그 누구도 마음대로 평가할 수 없다”며 “엄마와 제 가슴 속에 자리잡은 아빠는 그저 그리움”이라고 했다.

또한 그는 “우리 앞에서 강하게 잘 버텨주고 계신 엄마가 우리가 없을 때 많이 우셨는지 퉁퉁부은 눈을 보니 저는 또다시 이 나라가 원망스럽고 분노가 차오른다”며 “대통령 할아버지께서 진실을 밝혀 아빠의 명예를 찾아주겠노라 약속을 하셨음에도 터무니없는 이유를 증거라고 내세우는 해양경찰의 발표가 저를 무너지게 만들었다”고 했다.

이군은 “아무것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아빠 오면 줄 거라고 편지를 쓰고 아빠 얼굴을 그리고 있는 동생을 볼 때마다 나중에 저 아이에게 아빠가 살해당했다는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라며 “제가 좀 더 힘이 센 어른이었다면 아빠를 찾아달라고, 아빠를 죽게 만든 사람을 벌해달라고 좀 더 적극적으로 외쳤을텐데 이런 편지밖에 쓰지 못하는 저를 용서하라”고 했다.

이날 추모식에선 2017년 북한정권에 의해 17개월 동안 억류됐다 풀려난 지 엿새만에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의 부모가 유족들에게 보낸 편지도 낭독됐다.

프랭크와 신디 웜비어 씨는 이 편지에서 “우리는 이래진 씨와 연대를 맹세한다”며 “우리는 김씨 정권의 거짓말과 끔찍한 만행의 희생자이며 그들에 대항해 함께 일어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웜비어 가족은 “트럼프 행정부는 아들을 위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우리 가족과 협력해왔다”며 “민주주의의 지도자들은 악한 외국 정권에 의해 학대당하는 자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하며 자국민이 정의와 결단을 추구할 방안을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정부는 아들 오토에 대한 정의를 구현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매우 협조적이었다”며 “민주주의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는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이씨 가족의 권리를 위해 일어서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이씨 가족이 북한정권의 거짓말에 맞설 수 있도록 정부와 함께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오전(현지시간 23일 오후)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유엔총회 제3위원회 원격회의에 출석해 북한 인권 현황을 보고하면서 이 사건을 언급했다. 킨타나 보고관은 “최근 북한 경비병에 의해 총격 살해당하고 시신이 불태워진 한국의 공무원 사건처럼 북한정부가 입경을 금지하기 위해 총탄을 사용하는 코로나19 정책을 즉각 손질할 것을 촉구한다”며 “이런 사건은 민간인을 자의적으로 사살한 것으로 보이며 국제인권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23일 이 사건을 남북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제적인 환경을 통해 새로운 여론이나 압박을 조성해 북한을 움직이는 것을 검토할 수 있겠으나 그 이전에 남북 간 접근을 통해서, 또 대화를 통해서 이 문제를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이런 방법을 우선적으로 찾아봐야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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