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 성찰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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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성 교수의 자유주의 노동론" 발간
=경제 활동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시장 우파’는 우리나라에선 극소수다. 대부분의 우파는 북한,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 우파’다. 하지만 경제정책에선 시장보다는 정부의 각종 보조금이나 퍼주기 식의 온정적 정책을 기대하는 ‘반시장 좌파’다. 이런 풍토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유지·보전한다(conserve)"는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저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만 바글거릴 뿐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추억

기자는 현역 언론인 시절 운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중남미를 여러 차례 취재할 기회가 있었다. 남들은 평생 한 번 가보기도 힘들다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과테말라 등등을 여러 차례 취재했다. 에두아르도 프레이 칠레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도 인터뷰했고, 중남미 국가의 국회의장 등 실력자들도 많이 만났다.

가장 흥미로웠던 나라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였다. 이 지구상에서 가장 자유로운 시장자유의 원칙을 실천하고 있는 나라가 칠레였다. 알고 보니 칠레의 철권통치자 피노체트 장군이 ‘시카고 보이즈(Chicago Boys)’라 불리는 시카고대학 경제학자들을 대거 초빙하여 이 나라 경제정책의 근간을 뜯어고쳤다. 그 결과 중남미에서는 가장 탄탄한 중산층이 형성되어 경제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1996년, 칠레 취재를 마치고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루프트한자 항공편으로 안데스의 만년설을 넘어 도착한 아르헨티나도 참으로 흥미진진한 나라였다. 1920~30년대, 전 세계가 제1~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와 살육의 광풍에 휩쓸렸을 때 아르헨티나는 그 나라들에 식량과 고기, 물품을 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그 시절 유럽 이민객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삶을 살아갈 나라로 북미의 미국과, 남미의 아르헨티나 중 어느 곳을 택할까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정도로 동경의 대상이었던 나라였다.

부와 사치의 기운이 곳곳에 남아 있는 시가지의 고풍스런 정취,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땅고(탱고)의 마력….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곳엔 뮤지컬 영화 ‘에비타’의 촬영을 위해 세계적인 팝 가수 마돈나와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 영화계의 거장 알란 파커 감독이 현지 촬영을 진행하고 있었다.

영화 ‘에비타’의 촬영 덕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언론들은 연일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 에바 페론에 대해 열띤 논쟁이 벌어졌다. 좌파 언론은 페론 대통령의 영부인 에바 페론을 ‘성녀(聖女)’니 ‘노동자들의 천사’라고 추앙한 반면, 우파 언론은 ‘아르헨티나를 말아먹은 화냥년’이라고 비판을 해댔다.

 

촬영이 진행되는 현장에는 연일 ‘성녀파’와 ‘화냥년파’ 시위대가 집결하여 서로 자기 생각이 옳다면서 데모를 하는 등 떠들썩한 논쟁이 벌어졌다. 우편물을 부치기 위해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한복판의 우체국을 가 보았는데, 직원들이 바글거렸다. 알고 보니 고용창출을 위해 계속 공무원을 늘이고 해고를 하지 않다 보니 그야말로 공무원 천국, 노동자 천국이 된 것이다.

바로 그러한 노조친화정책의 핵심 인사가 에바 페론이었으니, 그를 둘러싼 일대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노동자 천국이 지구 반대편 남미 국가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바로 대한민국에 노동자들의 천국이 만들어진 지 이미 오래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그토록 원했던 이상향이 우랄 공업지대의 중심 도시인 예카테린부르그나 북한, 쿠바 같은 공산국가가 아니라 한국의 포항과 울산, 여천과 당진 등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나라 국민만 잘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시카고 보이즈’의 수제자가 이 책의 저자

이 신간안내 기사는 본격적인 책 소개에 앞서 저자 소개부터 하는 것이 순리일 듯 싶다. 저자 박기성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 유학을 떠난다. 경제학도인 그가 선택한 학교는 시카고대학교였다. 우리에게는 무시무시한 갱단의 원조 도시, 오랜 기간 ‘농구의 신(神)’으로 군림했던 마이클 조던이 뛰었던 프로농구팀 ‘시카고 불스’, 그리고 대화재의 여파로 인한 소방서가 연상되는 도시다.

하지만 경제계로 눈을 돌리면 다른 이슈가 떠오른다. 칠레 경제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것은 물론이요, 세계 경제학계를 엎었다 세웠다 했던 그 유명한 ‘시카고 보이즈’의 진앙지가 미국 중부의 핵심도시 시카고다. 시카고학파(Chicago School)의 대부로 불리는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하여 정부에 맞서 자유시장, 혹은 시장자유(Market Freedom)를 주창해 온 신자유주의의 전사들, 세계 경제학계의 거장들이 바로 이 학교 교수진을 이루고 있었다.

1980년대 자유시장·작은 정부·감세(減稅)를 3대 핵심 무기로 무장한 ‘레이거노믹스’와 ‘대처리즘’의 이론적 토대가 만들어진 곳, 레이건 정부 이후 30년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뼈대를 제공한 곳도 시카고대학이었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사회주의 몰락을 예언했던 하이에크는 "거봐, 내가 뭐랬어"라고 말했다. 그는 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 시카고대학에 터를 잡고 '시카고 보이즈'의 원조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박기성이 '시카고 보이즈'의 제자다.
1989년에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사회주의 몰락을 예언했던 하이에크는 "거봐, 내가 뭐랬어"라고 말했다. 그는 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 시카고대학에 터를 잡고 '시카고 보이즈'의 원조가 되었다. 이 책의 저자 박기성이 '시카고 보이즈'의 제자다.

 

자유시장론의 선구자인 하이에크와 미제스의 이론적 후예인 시카고 보이즈는 “정부 개입에 의한 계획경제는 자유와 양립할 수 없고,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의 필수조건”임을 성경 구절처럼 떠받든다. 바로 그 하이에크가 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시카고대학에서 후진을 가르치며 연구 활동을 했다.

그 유명한 하이에크-프리드먼의 뒤를 이어 시카고대학 경제학과를 지켜오며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버트 루카스, 게리 베커, 셔윈 로젠 교수가 바로 이 책의 저자 박기성의 스승이었다. 당연하게도 이 책의 저자 박기성도 자유시장론자이자 ‘시카고 보이즈’의 일원이며, 에바 페론의 평가에 대해서는 아주 단호한 ‘화냥년파’다.

‘노동해방을 위하여’라는 자극적인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시종일관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의 핵심 키워드인 ‘자유시장·작은 정부·감세’가 경제난국을 돌파하는 핵심 키워드임을 주장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주장하는 경제정책의 중추는 ‘개인의 자유’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쪽은 우파이고, 개인보다 사회나 국가를 우선시하는 쪽은 좌파다. 그런데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그 전 시대를 이루었던 대한제국, 조선 등등의 왕조에서는 개인, 즉 사(私)는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공(公)만 존재해 왔다. 이 나라의 모든 토지는 국왕의 소유인 왕토이며, 백성들은 그 왕토를 잠시 빌려 사용하는 것일 뿐이다.

이 땅에 보수주의는 없다

사는 없고, 공이 우선하는 시스템이 수천 년 이어져 왔으니 이 나라에선 개인의 자유나 권리보다 국가나 공공기관이 앞선다는 생각이 4,400년 동안 이어진 우리 역사에서 뼛속 깊이 뿌리내려 왔다. 이런 사회에서 집단이나 국가보다 '개인의 자유'를 우선시하는 우파야말로 가장 혁신적이고 진보적이다. 그러므로 진보라는 용어는 오히려 우파에게 어울린다고 저자는 주장한다(23쪽).

미국의 보수주의(conservatism)란 건국 초기부터 헌법 등에서 우선시되어 온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유지·보전한다(conserve)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우선시된 적이 없었다. 한민족 역사에서 오늘 우리의 정체(政體)인 '대한민국'을 제외하면 개인의 근본적 자유가 존재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우리 역사에서 진정한 의미의 보수주의는 존재하지 않았다.

요즘 흔히 보수주의자라고 일컫는 일군의 군상이 있는데, 이들은 양동안 교수의 표현을 빌면 ‘속물적 리버럴리스트’들일 뿐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나라에서 언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왕조나 시대가 존재하기나 했던가.

저자 박기성은 경제 활동에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해주는 시장경제를 주장하는 ‘시장 우파’는 우리나라에서 극소수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우파는 정치 체제로서의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 우파’다. 즉 우리 국민의 대부분은 북한에 반대하는 ‘민주 우파’이면서 시장보다는 정부의 각종 보조금이나 퍼주기 식의 온정적 정책에 기대는 ‘반시장 좌파’다.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우선시하는 ‘민주 우파’이면서 동시에 ‘시장 우파’인 국민이라고 저자는 외친다(25~26쪽).

한국 사회의 우파들은 북한에 반대하는 반공우파,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우파을 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유지·보전한다(conserve)"는 진정한 보수우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박기성 교수.
한국 사회의 우파들은 북한에 반대하는 반공우파,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우파을 뿐,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유지·보전한다(conserve)"는 진정한 보수우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치는 박기성 교수.

 

정치적·경제적·종교적·문화적 자유 중 가장 중요하고 기초가 되는 자유는 무엇인가? 경제적 자유, 즉 재산권의 보호와 행사의 자유다. 하이에크는 “소유가 없는 곳에는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정치적 자유는 그 자체가 궁극적 목적이라기보다는 경제적·종교적·문화적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자유다.

하이에크에 의하면, 기존 공산주의, 사회주의 정당들이 산업 노동자 계급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전략을 통해 이들의 지지를 받은 데 비해, 여기서 소외된 계급, 즉 노동조합 밖의 화이트칼라 노동자와 전문가들의 지위 향상을 목표로 했던 것이 나치즘(nszism)과 파시즘(fascism)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나치즘과 파시즘은 비노조 사회주의다. 히틀러나 무솔리니의 국가사회주의(나치즘, 파시즘)나 일본의 군국주의는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가 우선시되는 전체주의이기 때문에 좌파로 분류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하이에크는 진보주의자들(progressives)이 공산주의와 파시즘은 서로 정반대의 양극을 대표한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지만, 공산주의는 초파시즘(super fascism)이라고 지적했다. 즉 둘은 본질적으로 같다는 주장이다.

민주는 있고, 자유는 없는 나라

저자 박기성은 한국 사회를 휩쓴 마법의 단어인 ‘민주화’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프랑스혁명의 키워드는 ‘자유’였다. ‘자유’를 담아내는 시스템이 민주주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늘 자유는 어디론가 실종되고 민주주의, 민주화가 지고의 선(善)으로 사회를 휩쓸었다. 하지만 인류사에서 최우선의 목표는 자유와 인권이다. 우리가 열심히 민주화를 외치는 사이, 한국 사회에서 자유와 인권은 어디론가 실종되었다고 저자는 한탄한다(29쪽). 이것이 민주화가 광장의 촛불로 이어져 체제를 변혁시키는 원동력으로까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우리 실태 아니겠는가.

우리 사회에서는 자유가 뭔지, 인권이 뭔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공부가 없었고 개념 정리도 없었다. 그저 ‘민주주의가 최고’라고만 외쳐 왔다. 민주주의만을 끝까지 주장하고 그 길을 추구하다 보면 결국 인민민주주의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우려한다. 인민민주주의란 한 마디로 대중에 의한, 인민에 의한 독재다. 소수가 희생당하고, 개인이 말살당하며, 그게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인민 독재가 된다. 개인의 자유와 인권에 대한 존중없이 민주주의만을 극단적으로 추구하면 그 귀결점은 인민민주주의 북한 아니면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성찰한다(30쪽).

현대의 경제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자본주의란 자본의 생산에 대한 기여를 인정하고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제도다. 토지 등 자본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는 고대부터 존재했다. 자본주의는 자본에 대한 보상만을 부각한다는 점에서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과거에 비해 시장의 영역과 역할이 크게 확대되었으므로 ‘시장경제’가 현대의 경제 체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용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34쪽).

이러한 자유주의적 논리와 철학적 바탕 위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조망해 보면 모든 것이 잘못되고, 뒤틀리고, 공공 우선 정책으로 떡칠을 하여 실패의 길로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문재인 정부가 취약 계층의 소득을 높여 소득 격차를 완화하고 경제성장을 이끌어가겠다는 취지에서 열과 성을 다해 밀어붙이고 있는 ‘소득주도 성장’이 실제로는 얼마나 허망한 ‘소득저하 퇴보’인지를 그는 경제학자답게 수치로 증명해내고 있다.

이 책의 한 대목인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비판 부분을 보자. 문재인 정부는 출범 후 2년 동안 최저임금을 29.1%나 인상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하다. 2019년 2/4분기의 소득을 2년 전과 비교해보면, 하위 20%의 실질 처분가능소득은 12.6% 감소한 반면 상위 20% 소득은 7.1% 증가했다. 또 처분가능소득의 5분위배율(소득 하위 20% 대비 상위 20%의 비율)이 5.30으로 2년 전에 비해 0.57이나 증가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2년 전에 비해 소득 격차가 더 커졌다는 결론을 그는 복잡한 수식을 통해 정확하게 진단해 냈다(14쪽).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경제정책과 관련하여 정부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저자 박기성은 “모든 국민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면서 국민 개개인의 선택의 폭을 넓혀야 한다. 정부가 사사건건 개입하여 자원 배분을 왜곡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개인과 기업에게 자유와 선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22쪽).

저자는 노동개혁의 핵심은 노동조합의 순기능 찾기라고 말한다. 근로자와 사용자의 자유로운 구직・구인을 방해하는 것이 노동공급을 독점하는 노동조합이다. 노동조합의 과도한 임금 인상에 대해 사용자는 고용 조정으로 대응하고 싶지만 노동조합의 압력과 노동법에 의해 이는 거의 불가능한 것이 한국의 실정이라고 한탄한다. 때문에 임금은 어쩔 수 없이 생산성을 초과하게 되고, 자원 배분의 공정성 및 효율성이 훼손된다.

저자는 근로기준법은 최소한의 기준만을 남기고 근로계약과 관련된 조항으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로 제공과 사용이 계약 자유의 원칙에 따라 이루어져야 노동부문이 생산에 적극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근로계약에 의하면 고용 형태 및 근로 조건을 명확하게 규정하여 계약을 체결하므로 비정규직이라서 차별받는 일은 생길 수 없다. 기간제 근로자보호법, 파견근로자보호법 등 각종 보호법은 있을 필요가 없으며 단지 근로계약법의 최소한의 기준을 충족하면 된다.

근로계약에 의하면 지금 논의되고 있는 모든 노동 관련 의제가 다 허용된다. 일반 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통상 임금 범위, 근로 시간 단축, 정규직-비정규직 격차, 파견직종 확대, 직무 성과급 중심의 임금 체계, 임금피크제, 다양한 퇴직 급여 등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41~42쪽).

눈을 들어보면 4차 산업혁명의 시대란다. 자동화 기계와 인공지능(AI)의 결합에 의한 자동화 시스템, 인간의 뇌보다 수억 배, 수조 배 능력이 뛰어난 AI가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는 세상이다. 자동화 기계와 인공지능의 결합은 24시간 풀가동이 상시 가능하며, 휴가나 결근 따위, 인건비도, 노동쟁의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제품 원가에서 인건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낮아진다. 그 결과 선진국이 개발하고 인건비 저렴한 개도국이 생산을 담당하는 글로벌 분업 구조는 존재 의미를 상실했다.

게다가 인공지능(AI)의 고도화로 인해 조만간 인간의 일자리 중 고도의 전문지식과 인지능력을 필요로 하는 의사·약사·판사·변호사 같은 직업군조차 인공지능에게 밀려나 블루칼라, 화이트칼라 할 것 없이 ‘직업 없는 시대’로 돌입하고 있다.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의 생존법

이제 직장인이 한 회사에서 수십 년간 정규직으로 일하는 근로 형태는 대부분 사라지고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시대가 일상이 되고 있다. ‘긱 이코노미’란 AI와 4차 산업혁명의 후폭풍으로 일자리를 기계와 인공지능에 빼앗긴 사람들이 여러 직업을 파트타임으로 수행하는 형태의 경제체제를 뜻한다. 그렇다면 두 가지 의문이 우리를 괴롭힌다.

첫째, 거의 모든 국가산업을 근육질 제조업에 의존하던 한국의 살 길은 무엇인가?

둘째, 한국의 노동구조와 법규는 ‘긱 이코노미’ 경제 하에서 모든 노동자들이 스마트하게 일하도록 유인하는 시스템인가? 아니면 세습화 된 귀족노조의 대물림을 확고부동하게 유지시켜주는 체제인가?

일본은 근로계약법(노동계약법)을 제정하여 2008년 3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중국은 노동합동법이라는 명칭으로 근로계약법이 제정되어 2008년 1월 1일부터 시행 중이다. 미국에서는 근로자와 사용자의 권리 의무를 규정하는 기본법은 관습법이다. 따라서 근로계약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언제라도 자유롭게 해약할 수 있다. 근로계약에 어긋나는 조항이 없는 한 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직할 수 있듯이 사용자도 언제라도, 어떠한 이유로든지, 이유가 없더라도, 자유롭게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다. 이것이 근로자와 사용자의 ‘임의 고용 원칙’이다.

다른 나라는 다 시행하고 있는 제도를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으니, 노동자들만 일방적으로 유리한 아르헨티나 찜 쪄 먹을 노동자들의 천국이 대한민국에서 실현되고 있는 것이다.

노동자의 천국이 도래하면 모두가 다 함께 평등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우며, 사람답게 잘 살 수 있을까? 그렇다면 묻는다. 투자는 누가 하고, 자본은 누가 투입할 것이며, 기업경영은 누가 하며, 해외 시장은 누가 개척하고, 미래 이 나라의 먹거리를 창출하기 위한 모험과 창의는 누가 발휘할 것인가?

이 책이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결코 가볍지 않다. 그저 그런 경제학 책인 줄 알고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거대한 인간의 삶에 대한 본질적 성찰에 이르는 그런 무시무시한 책이다.

저자 박기성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시카고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를 받았다. 2008년 제9대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을 지냈으며, 한국경제학회 청람학술상(1998)을 수상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펜앤북스에서 발간했으며 책 가격은 15,000원이다. 저자의 피땀 흘린 저작의 노고에 비하면 정말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이다.

김용삼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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