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연 靑 법무비서관 "피해자 나서야 명예훼손 처벌" 강조 거듭
"가짜뉴스·명예훼손·혐오표현·불법정보…감시·비판 자율규제를" 독려
여론재판식 청원에 "성숙한 사회로 내딛는 계기" 찬사
윤서인 "'법'안의 표현 자유 놔둔 '자율규제'란 공산주의식 5호담당제"

(왼쪽부터) 청와대 김형연 법무비서관과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은 23일 청와대 페이스북에서 생중계되는 자체 방송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이 '웹툰작가 윤서인을 처벌하고 향후 웹툰을 게재하지 못 하게 해 달라'는 청원에 대해 이런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사진=청와대 페이스북 캡처)
(왼쪽부터) 청와대 김형연 법무비서관과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은 23일 청와대 페이스북에서 생중계되는 자체 방송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이 '웹툰작가 윤서인을 처벌하고 향후 웹툰을 게재하지 못 하게 해 달라'는 청원에 대해 이런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사진=청와대 페이스북 캡처)

 '문재인 대통령의 천안함 폭침 주범 북한 김영철 환대'는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을 피해자 가족이 다시 반갑게 맞아들인 것과 다름없다는 취지로 만평을 그린 윤서인 웹툰작가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는 선전에 청와대가 직접 나섰다. 속된 말로 '조리돌림'에 국가 최고권력기관이 앞장선 것이다.

청와대 김형연 법무비서관과 정혜승 뉴미디어비서관은 23일 청와대 페이스북에서 생중계되는 자체 방송 '11시50분 청와대입니다'에 출연해 이 '웹툰작가 윤서인을 처벌하고 향후 웹툰을 게재하지 못 하게 해 달라'는 청원에 대해 이런 취지의 답변을 내놨다.

윤 작가는 앞서 해당 작품을 인터넷 언론사 '미디어펜'에 기고했다가, 포털사이트 등에 노출된 지 10여분 만에 아동 성폭행 피해자 가족을 등장인물의 소재로 활용한 데 대해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자체 삭제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혜승 비서관은 방송 중 해당 웹툰 출력물을 들어 보이며 "조두순(웹툰 내 '조두숭')을 피해자의 아버지가 집으로 초대해 피해자에게 인사시키는 그림에 '전쟁보다는 역시 평화가 최고'라는 문구를 넣어 당시 방한한 김영철 (북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과 문 대통령을 빗대 표현했다"면서 "많은 국민들께서 분노했다"고 전제하는 것으로 질문을 대신했다.

일각에서 당사자를 '조두순과 피해자를 웹툰 소재로 등장시킨 것만으로도 범죄'라는 취지로 비방하는 가운데, 청와대가 해당 웹툰을 대중에게 '보란 듯이' 소개하는 행보를 나타낸 것이다. 김형연 비서관은 "어떤 만화가를 섭외하고 어떤 만평을 게재하느냐는 언론의 자유 영역이다. 또 만화가가 어떤 내용의 만평을 그리냐는 예술의 자유 영역이기도 하다"는 원칙적인 답변을 냈지만, "이 웹툰이 게재된 곳은 '미디어펜'이라는 언론사"라고 공개 지목했다.

그러자 정 비서관은 "그래도 심각한 명예훼손이라면 처벌 가능하지 않느냐"고 유도성 질문을 했다.

김 비서관은 "언론과 예술의 자유를 포함해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헌법은 '언론, 출판이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정보통신망법 등에서 처벌 규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윤서인) 만화가는 명예훼손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본론을 꺼냈다.

정 비서관은 거듭 처벌에 당위를 둔 듯 "법적 처벌이 가능하다면 관련 절차를 청와대나 정부가 진행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김 비서관은 "청와대는 개별 사건에 대해 수사지휘나 지시를 하지 않는다"고 운을 뗀 뒤, 그러나 "명예훼손죄나 모욕죄는 반의사불벌죄 또는 친고죄로 피해자의 고소나 처벌 의사가 있어야 한다"고 '처벌을 위한 조건'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의사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해당 만평에 대한 별도의 대응은 아직 없다"며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정보도나 해당 보도 삭제, 손해배상 청구도 가능한데 역시 피해자가 나서야 한다"고 거듭 밝혔다.

정 비서관은 "이번 건의 경우 피해자 대신 국민들이 나섰다"면서 윤 작가를 범죄자로 간주하는 듯한 발언을 이어갔다.

김 비서관은 "국민 비판을 통해 문제의 만평이 10분 만에 퇴출되는 '자율규제'가 작동했다"면서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국민의 감시와 비판이 중요하다"며 여론 재판을 유도했다. 

이어 "정부도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자율규제를 존중하고 있다"며 "동시에 허위정보나 명예훼손 표현 등 불법정보에 대하여는 무관용의 원칙을 지킬 것"이라고 입에 올렸다. 정 비서관은 "표현의 자유와 예술의 자유는 마땅히 지켜져야 하지만 불법정보는 표현의 자유로 허용될 수 없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다"고 반응했다. 

김 비서관은 "가짜뉴스, 명예훼손 표현, 혐오표현"까지 거론한 뒤 "이번 청원으로 우리 사회가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내딛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찬사하기까지 했다.

당사자가 피해를 호소하지 않아 취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는 점을 불가피하게 인정하면서도, 윤 작가에게는 만평의 취지를 왜곡해서까지 처벌 가능성을 거론한 것이다. 사법기관이 아님에도, 사법적 판단이 이뤄지기도 전에 만평 자체가 불법·허위정보라고 단정지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게다가 이는 현 정권이 야당 시절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자유·보수진영 인사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와 인신공격·성행위 묘사, 효수(梟首 : 죄인의 목을 베어 매달아 놓음) 퍼포먼스까지 동원해 '무제한적' 폄하 대상으로 삼는 근거가 '표현의 자유'였다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사진=윤서인 웹툰작가 페이스북 캡처
사진=윤서인 웹툰작가 페이스북 캡처

윤 작가는 청와대의 이날 청와대 답변이 나온 뒤 페이스북을 통해 "내가 좋아하는 표현을 맘껏 하는 게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표현도 존재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며 "'아무리 표현의 자유도 좋지만 그렇게 도에 지나치면 안 되지~'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이미 표현의 자유는 사라지고 없는 것"이라고 에둘러 비판했다.

또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것은 '도'가 아니라 '법'이어야 한다. (법의) 테두리 내에서는 누구나 마음껏 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표현의 영역에서 '자율규제'란 국민이 서로 자율적으로 감시하고 규제하는 공산주의식 5호 담당제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윤 작가는 특히 "자율규제란 알고 보면 자율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라며 "권력이나 언론 등 기득권들에 의해 자율로 포장된 '탄압'이 얼마든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자신을 여론전 상대로 삼은 청와대를 겨냥했다. 이어 "이 나라에는 이미 표현의 자유는 없다"고 글을 마쳤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강성 반(反)좌파성향 사이트 '일베'(일간베스트 줄임말) 폐쇄를 요구하는 청원에 대한 답변도 남겼다. 답변에 나선 청원들이 '청원 한 달 내 20만 명 이상 찬성'이라는 요건을 충족한 데 따른 것이다.

김 비서관은 청원 소개 후 정부에 사이트 폐쇄 권한이 있다고 즉답하고, 사이트 내 '불법정보'가 70%에 달하면 공공연히 성범죄 인증이 이뤄지던 음란사이트 '소라넷'이나 일부 도박사이트처럼 폐쇄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또한 '대법원 판례'를 거론하며 "불법정보 비중뿐 아니라 해당 사이트 제작 의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할 수도 있다고 추가 전제를 달았다. 사이트 폐쇄를 위한 방안 모색에 청와대가 무게를 두고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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