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숭의여고 교사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좌파라고 인식하거나 아니거나 관계 없이) 우파 쪽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비판하는 지식인들, 그리고 자신이 우파라고 생각하면서도 우파의 철학이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통점이 한가지 있다. 자본주의에 회의적이거나 적대적이라는 점이다. 그들은 반자본주의에 기반을 둔 경제적 재분배 정책들을 자신의 도덕 감정을 내세우며 지지한다.

문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 혹은 반감이 한국 사회에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너무나 보편적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어, 사람들은 이제 자신이 반자본주의적 시각을 갖고 살아간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자신이 경제적 정의 혹은 경제 민주화를 추구하는 입장에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 멀리 갈 것 없이 불행히도 한국의 우파를 대변하는 입장에 선 정치인들이 그런 사고를 하고 있다. 반면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주장을 하면 이제 구시대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꼴통 보수)으로 간주되거나, 혹은 심지어 반자유주의적인 사고를 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에 비관용적인) 열린 사회의 적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외로워 할 필요는 없다 (아니, 더 외로워질 수도 있겠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로 시야를 넓히면 사실 놀라운 모습도 아니다. 20세기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서구의 학자와 지식인들은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자신의 지성의 특출함을 발휘해왔다. 과거 냉전 체제 하에서도 사상의 자유를 외치는 대학과 학계(academia)는 반자본주의 전파의 본산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부자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개인적 노력에 대한 보상을 감소시켜 생산을 위축시키고 인간의 게으름과 의존성을 고취하는 이중의 잘못이라고 말했다. 더도 덜도 할 것 없는, 인간의 경제적 상호작용에 대한 냉철한 핵심이다. 하지만 대학교의 경제사학자들은, 당시 영국은 중상주의 정책이 시행되던 때로 대규모 상회사 집단들이 아시아 상품의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 중이었고 무역을 위해서는 토지보다는 자본의 형태를 띤 재산이 중요했기에, 이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세금에 대해 스미스가 부정적인 시각을 보인 것은 <국부론>의 저술 의도가 경제적으로 지배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던 당시의 상인 엘리트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스미스의 이기적인 동기는 그런 상인 엘리트들에게 이익을 안겨다 주는 것보다는, 보다 통찰력 있는 논리로 자신의 책이 많이 팔리고 그로써 더 높은 명예나 보다 명망 있는 대학교의 교수직을 확보하는 것에 있지 않았을까? 왜 스미스가 자신과 상관도 없는 부유한 상인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려 했을 것이라는 억지 논리를 펴는 것일까? 반자본주의 논리에 눈이 멀면 이성을 상실한다. 실제로 스미스가 유명해진 것도 단순히 그의 생각 자체가 너무나 통찰력이 있어서라기 보다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시장 통합으로 인해 스코틀랜드 일개 지식인의 책이 광대한 잉글랜드 출판시장을 통해 전유럽에서 공전의 히트를 칠 수 있었던 배경의 덕을 보았다. 애당초 시장(the market)에서는 의도(purpose or intention)는 중요치 않다. 애당초 이게 스미스의 경제철학의 가장 본질이기도 했다. 시장의 창발성(emergence)이라는 사회 경제적 현상에는 시장 참가자 개인의 사적 욕구나 동기,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반자본주의 정서는 학자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내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서구권 대학원생들의 사고는 트럼프나 나이젤 페러지처럼 BBC 나 주류 미디어가 ‘극우 포퓰리스트’로 낙인 찍은 정치인들에 의해 자신들 사회의 ‘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정치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정치인을 포퓰리스트인가 아닌가로 구분하는 도식 자체는 좌파 언론들이 극우 포퓰리즘이라는 개념을 확산시키기 위해 만든 프레임에 가깝다. 개인의 권리를 보장하는데 핵심을 둔 자유주의와 달리, 다수결을 그 본질로 하는 민주주의 정치 원리 하의 대개의 직업 정치인들은 다수의 지지를 받기 위해 싫든 좋든 기회주의자거나 포퓰리스트로 살아가게 된다.

자본주의 사상가와 자본주의 정치인을 혐오하는 이들 좌파 학자와 학생들은 하나같이 소위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이다. 이들은 경제적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필연적인 정부의 시장 개입을 지지하면서도,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개인의 자유로운 경제적 권리를 침묵시킬 수 있는 큰 정부(big government)의 존재가 결국 (자신들이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인식하는) 정치권력에 의한 입법, 사법, 언론 장악을 방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간과한다.

이러한 모순된 서구 좌파 지식인들 사고의 특징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반자본주의 정서와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이라고 부르고 싶다. 본질적으로 이들은 자본의 역할과 의미에 대한 심층적인 사고를 결여하고 있다. 그들이 자본주의 이전의 중세 기독교 정치체제를 실제로 살아보았다면 그런 안이한 시각을 갖지 않았을런지도 모르겠다. 종교개혁가들이 중세 가톨릭에 환멸을 느끼게 된 이유도 사실 탁발 수도사 집단처럼 생산과 노동에 관여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생산물을 마치 정당한 권리인 양 취해갔던 당시 기독교 사회 체제의 문제점 때문이었고, 그래서 칼뱅이든 츠빙글리든 종교개혁가들은 하나 같이 성실한 노동과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중세 말기 ‘도시의 공기가 자유롭다’는 의미 역시 토지에 대한 예속으로부터 벗어난 경제적 독립, 즉 자본이 주는 자유였음에 좌파 지식인들은 무관심하다.

원래 종교개혁가들이나 애덤 스미스가 인식했던 것처럼, 인생은 고통이고 삶은 고달픈 것이며, 최소한 그들의 경제철학에는 포퓰리즘적 요소가 없었다. 하지만 19세기 이래 반자본주의 시각의 학자들은 경제적 상황과 같은 외적 조건과 상관없이도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사회’와 같은 이상향은 어쨌거나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경제적으로 민중(people)이 염원하는 것 - 가진 자의 몰락으로 상징되는 역사의 진보든, 가진 자에게서 못 가진자로의 인위적 부의 재분배든 - 은 그것이 무엇이든 민중에게 주어져야 옳다고 주장해왔다. 이를 ‘민주주의’적 열망으로 포장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이는 포퓰리즘이기도 하다. 그럴수록 그 사회 구성원의 불만은 더욱 폭주하게 될 것이고 그들의 권리를 사회 전체가 책임져야 한다는 귀결에 이르게 된다. 좌파 지식인들 눈에는 결코 보이지 않겠지만, 민주주의를 표방한 반자본주의적 시각은 애당초 그 철학이 발 딛고 서있는 인간관과 세계관, 경제관 모두가 총체적으로 포퓰리즘이다.

20세기 전성기를 누렸던 유럽의 사회민주당들이 보여주듯, 원래 사회주의와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보다 훨씬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유럽의 근대 역사에서 자유주의는 정치 경제 엘리트들과 죽 연계되어 온 반면, 반귀족 공화주의 혁명가들이 이끌었건 반자본주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이끌었건 민주주의 확산은 늘 농민 및 노동자 집단의 각성 및 성장과 연관되어 있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두 입장 간의 불협과 갈등은 근대사 내내 상존했다.

반자본주의 감성과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은 빠르게 이러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분리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하지만 해체되고 파탄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체제에 대한 회복은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회의감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유주의의 경제적 메커니즘이라 할 수 있는 자본주의에 대한 반감은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체제적 결합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은 (지난 40년 동안 서구 좌파 학자들의 영향 속에 한국 정치에서 계속 강조되어온) 민주주의의 투철한 실천이 부족한 탓에 지금의 사태를 맞이하게 된 것이라기보다, 일제 시대 때부터 분명히 존재해왔던, 특히 지난 수십년간 두드러지게 나타난 반자본주의 정서의 확산으로 인해 지금의 파행(경제 및 정치 자유도의 급락으로 인한 경제 파탄 및 정쟁 과열)에 이르게 되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이다.

정확한 병의 원인을 알지 못하면 아무리 소염제, 진통제를 써봐야 병만 더 키울 뿐이다. 무엇보다 개인 내면의 문제인 도덕이 정치나 경제의 영역에 등장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도덕이 아니라 욕망을 위한 수사(rhetoric)가 된다는 것은 바로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도덕철학자(moral philosopher)였던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에 흐르는 핵심 사상이기도 했다.

배민 (서울 숭의여고 역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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