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영 기자
이세영 기자

좌파란 단어는 이념적 용어에 익숙치 않은 이들이 보면 다소 생경해보이거나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안타깝지만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러나 현재 우리 사회는 좌파의 가치관이 알게모르게 곳곳에 스며들고 있다.

좌파란 단어를 다른 용어로 규정하자면 반(反)자유주의 ㆍ반시장주의ㆍ반세계화ㆍ반시대적 세계관일 것이다. 무분별한 이상주의와 허구의 세계에 빠져 평등과 공동체ㆍ복지를 맹신하거나, 우리나라의 독특한 특성이 반영된 반미친북(反美親北)의 민족애(愛)가 정답이라고 외치는 좌파의 가치관이 엄연히 존재하고 확산되는 추세이다.

일례를 들어보면, 대표적인 이러한 성향의 단체인 민노총은 사실상 사회 곳곳에 침투해있다. 친북반미를 공공연히 외치지만 대대적으로 앞세우지는 않는다.

하지만 종래에 도달하는 결과는 일정 선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마도 이른바 ‘단계적 절차’란 것과 마찬가지일 테다. 겉보기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서서히 하나씩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성취하며 잠식하는 것이다. ‘아차’ 싶으면 이미 많이 변해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노동조합의 의의에 대해서 차단하고 싶지는 않다. 누구나 어딘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고 대변해주는 조직에 속하고 싶기 마련이다. 그러나 만약 민노총이 정말 노동자 전체의 권익을 대변해주는 곳이라고 이해한다면 말리고 싶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은 이름 그대로 노동조합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노동자 인권, 인간다운 삶, 인간 평등, 인간의 존엄성, 민주 사회, 민족 자주’ 등 여러 단어들로 조직을 포장하지만, 행보를 조금이라도 지켜봤다면 분명 친북반미(親北反美) 단체이자 정치 단체라고 이해하는 것이 실체에 접근하기 더 쉬울 것이다. 민노총이 내세운 기본과제 중 하나는 ‘노동조합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있는 노동조합법과 선거법을 개정하고 각종 선거에 적극 대응’하는 등 정치적 진출을 도모하는 것이다.

자신은 이러한 민노총과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며 실제로도 직접적인 관계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 조직적인 행사 등을 살피면 민노총 혹은 관련된 단체들이 연관된 경우가 많다.

아직도 촛불집회가 자연스럽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태동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많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이들과 민노총이 과거부터 수회 촛불집회를 열어왔던 사실들을 언급하면 의도적으로 촛불집회의 의의를 훼손하고 악의적으로 왜곡한다고 반박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광화문 광장에서 사물놀이 행사와 먹거리 잔치를 하며 살갑게 웃는 분들을 봤다. 그곳에는 ‘사드 배치 반대’ 등을 자연스럽게 주장하고 있었다. 별 관심없던 시민들은 살갑게 말하는 이들의 주장에 ‘향후 결과나 전망, 영향’ 등을 따지기보다는 일단 전통적인 문화행사와 반갑게 반겨주는 주최측 인원들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낄 테였다.

인간적인 호감은 다른 요소와 상관없이 주장의 신뢰성으로 이어진다. 괜히 그들의 주장에 뒤늦게 ‘아니다’라고 언성높여 반대하면 극단적이다, 꽉 막혔다는 비판을 듣기 일쑤이다. 논의의 본질은 본말전도(本末顚倒)된다.

최근 공개된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도 마찬가지이다. 개헌을 추진하는 이들이 허허롭게 웃으며 좋은 단어를 쓸 때마다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또한 개헌안에는 부분부분 그럴듯하고 누군가 좋아할만한 요소들이 끼어들어있다. 이를 통해 전체 헌법이 어떠한 결과를 이끌어낼지에 대한 충분한 숙고 없이 부분부분 좋아할만한 요소를 근거로 개헌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가치관과 주장은 그렇게 호감 속에 지지기반을 얻고 천천히 우리 인식에 스며든다. 호감은 상호간에 유대감을 형성하고, 그렇게 스며든 가치관은 단계적으로 사회를 잠식해 나갈 테다.

뜬금없지만 최근 한 예술작품을 본 적이 있다. 잉크를 담은 수조 위에 한지(漢紙)가 걸려있었다. 일정 간격 위에 떨어진 한지와 잉크는 서로 직접 닿지 않았음에도, 한지가 서서히 잉크색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았다. 한지는 어느새 절반 이상 스며들었다.

지금 우리가 어디까지 물들었는지 알 수 없다. 물든 이후에는 그게 정상적인 색이 되니 말이다. 절반 이상이 물들면 하얀색이 본바탕이었는지 잉크색이 본바탕이었는지 애매모호해질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무엇에 물들고 있는 것인지 되돌아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일 테다. 우리는 어디에 물들고 있는가 되돌아봐야 할 시기인 듯하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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