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지 군주의 소유물이 아니다"
왕실 비방 행위자에 대해 최고 15년의 징역형 처해질 수 있는 태국에서 反정부·反왕실 시위 이어져
국민들은 중국발 '우한 코로나'로 신음하는데, 왕실 예산은 16%나 늘어나...국왕 소유 여객기도 38臺
野 타나톤 중룽르앙낏, "재정 지출 이렇게나 방탕한데도 국민과 의회에 세부 내역 공개 안 해" 비판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지 군주의 소유물이 아니다.”

최근 태국에서 전개중인 반(反)정부 시위에서 등장한 구호다. 시위를 이끌고 있는 것은 10대와 20대 청년·학생들이 주축이 된 ‘탐마삿과 시위 연합전선’(이하 ‘연합전선’). ‘연합전선’은 지난 7월부터 ‘왕실 개혁’을 주제로 ‘표현의 자유’ 쟁취를 위한 대(對)정부 투쟁을 벌이고 있다.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된 것은 지난 19일부터다. 태국의 수도(首都) 방콕 시내에 위치한 왕궁 바로 옆 사남루엉광장에서 열린 반(反)정부 시위에는 태국 경찰 추산 2만여명의 시위 참가자가 집결했다. 태국 경찰 측은 당초 최대 5만여명의 시위대가 모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지 군주의 소유물이 아니다’라는 문구(文句)가 적힌 동판(銅板)을 광장 바닥에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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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의 반(反)정부 조직 ‘탐마삿과 시위 연합전선’이 지난 19일 태국 왕궁 바로 옆에 위치한 사남루엉광장에 설치한 동판의 모습.(사진=로이터) 

이 구호가 태국에서 굉장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바로 태국 왕실을 직접 공격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 헌법은 국왕을 모독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왕실을 비방하는 이는 최고 1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외국인도 예외는 아니다. 태국의 반(反)정부 시위대는 그야말로 목숨을 담보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1782년 현(現) 짜그리 왕조(王朝)가 세워진 이래 태국 왕실은 ‘신성불가침’의 존재다. 특히 지난 1946년 즉위해 2016년 서거(逝去) 때까지 태국을 통치한 짜그리 왕조의 9대(代) 국왕 푸미폰 아둔야뎃은 국민적 존경을 받으며 태국 왕실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도 했다.

군부 쿠데타가 반복돼 온 태국에서는 쿠데타가 일어나는 와중에서도 왕실만큼은 안전을 유지해 올 수 있었다.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정권을 획득하면 왕실은 이를 추인면서 쿠데타 정권에 권위를 부여하는 방식을 취해 온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관행도 최근에는 통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16년 즉위한 새 국왕 마하 와치랄롱꼰은 사생활이 방탕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인물로써 태국 내 반감이 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은 왕실의 방탕한 경비 지출이다. 최근 중국발(發) ‘우한 코로나바이러스’의 대규모 유행 사태 속에서 태국의 국민총생산(GDP)이 작년 대비 8%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태국 정부는 왕실 예산을 16%나 인상했다. 또 왕실이 총 38대에 달하는 여객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항공기 유지·보수 비용만 연간 750억원을 쏟아붇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태국 시민들은 분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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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즉위한 마하 와치랄롱꼰 태국 국왕(가운데).(사진=로이터)

태국에서는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는 내용이 담긴 동판을 설치한 ‘연합전선’ 측은 동판을 설치하면서 “(이 동판은) 현(現)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이 즉위한 뒤인 2017년 4월 갑자기 사라진 ‘민주화 혁명 기념판’을 대체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들은 ▲왕실모독죄 폐지 ▲왕실 폐지 ▲국왕 경호원 해산 ▲군정(軍政) 축출 ▲새 헌법 재정 등을 요구했다.

태국 최대 야당 세력의 대표격인 타나톤 중룽르앙낏 전(前) 퓨처포워드당(FFP) 대표는 태국 왕실 문제와 관련해 “불편한 진실이었다”며 “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군주제 개혁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 왕실은 38대의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소유하고 있으며, 내년 왕실에 투입되는 예산이 2018년 대비 두 배 규모인 89억 바트(한화 약 3천304억원)에 달하는데도 국민과 의회에 세부 내역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반(反)정부 시위에 대해 태국 정부는 강력 대응하는 모양새다. 지난 24일에는 태국 내에서 사이버 범죄 등을 다루는 ‘기술범죄진압국’에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이 왕실을 모독하는 게시물들을 삭제하지 않고 방치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소셜미디어(SNS) 사업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었다.

반(反)정부 시위에 대응도 한층 거칠어졌다. 지난 3월 ‘우한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을 막는다며 선포한 ‘비상사태선언’을 또다시 연장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 태국 내에서 발생중인 ‘우한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환자수는 한 자리 수에 불과해 태국 정부가 ‘우한 코로나바이러스’를 핑계로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意思) 표출을 부당하게 막아서고 있는 것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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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반(反)정부 시위대의 시위 모습(오른쪽)과 친(親)정부 시위대의 모습(왼쪽).(사진=로이터)

박순종 기자 franci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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