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수사력이 정치이슈에 쏠려 민생사범 통제력 약화”
"헌정 사상 첫 탄핵으로 사회 규범 와해" 분석도
공무원직권남용 51%, 강도 25%, 방화 10% 증가
집시법 위반 사범은 50.6% 감소

문재인 정부 출범 첫해인 지난해 살인 관련 사건 접수가 전년보다 62% 급증하는 등 강력 사범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잇달아 구속 또는 검찰 수사를 받는 등 사정(司正)기관의 수사력이 정치 사건으로 쏠리면서 민생 사범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PenN이 25일 단독 입수한 '대검찰청 업무현황’에 따르면 작년 살인 및 살인 미수 등 살인 관련 사건 접수는 2,988건으로 2016년보다 62.1%나 늘었다. 살인 사건이 1년 만에 이처럼 급증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또 강도‧강도미수는 25.5%, 성폭력은 8.2%, 강제추행 11.5%, 방화‧실화(失火)는 10.9% 증가하는 등 전체적인 강력사범 접수는 1년 전보다 10.9% 늘었다.

2017년 강력사범 범죄유형별 통계. 자료=대검찰청

공무원 직권남용(51.1%)도 전년보다 크게 늘었다. 직권남용은 9,033건으로 전체 공무원 직무 관련 범죄의 73.8%를 차지했다.

반면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사범 접수건수는 지난해 1,020건에서 504건으로 50.6% 줄었다.

기타 폭력사범(-3.1%), 경제사범(-3.3%), 소년범죄(-3.8%), 환경‧보건사범(-3.5%), 마약사범(+0.04%), 국가보안법위반사범(-2.3%), 노동관계법위반사범(-0.1%)은 1년 전과 비교해 비교적 변화폭이 작았다.

대검찰청 관계자에 따르면, 검찰 내부에서조차 살인 등 강력범죄가 급격히 늘어난 것에 대해 ‘미스테리’라는 반응이다. 검찰의 자체적인 원인 분석이 완료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범죄를 억제하고 있던 공권력이 다른 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범죄 억제력이 약해졌거나 ▲헌정 사상 최초로 대통령이 탄핵되며 사회 규범이 와해됐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과거에도 계속 있어왔던 범죄가 더 많이 밝혀졌다고 보기에는 차이가 너무 크다”며 “국가권력이 그동안 정치현안에 쏠리는 상황에서 민생사범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됐다고 보는 게 더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범죄를 벌이기 전에 신고가 들어가고 경찰이 출동하고 그러면서 범죄가 억제돼야 하는데, 경찰이 다 딴 데 가 있으면서 우발적 사범이 늘어난 것”이라며 “이명박 전 대통령 수사만 하더라도 엄청난 인력이 투입됐는데, 그 수사 인력이 원래 담당해야 했던 민생 수사는 그만큼 구멍이 생기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황승연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시위와 대통령 탄핵 등으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규범들이 느슨해지며 범죄가 늘어나는 ‘아노미적 일탈’”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아노미란 다양한 규범들이 생기며 사람들이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장관도 잡아가고 대통령도 잡아가고 하면서 시민들의 준법정신이 옅어지거나 기존의 법체계를 무시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며 “범죄를 저지르면서 예전보다 죄책감을 덜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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