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불감증', '도덕불감증' 같은 말들이 한때 언론에서 유행하더니 언제부터인지 슬그머니 사라졌다. 아마도 사회전반이 중증 환자가 되다 보니 그러한 어휘들이 자아내는 자극적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또 어떤 새로운 “불감증”에 걸릴 것인가? 매우 유력한 후보가 “충격불감증”이 아닐까 싶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했던 말 그대로 우리 대한민국을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회로 변질 시켜 온 과정은 충격의 연속이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있나?” 하다 보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새로운 충격파가 상식에 의존하여 사는데 익숙했던 사람들을 덮치곤 했다. 긴 세월의 피나는 투쟁으로 얻어낸 민주화의 핵심적 결실인 평화적 정권교체를 헌신짝처럼 짓 밞아 버린 이른바 ‘촛불혁명’과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대한민국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발전시키는데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들을 정치인, 경제인, 산 자, 죽은 자 할 것 없이 모두 죄인으로 몰며 핍박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다는 평가를 받던 우리 원전 폐기를 신호탄으로 우리의 시장경제와 한미동맹체제를 뿌리 채 흔들어 놓으며 그것을 “평등, 공정, 정의”, 그리고 남북한 간 “평화”의 이름으로 정당화 하려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었다. 국가 예산과 국가 부채의 규모가 세금과 함께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는 위험한 현상이 일어나도 대통령의 지지율은 별로 떨어지지 않는 듯 했다는 점이다. 마치 마르지 않는 돈 샘이라도 있는 듯 별 별 이름의 보조금을 마구 퍼준 덕분이었을 것이다. 민주 사회의 귀감이 되기는 고사하고 권력과 법에 대한 지식을 사익을 위해 악용한 혐의가 백주에 들어난 사람들을 법무장관으로 기용하고 사법부와 검찰을 포함한 거의 모든 공직을 특정집단이나 지역 출신이 독점하도록 하며 새로운 ‘귀족층’을 만들어 내는데도 국민적 저항이 일지 않는다. 설사 범법자는 아닐 지 모르더라고 도덕으로는 큰 하자가 있는 것이 뚜렷한 공직자들을 공공연하게 옹호할 뿐 아니라 그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역공하는 정치인들이나 시민집단들의 소리가 점 덤 더 대담해지고 있다.

오죽하면 어떤 고명한 철학교수가 이러한 세태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가 미친 것인지 아닌지 의문이 생긴다며 자기를 공격하는 친지들을 향해 “내가 미쳐서 미안합니다” 라는 글을 [철학과 현실]이라는 권위 있는 학술지에 발표하기에 이르렀을까? 이런 사회에서 살아 견디려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충격불감증’에 걸리게 되고 모든 것이 괜찮아 질 것이라는 자기최면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지 모른다. 하지만 충격을 외면하고 산다고 해서 충격적이 현실의 의미가 사라지고 그것이 몰고 올 여파가 달리지는 것은 아니다. 그 점에 바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지금 직면하고 있는 비극의 심각성이 있다.

최근 바다에서 표류하던 우리 해양수산부 공무원을 살해하고 불까지 지른 북한의 극악무도한 만행을 예로 들어 보자. 북한의 그러한 행동은 결코 용서 못 할 일이지만 그들이 지금까지 보여온 선례로 볼 때 놀라울 것은 없는 일이었다. 진실로 충격적인 것은 지금까지도 국민 앞에서 그 일에 관해 사죄와 위로의 말 한 마디 안 한 문재인 대통령과 그 측근의 태도이다. 빗발치는 여론의 뭇매를 맞은 뒤 북한이 내 놓았다는 것은 진정한 사과가 아닌 변명조의 성명뿐이다. 그런데 그 것을 놓고 무슨 큰 경사라도 난 듯 ‘전화위복’이라느니 김정은이 ‘계몽군주’라느니 하는 말을 하는 정신 나간 인간들이 이 나라의 정치를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 우리가 어찌 하루 밤이라도 편히 잠을 잘 수 있는가.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가 다 바로 그런 끔찍한 변을 당한 공무원과 똑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더구나 문재인 대통령은 그 참사를 막기 위한 어떤 시도도 하지 않았을 뿐 더러 그런 일이 벌어지고 나서도 우리가 그런 북한과 평화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전 세계를 향해 역설하고 있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제 우리를 보호해 줄 정부가 없이 정치적 고아가 되어 버린 신세임이 이번 사건으로 확인되고도 남지 않았는가.

남북한문제의 핵심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로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북한은 1948년 북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을 발족시킨 이해 대한민국을 무슨 방법으로든지 전복시켜 자기네 체제 속으로 흡수하겠다는 목표를 포기 한 적이 없다. 지금은 핵과 장거리 미사일로 무장하며 미국까지 협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도 평화통일을 지향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이 이미 누리고 있는 자유와 민주주의와 자기 나름대로 번영과 행복을 추구 할 권리를 희생해야 하는 통일이란 받아 드릴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북한은 항상 경계해야 할 주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다. 다만 한미동맹과 한미일 공조체제가 굳건하며 중국이나 러시아와도 우호적 관계를 유지되고 있는 한 핵을 가진 북한이라도 우리에게 즉각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잘짜여진 국제공조체제 덕분이 오랜 동안 실질적인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

문재인 정권 출범 후 달라진 것은 그러한 실질적인 대북 견제체제가 무너지고 우리의 처지가 열세가 되었는데도 언론 통제 때문에 국민이 그것을 충분이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남북한 평화를 위해서는 “어떤 대가”도 불사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북한 관계의 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서면서 나타난 결과는 북한 김정은의 국제적 위상이 전에 없이 높아졌다는 사실뿐이다. 그 사이 한미공조체제는 크게 훼손되고 대중(對中) 의존도가 높아졌다. 대한민국의 대북 방어체제와 국제정치적 위상이 동시에 크게 추락했기 때문에 문재인식 ‘평화’ 최면술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은 6.25 전쟁 후 처음으로 실질적인 불안에 떨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촛불혁명” 이전의 남북 관계로 눈을 다시 돌이켜 보자. 북한은 핵을 가지고 있지만 국민이 굶어 죽는 처지에서 못 벗어 나고 있다. 우리가 북한의 위협에서부터 벗어나고 남북한 겨레가 실질적으로 평화와 번영을 공동으로 누릴 수 있는, 어쩌면 유일한, 길은 북한은 핵을 포기하는 대신 그 대가로 정상국가로 발돋움하는데 필요한 거대한 규모의 경제적 원조를 우리와 미국, 일본을 선두로 한 세계평화에 관심 있는 부국들로부터 받아 낼 수 있도록 우리가 적극 돕는 길이다. 동맹국인 미국과 우호국인 일본에게는 경제지원이 북한의 핵이니 김정은 정권을 제가하기 위한 군사적 방법 동원 보다 훨씬 효율적인 길임을 설득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북한을 차츰 한미일 공조체제 속으로 끌어드리고 언제인가는 완전한 남북통일을 이룰 수 있는 진정한 가능성이 열릴 것이고 러시아나 우리의 통일을 달갑게 보지 않는 중국도 그에 대해 반대할 명분이 없었을 것이다. 남북한 겨레를 다 같이 사랑하며 북한과 잘 통한다는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정직한 중재자로 자신 있게 나설 수도 있었다. 한국과 미국은 군사적 동맹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불행히도 문재인 정권은 그 반대의 길을 택했다. 곧 김정은 앞에서는 자기를 “남측 대통령”으로 평가 절하하고 눈치를 살피는 한편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동맹국의 대통령으로 행동하는 대신 마치 북한아 주장하는 “한반도 비핵화”가 마치 미국이 요구하는 “북한의 비핵화”와 동일한 것인 듯 착각하도록 트럼프대통령을 헛된 길로 유도 함으로써 결국은 미국과 북한 양쪽으로부터 다 불신과 경멸을 받는 처지로 전락했다. 불행히도 문재인에 대한 신뢰와 함께 추락한 것이 우리 대한미국 국민에 대한 우호적 관심이다. 더구나 미국과 중국간의 관계가 적대적 경쟁관계로 변화한 속에서 문재인 정권이 보여준 노골적인 반미, 반일, 친중 자세는 미국의 의심과 분노를 사기에 충분한 것이다..

김여정의 지령에 따른 판문점 남북연락사무소 폭파나 이번의 우리 공무원 살해 사건은 문대통과 그 추종자들에 대한 김정은의 태도가 신뢰나 기대 보다 경멸에 가까운 것임을 보여주는 뚜렷한 사례였다. 그리고 뒤 늦게 나온 사과문이라는 것도 자세히 보면 전정한 의미의 사과문이 아니고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여론이 다시 심각하게 악화되는 것을 차단하려는 계산에서 나온 변명일 뿐 이미 자기 눈치 보기에 급급해 항의 전문 한 장 보내지 못하는 문재인과 그 일당을 의식해서 내보낸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김정은은 중국의 지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이지만 결코 시진핑의 영향력에 마구 휘둘리지는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는 점에서 문재인과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미국과는 소원해지면서 중국에 대해서는 공산당교와 정책협약을 체결할 정도로 굴종적인 문재인과 그 일당은 이제 김정은에게 파트너로서의 가치를 이미 많이 상실한 것이 아닌가도 추측할 수 있다.

여하간에 분명한 것은 이제 우리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를 지키고 감싸줄 정부가 없는 국제무대의 고아로 전락해 벼렸다는 점이다. 이것은 비단 개인적 인권의 차원에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의 경제계도 학계도 예술계도 교육계도 자기들의 권력영속화 이외에는 다른 어떤 가치 기준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사고력을 가진 인간으로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듯 한 현란한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뒤로는 비판세력을 깨알 잡듯 뒤져내어 잔학하게 탄압하는 집권세력이나 그들이 기회주의적 하수인들의 포로가 된 정부로 부터 기대 할 것은 긍정적인 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다.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다시 만들고 유지 하는 일은 이제 힘 없는 절대 다수가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스스로를 서로 돕는 한편 새로운 귀족층/기생충으로 등장하여 남의 권리를 짓밟는 일을 예사로 여기는 사람들을 역으로 경멸하며 소외시키는 도덕적 재무장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의 국권을 사익추구의 수단으로 농락하고 있는 세력은 이제 삼부와 헌법재판소, 언론 모두를 장악하고 있으며 코로나 확산방지를 명분으로 국민의 사생활 영역에 까지 깊이 침투했다. 빅데이터를 동원해 우리의 일거일동을 모두 꿰뜷어 볼 수 있는 무서운 전체주의 세력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은 먹을 것으로만 사는 것이 아닌 영적 존재이다. 또한 지금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힘없는 다수의 분노와 자구책을 위한 결단이 파괴 보다는 새로운 의미의 건설을 향한 방향으로 폭발 할 때 그것을 제어 할 수 있는 힘은 없다. 그러한 길은 언제나 우리 앞에 열려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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