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턴, 美北 대화의 '판' 바꾸나
볼턴, 美北 대화의 '판'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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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주장해온 볼턴
-북한이 시간 벌려고 한다면 미북 대화 결렬 가능성도
-文대통령의 판문점 '포토쇼' 구상에도 차질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2일(현지 시각) 존 볼턴 전 유엔 주재 미국 대사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으로 임명하자 미국언론과 워싱턴 정계에서는 ‘전쟁내각’이 꾸려진 것 아니냐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백악관 NSC 보좌관 자리 하나에 워싱턴이 발칵 뒤집힌 것은 '볼턴=전쟁'이란 등식이 성립할 만큼 상징성이 큰 인물이기 때문이다.

지난 이라크전 당시로 시간을 되돌려보자. 그는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국제안보담당 차관과 군축담당 차관으로서 초강경 정책을 주도했다. 특히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며 이라크 침공을 공개 지지했다. 그리고 미국은 실제로 침공을 단행했다. 그는 북한과 이란·리비아·시리아 등에 대한 군사행동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2002년 NYT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관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책 '북한의 종말(The End of North Korea)'을 들어 보이며 "이게 우리의 정책"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2003년 북핵 6자회담 때는 미국 대표단의 일원으로 잠시 참여했다. 당시 그는 북한을 지옥이라고 칭하며 김정일에 대해 “폭군 같은 독재자”라고 비난했고, 북측의 반발로 대표단에서 빠졌다.

그는 유엔 대사 시절인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 유엔의 대북 제재 결의 1718호 통과를 주도했다. 당시 결의안 채택에 반발해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 대사가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자, 볼턴은 박 대사의 빈 의자를 향해 삿대질하며 "북한을 유엔에서 축출해야 한다"고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화염과 분노'를 언급했던 지난해 8월 "중국이 북한의 정권 교체에 동의하지 않으면 (북한) 공격이 불가피하다"고 했고, 그해 9월엔 "북한에 대한 외교적 노력은 북한에 시간을 벌어줄 뿐이다. 남은 유일한 해법은 북한 정권의 종식"이라고 했다.

볼턴은 지난 20일 자유아시아방송(RFA)과의 인터뷰에서 "(2003년) 리비아가 핵무기를 폐기하고 미국 테네시주 안보 단지 창고에 핵 물질을 보관하는 것과 비슷한 협상을 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시간을 벌려고 한다면 회담장을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대표적 한반도 전문가인 에반스 리비어(Evans Revere) 브루킹스연구소 객원선임연구원은 23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서 볼턴으로 인해 미북 대화가 결렬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리비어 연구원은 볼턴이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에서 ‘북핵 동결’이나 ‘북한을 실질적인 핵국가로 인정하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조언할 것이고, 미국이 주장하는 완전한 비핵화의 의지가 없는 북한과 협상이 결렬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미북 정상회담이 실패할 경우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조선일보에 따르면 북한은 5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제재·압박을 유지 중인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며 회담 성사 여부를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있다.

남·미·북 1.5트랙(반관반민) 회의 참석차 지난 20~21일 핀란드 헬싱키를 찾은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국 국장 직무대행 등은 우리 대표단과 만찬을 할 때 미국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내며 "조·미 수뇌 상봉이 잘될지 모르겠다. 남조선 정부가 중간에서 애써 달라"고 말했다고 여러 회의 참석자가 전했다.

특히 북한 관리들은 "미국 강경파의 목소리가 커지는 게 걱정이다. 트럼프가 회담에 안 나오면 어떡하느냐"며 우려했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1일 "남·북·미 3국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고, (회담) 장소에 따라 더욱 극적이 될 수 도 있다"고 말했다. 남북, 미북, 남·미·북 정상회담까지 모두 판문정 개최를 염두해 둔 발언으로 풀이됐다. 그러나 볼턴이 최근 "(미·북 정상회담은) 1991년 제임스 베이커 미 국무장관과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교장관이 만났던 방에서 열려야 한다"며 스위스 제네바를 회담 장소로 제의했다. 당시 회담이 결렬된 후 조지 H W부시 미 대통령은 이라크 침공을 결정했다.

김민찬 기자 mkim@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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