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일 칼럼] 노동관련 대통령 헌법개정안의 문제점
[남성일 칼럼] 노동관련 대통령 헌법개정안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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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사회적 특권계급 된다.
'노사동등 결정'은 경영이 뭔지 모르는 무지
'단체행동권'은 특권계급 위한 권리
헌법은 특정소수의 특권 아닌, 보편적 권리 규정해야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헌법은 국가 기관의 조직 및 작용에 대한 기본적 원칙과 국민의 기본적 권리·의무 등을 규정한 근본법이다. 대통령 헌법개정안이 막 나왔다. 그런데 노동부문의 개정안은 하나같이 국민의 기본적 권리와 거리가 먼 것들이다. 그 중 몇 가지만 추려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청와대는 발표문에서 ‘일제와 군사독재시대 사용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진 ‘근로’라는 용어를 ‘노동’으로 수정한다’고 했다. 근로(勤勞)의 사전적 의미는 ‘부지런히 일하다’라는 뜻이다. 한편 노동(勞動)의 사전적 의미는 ‘몸을 움직여서 일하다’라는 뜻이다. ‘근로’라는 용어가 사용자의 관점에서 만들어졌다고 편향성을 문제삼아 바꿔야 한다고 하는데 편향성의 관점에서라면 ‘노동’이라는 용어가 더 편향적이다. 노동이란 용어는 자본을 꺾어 눌러야 한다는 자본-노동 대립적인 관점 즉 마르크스(Marx)적 관점에서 만들어진 용어이며 이 같은 이념을 지향하며 지금까지 노동계에서 사용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실은 이렇게 이념적으로 편향된 용어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골격으로 하는 우리 헌법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자 당초에 ‘근로’라는 용어를 쓴 것으로 이해된다.

용어는 객관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 일의 성격을 나타내는 측면에서 보자면 노동(勞動)은 문자 그대로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을 뜻하는데 이는 육체노동(labor)이 대부분이었던 19세기에나 맞는 용어이다. 왜냐하면 21세기의 일은 몸을 쓰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지식이 결합된 인적자본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 중 선택한다면 몸을 움직여 일하는 노동(勞動)보다는 부지런하게 일하는 근로(勤勞)가 더 시대에 맞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만일 특정 관점에 치우쳤다는 시비를 일으키는 용어들을 모두 배제한다고 하면 둘 다 버리고 차라리 ‘일(work)’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낫다.

둘째, 대통령 안은 ‘노동조건의 결정과정에서 (힘의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노사가 동등한 지위에서 결정한다’고 하는 한편 ‘노동자가 노동조건의 개선과 권익보호를 위해 단체행동권을 갖는다’고 했다. ‘노사 동등지위 결정’이라는 조항은 애초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에 들어있던 ‘노동조건의 공동결정’이라는 조항을 ‘노동조건의 동등한 지위 결정’으로 표현만 슬쩍 바꾼 것이다. 노동조건의 결정과정에서 노사 동등 결정의 원칙을 명시한다는 것은 경영이 무엇인지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생산활동은 인적, 물적 자원을 섞는 것이고 따라서 기업의 모든 의사결정이 노동조건과 관계된 결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의사결정이란 책임질 수 있는 주체에게 권한이 주어지는 것이 경영의 원칙이다. 경영자는 책임을 져야 하는 주체이지만 근로자는 책임지는 주체가 아니다. 그럼에도 힘의 균형이라는 허구의 형식논리를 가지고 노사 동등지위 결정을 강제하는 것은 책임은 없고 권한만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하위 법률로도 할 수 없는 것인데 최상위법인 헌법에다 명시하겠다는 것이다. 헌법에 이런 조항이 들어간다면 필연코 ‘노동이사제’와 같은 것들이 하위 법률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 ‘노동조건의 개선과 권익보호를 위해 단체행동권을 가진다’는 것은 단체행동권이라는 이름아래 새로운 집단행동 권리를 부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조항 역시 국회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보고서에서 ‘경제적, 직업적 이익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 파업 또는 기타 단체행동’을 보장하도록 한다는 제안과 표현만 조금 바뀌었을 뿐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이 단체행동권은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단체행동권, 즉 근로조건에 관한 교섭이 결렬되었을 때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인 단체행동권 정도가 아니다. 단체교섭과 관계없이 근로조건의 개선이라 붙일만한 주제면 무엇이든지 가능하고, 권리뿐만 아니라 이익을 위해서도 집단행동을 할 수 있도록 헌법에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특정한 계층의 이익을 위해서 집단행동을 보장하는 것은 법률로조차 해서는 안 된다. 이는 헌법으로 사회적 특권계급을 만드는 것과 같다. 우리 헌법은 사회적 특권계급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수는 약 1,700만 정도이고 그 중에서도 노동조합원은 전체 임금근로자의 10% 정도일 뿐이다. 이는 15세 이상 인구의 4%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헌법은 대한민국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부여되는 권리에 대해 규정해야지 특정한 소수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규정을 두어서는 안 된다.

셋째, 대통령 안은 공무원에게도 원칙적으로 노동3권을 인정하면서 현역군인 등 법률로 정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이를 제한할 수 있도록 했다. 일반인들은 우리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처럼 다른 나라에서도 그럴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노동3권을 우리나라처럼 모두 보장하는 나라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며 아예 헌법에 없거나 넣더라도 제한적으로만 넣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동3권을 헌법에 명시한 국가들은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및 일본 등 5개 국가 정도이다. 이 국가들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지중해권 국가로서 독점적 노동조합으로 인해 높은 실업을 겪고 있으며 최근에는 모두 노조의 힘을 빼는 노동개혁을 추진했거나 하고 있는 국가들이다. 반면 미국, 네덜란드, 덴마크, 노르웨이 등은 아예 헌법에 노동3권이 규정되어 있지 않다. 독일은 단결권만 명시되어 있는데 이것도 사용자 등의 단결권과 더불어 같이 들어가 있다. 핀란드 헌법도 근로자의 단결권을 규정하고 있지만 다른 이익단체들을 만들 권리와 똑같이 보장한다. 한편 스웨덴 헌법은 근로자의 단체행동권만을 규정하는데 이 또한 사용자의 행동권과 병렬적으로 보장한다.

다른 나라들이 노동3권을 헌법에 규정하지 않거나 규정하더라도 제한적으로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결사의 자유를 제외한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은 특별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특별한 권리를 보편성이 요구되는 헌법에 넣는 것은 무리하기 때문이다. 또 넣더라도 사용자의 권리를 아울러 보장함으로써 일방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헌법은 사용자의 권리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근로자집단에게만 특별한 권리를 마치 기본권인 것처럼 독점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하물며 이제 이를 더 확장하여 공무원에게 부여한다는 것을 헌법에 박겠다고 한다. 공무원이 누구인가? 공무원도 근로자이긴 하지만 사용자의 성격이 다르다. 직접 사용자는 국가이지만 본질적 사용자는 국민이다. 공무원의 임금 및 근로조건은 법률과 예산에 의해 결정되는 것인데 이를 국민과 교섭할 수 있는 것인가? 또 국민을 대상으로 파업 등의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것인가? 노동3권은 사용자의 전횡과 사적 이익 추구로 인해 근로자의 권리가 침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적 권리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국민 또는 국가가 사적이익을 추구하는가? 공무원을 착취하는가? 공무원에게 노동3권을 부여한다는 것은 노동3권의 취지에 벗어나는 것이다.

차제에 노동3권에 대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 즉 노동3권을 규정하고 있는 헌법 33조 1항에서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청와대는 대통령 안을 내면서 노동권을 확대하는 것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위해서라고 했다. ‘사회경제적 민주화’라는 용어는 우리 헌법이 가지고 있는 경제체제의 골간을 바꾸겠다는 의도에서 나오는 용어라고 생각된다. 헌법에서 ‘시장경제’는 없애고 ‘사회경제’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사회경제란 사회(주의)경제의 다른 표현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업경영에 노동이 집단적으로 참여, 공동결정하고, 집단적으로 행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사회를 개인보다 우선시하는 사회주의 경제이다. 그러면서 이를 ‘민주화’라는 용어로 포장하고 있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강요에 의하지 않고 주인된 권리로서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의사결정하도록 하는 체제이다. 사회적 강제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와 자발성을 보장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요건이다. 진정한 경제 민주화는 각 경제주체가 강제되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선택에 따라 경제활동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대통령 개정안이 실제로 법제화된다면 그 악영향의 크기는 쉽게 계산하기 어려울 정도일 것이다. 노동조합은 사회적 특권계급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게 될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노사 동등한 위치의 결정을 요구하면서 신속해야 할 경제적 의사결정을 불가능하게 할 것이다.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파업 또는 그 이상의 집단행동으로 기업은 물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헌법에 보장되었다고 하면서 단체행동을 일삼을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하는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기업은 없어질 것이다. 노조 및 공무원과 결탁하여 독점적 방패막을 형성하고 소비자를 착취한 후 과실을 자기들끼리 나눠먹는 독과점 기업만 활동할 것이다. 경쟁압력이 없어진 경제체제, 사회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제체제에서 경제는 활력을 잃고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고 국민들의 행복은 더 요원해질 것이다.

남성일 객원 칼럼니스트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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