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벽에서 확인하는 문재인 정권의 미디어, 아첨 저널리즘

 

추석 명절 기간은 연평도 사건에서의 정부의 태도로 국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근거없는 억측과 계몽군주 발언 물의까지 뒤섞인 상황은 문제의 본질을 왜곡하여 정부의 책임 회피를 방조하고 있다. 아무리 그럴듯하며 고급스럽다고 자부한들 권력을 옹호하는 아첨(阿諂)의 성찬(盛饌)에 불과하다. 방역을 빌미로 명절 기간 중에 광화문 광장을 경찰버스로 에워싼 차벽은 권력을 방어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아첨의 물리적 표현이다.

공동체에 대한 논의의 장인 광장을 폐쇄하여 현실을 가리고 비판을 잠재우며 장벽 안에 숨어서 안주하게 하는 아첨의 장벽은 지난 4년간의 미디어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2017년 정권에 의한 공영 방송 장악 이후 오늘까지의 정권의 목소리만을 내는 정파적인 미디어의 현실은 정권의 방송이 된 공영방송, 여론을 오도하는 불공정한 포털,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에 대한 규제라는 세가지 미디어 상황으로 살펴 볼 수 있다.

2017년 대선후 1년에 걸친 공영방송 KBS와 MBC에서 벌어진 이사 퇴진 압력과 임기가 남은 사장 해임 및 직원 해고와 징계로 이어진 문정권의 공영방송 장악은 2019년 10월 서초동 조국옹호집회의 참석 인원에 대해서 MBC뉴스가 “딱 봐도 백만명”이라고 언급한 보도에서 진면목을 과시하였고, 2020년 7월의 KBS와 MBC 뉴스의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 오보 파문으로 확인된 청부보도를 일삼는 권언유착 의혹 사건에서 절정에 달했다. 아첨 저널리즘은 공영방송에서는 있을 수 없는 주창(主唱)저널리즘(Advocacy Journalism)의 실천이어서, 주구(走狗)방송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대선 여론 조작 사건으로 아직도 진행중인 2019년 초의 드루킹 및 관련자의 포털 댓글 사건은 포털에 의한 여론 조작 의혹 문제 제기와 함께 포털의 여론 오도 능력을 확인시켜 주면서 포털에 의한 정보 편향 현실을 보여준다. 지난달의 여당 윤영찬 의원의 “카카오 들어와” 사건은 포털이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공정성 문제의 중심에 있음을 확인 하였다. 포털을 통해 전달되는 뉴스의 공정성 문제는 뉴미디어 시대에 언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언론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뉴미디어 시대의 도래라는 변화와 함께 공영방송이나 포털의 공정성 시비에 따른 기존 미디어에 대한 신뢰 상실은 시민들로 하여금 유튜브라는 출구를 찾게 하였다. 저널리즘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에 있는 유튜브의 언론 역할의 수행은 가짜뉴스 논란으로 이어졌다. 가짜뉴스에 대한 각종 규제 입법안의 핵심인 가짜뉴스에 대한 불분명한 정의를 보면 문제 해결보다는 기존 올드미디어를 보호하기 위해서 뉴미디어를 규제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비판이 있다, 2018년 10월 정부의 가짜뉴스 대응방안 문건이 알려지면서 정부에 비판적인 유튜브 방송에 대한 과잉 대응 논란이 있었고, 이는 유튜브방송에 대한 각종 규제 조치와 노란딱지 논란등으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와같은 미디어상황의 배경에는 정부의 공영방송등 기존 지상파방송 중심 정책의 지속으로 인한 올드 미디어 체제 유지와 뉴미디어에 대한 규제 내지는 기존 미디어 체제로의 편입 시도라는 정책의 방향성이 있다. 정권의 공영방송 장악과 포털에 의한 여론 왜곡 및 정치적 편향성으로 인하여 신뢰를 잃은 기존 미디어를 대신하여 시민의 목소리를 찾고자 하는 요청이 유튜브 방송이라는 뉴미디어로 출현하게 되었는데 이마저 제약을 받고 있다.

광장의 차벽처럼 미디어 상에서의 표현이 규제되면서 오직 하나의 목소리 만이 표현되고, 온통 그 목소리만을 옹호하는 아첨의 장벽으로 에워싸인 현실은 열린 사회의 기반인 광장이 미디어 영역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있다. 한가지 목소리만이 전달되고 위대한 지도자를 옹호하는 아첨으로 둘러싸인 시대는 특정 정치 집단이 국가를 사유화하고 국내외적으로 문명 질서와 맞선 1930년대 히틀러의 라디오를 이용한 통치를 연상시킨다. 한가지 목소리만을 내는 아첨의 미디어는 파시즘을 불러들인다. 파시즘은 인간성을 타락시키고 인격을 파괴한다.

2019년 10월 조국 사태, 2020년의 윤미향 사건과 박원순 사건 및 조국 사태의 막장 버전인 추미애 사태 그리고 권언 유착 의혹 사건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미디어를 통해서 노골적으로 잘못을 비호하는 주장과 “내 편이면 괜찮아”라는 아첨의 퍼레이드는 “피해호소자”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킬 정도로 극렬하다. 당파성 안에서 인간의 존재 의미를 파악하고 내편이 아니면 사람이 아니며 보호받을 수 없다고 규정한다. 당파성에 의존하고 이를 옹호하는 아첨의 장벽으로 보호되는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그런 세상이야말로 청산되어야 할 적폐인데, 이를 지원하고 기생하면서 현실을 가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첨의 미디어다.

자유로운 목소리를 내는 광장은 사라지고 매일 들려오는 뻔뻔스러운 목소리는 현실을 가린다. 미디어와 미디어산업 및 사회의 변화를 가리고 문제를 보지 못하게 한다. 지상파 공영방송 TV중심의 올드 미디어 시대가 지나가고 정보 제공자와 정보 수용자가 일치하며, 인터넷으로 직접 연결되는 뉴미디어의 시대다. 광고 시장이 인터넷으로 기울고 제작에서 송출 및 콘텐츠 판매까지 전부 방송사가 행하는 체제가 경쟁력을 상실하여 공영방송 중심의 지상파TV방송의 시대는 저물었다. 종래의 미디어 체제가 유지되는 것은 정파적 도구로 이용되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공정성 시비의 배경에는 권력이 미디어에 접근하여 수단으로 삼으려고 하고 이에 호응하는 올드미디어의 체제가 있다. 아첨의 미디어는 정파적 운영을 생존의 방식으로 하는데, 국민의 목소리와 현실은 가려진다. 새 미디어 시스템의 모색이 필요하다.

올해 3월에 미디어 거버넌스라는 제목의 책 두권이 출간되었다, 윤석민 교수는 정파적 미디어 상황을 미디어 전문직의 규범주의에 의해서 타개할 것을 제안하고, 김대호 교수는 미디어 거버넌스를 넘어서 ICT 시대의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하는데, 공히 미디어 문제를 미디어 체제(미디어 거버넌스)라는 거시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 당파라는 게토에 안주하여 정파적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올드미디어 시스템의 개편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영향력을 확장한 포털의 정보 독점 구조에 대해서 고민하고 미디어 기능의 수행에 따른 미디어로서의 포털의 성격 재구성이 요청된다, 뉴미디어에 대한 불공정한 규제 내지는 올드미디어로의 편입 시도 대신에 모든 미디어를 아우르는 새로운 미디어 체제의 모색이 요구되는 시대다. 미디어 환경과 인적 물적 자원을 포함한 미디어 산업의 구조 전반의 변화 및 미디어를 규율하는 법제도 와 정부 조직의 변화까지 모색되어야 하겠다.

정치 문제에 가려져 있지만 오늘 만이 아니라 다음 세대의 문제로서 공동체의 지속과 발전을 위해서 우리 사회의 미디어 체제의 재정립이라는 과제가 있다. 새로운 미디어 체제의 모색은 정파를 막론하고 모든 사회 및 정치 주체가 스스로 변화를 수용하는 자세를 갖출 때에 출발할 수 있다. 민주정은 광장의 미디어와 함께 간다. 광장에서 표현된 것이 현실에서 영향력을 갖는다. 미디어는 현실을 규정하고 정치 및 사회 현실을 만든다.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서 아첨의 장벽을 허물고 광장을 열자. 광장을 덮은 아첨과 오만의 쓰레기와 방관과 무능의 오물을 치우고 광장을 깨끗이 하자. 다시 열려야 하는 광장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인철 객원 칼럼니스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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