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승연 칼럼] 세금의 저주
[황승연 칼럼] 세금의 저주
  •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프로필사진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이메일

    기자의 다른기사보기

  • 최초승인 2020.09.15 14:50:04
  • 최종수정 2020.09.16 10:21
  • 댓글 2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납세자들의 저항의 역사는 일치한다.
영국 대헌장: “나의 재산과 자유를 빼앗지 말라”
미국 독립전쟁: “대표없이 과세없다”
프랑스혁명: “가혹하게 털 뽑인 거위들의 반란”
우리나라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당돌한 세계 최초의 세금들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황승연 객원 칼럼니스트

민주주의의 역사는 권력자들이 부과하는 세금에 대한 납세자들의 저항의 역사와 일치한다. 1215년 영국의 대헌장도 그러했고, 1689년 권리장전도 그러했다. 1776년 미국의 독립전쟁과 1789년 프랑스혁명 역시 세금이 핵심 원인이었다. 처음에는 왕의 과도한 과세에 저항하여, 과세에 납세자 자신들의 동의를 요구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후에는 국가의 주인은 국민들이고 국민들은 그 대표를 통하여 과세의 내용을 결정한다는 적극적인 의미로 발전하였다.

민주주의의 발전은 주로 세금과 관련이 있는 것이어서, 옛날에는 투표권은 세금을 부담하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졌다. 직접민주주의를 택한 아테네의 경우에도 남성자유민들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고, 영국의 경우에도 18세기까지 재산을 어느 정도 보유한 국교도 남성에게만 투표권이 주어졌다.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에서도 20세기가 되어서야 남성들이 투표권을 인정받기 시작했고, 여성들의 경우 더 늦어져서 스위스에서는 1971년이 되어서야 투표권을 얻었다. 그 전에는 철저하게 투표권은 재산이 그 기준이 되었고, 세금을 납부함으로써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투표권의 기준이었다. 이렇게 민주주의와 세금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국가를 위한 헌신을 인정받았다. 이 젊은이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전쟁 때는 항상 부족한 인력자원 때문에 여성들도 국가를 위해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되면서 여성들의 투표권도 늘어났다.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대규모의 전쟁은 국가를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기회였다. 세계적 규모의 전쟁이 아니었으면 보통선거는 훨씬 늦게 시작되었을지 모른다. 미국에서도 1971년 21세이던 투표권을 18세로 낮추었는데, 이는 베트남전쟁을 위한 징집 연령을 18세로 정하면서, 이들에게도 투표권을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이 관철된 것이었다. 이렇게 세금납부와 병역을 통한 국가에 대한 헌신은 참정권의 기본이다. 그러나 이것이 과하면 국가에 대한 헌신이 국가에 대한 배신이 되고 세금은 저주가 된다.

영국의 대헌장: “나의 재산과 자유를 빼앗지 말라”

옛날부터 왕들은 전쟁을 수행하면서 귀족들에게 참전과 전비부담을 요구했다. 영국의 존 왕(King John)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여서 귀족들에게 전쟁수행을 위해 과도한 세금을 부담케 하자 이에 그들은 참다못해 반란을 일으켰다. 결국 왕은 ‘자유민은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처벌되지 않는다’, ‘귀족들의 동의 없이는 왕이 자의적으로 추가적인 납세를 요구하지 못한다’는 규정이 포함된 ‘대헌장(Magna Charta)’을 승인해야만 했다. 이는 권리청원(1628), 권리장전(1689) 그리고 미국의 헌법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를 통해 ‘납세자의 동의’에 의한 과세 원칙이 확립되었다. 이 원칙은 왕과 영주(귀족) 사이 뿐 아니라, 영주와 농민 등 다양한 계층에서 발생하는 권리의 보호를 규정하는 모델이 되었다. 대헌장은 세금뿐 아니라, 자유에 대한 핵심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는데, 대헌장 제39조는 “이 나라의 법률에 의하지 않고는 체포되거나, 투옥되거나, 재산을 빼앗기거나, 추방당하거나, 죽임을 당하거나, 소추되지 아니한다.” 또 제 40조는 “권리나 정의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매도하거나 또 누구에게도 거부하거나 지연시키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권리나 정의는 신분이나 재력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야한다고 강조되는데, 이를 위해 사법절차를 규정하고 벌금이나 처벌의 수준은 그 죄의 정도보다 과도하지 않아야 하고, 판사나 집행관 등은 법을 알고 그것을 잘 준수할 사람을 임명하여야한다고 정하고 있다. 또 관리들이 농작물이나 가축 등의 재산을 소유자의 동의 없이 징발하지 못하게 하고, 징발할 때는 정당한 대가를 제때 지불하도록 했으며, 왕이 공적 목적이라는 핑계로 개인의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대헌장은 이 내용이 자유민들과 그 자손들에게도 적용될 것을 천명하고 있고, 만약에 왕이 이를 어길 경우에는 왕의 횡포에 저항할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이 뿐 아니라 상인들의 자유통행과 더불어 무게와 양을 측정하는 표준도 포함되어 있다. 영국에서 대헌장이 발표되던 해인 1215년.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1196년 최충헌에 의한 무신정권이 들어서고 난 후, 1231년 몽골의 1차 침입으로 인하여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기 전의 일이다. 중국에서는 칭기즈칸이 금나라의 수도인 연경을 함락한 바로 그 해이다. 1215년 영국에서, 왕은 백성들의 자유와 재산과 권리를 존중하고 마음대로 세금을 걷지 않겠다는 약속을 왕의 문장으로 봉인함으로써 하였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기초를 다진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미국의 독립운동: “대표없이 과세없다”

북아메리카 식민지배권을 두고 7년(1756-1763)간 계속된 영국과 프랑스간의 전쟁에서 영국이 이겨서 큰 영토를 차지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질서를 지킨다는 명분으로 7천명 이상의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이에 대한 비용을 세금으로 충당하려하였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설탕법(the Sugar Act)이다. 프랑스령이나 스페인령의 서인도제도에서 들어오는 설탕의 밀수를 막기 위한 것으로 이외에도 외국산 와인, 커피 등 사치품의 수입에도 관세를 부과하고, 목재나 철광석 등의 수출을 영국에만 하도록 제한하여 식민지의 해상무역을 크게 위축시켰다. 또 인지법(the Stamp Act)을 제정하여 신문, 잡지 등의 인쇄문서는 런던에서 생산된 인지 붙은 종이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납세자의 동의 없이 과세가 이루어졌다고 크게 반발했다. 영국의회는 결국 설탕법과 인지법을 폐지하였으나 다시 재정위기에 처하자 영국의회는 또 다른 법인 타운센드 법(Townshend Revenue Act)을 만들어 종이, 유리, 그림, 차 등의 수입에 관세를 부과하였다. 이에 식민지 주민들은 영국 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주민들과 군인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여러 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은 후에 이 법도 폐지되었다. 하지만 차 법(the Tea Act)을 만들어 차에 대한 세금은 유지하려고 하자 일부 단체에 속한 보스톤 시민들이 항구에 정박하고 있던 차 무역선에 올라가서 차를 바다에 던져버렸다. 이것이 1773년 보스톤 차 사건(the Boston Tea Party)이다. 이에 영국정부는 강경진압에 들어갔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과 교역을 하는 것을 금하고, 항구를 봉쇄하였다. 그러자 Thomas Paine은 ‘상식(Commen Sense)’이라는 책을 써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에서 ‘미국은 자유를 위해 영국과 단절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 1776년 7월 4일 Thomas Jefferson이 초안을 작성한 ‘독립선언서’가 공포되었다. 그리고 영국과 전쟁이 시작되었다. 미국의 독립전쟁은 이렇게 세금 때문에 시작되었다.

프랑스혁명: “가혹하게 털 뽑인 거위들의 반란”

학자들은 프랑스혁명의 원인으로 1783년 아이슬랜드 화산폭발 이후 유럽에 찾아온 긴 흉년 때문에 부르조아 계층과 서민들의 삶이 피폐해진 상황에서, 자신들에게만 부과되는 불공평한 세금의 과중한 부담이 민중들의 봉기를 이끌어냈다고 주장한다. 북아메리카에서 영국과 벌인 7년 전쟁에서 프랑스 왕실은 영토도 잃고, 큰 재정 손실을 보았다. 왕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한 베르사이유 궁전의 증축에도 많은 돈을 낭비했고, 영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하는 미국을 지원하느라 국가채무는 천문학적으로 크게 늘었다. 이에 왕실의 부채를 줄이고자 귀족과 성직자들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려 했지만 귀족들의 저항이 심했다. 이에 성직자, 귀족, 평민계층 사이에 합의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자 1789년 ‘삼부회’를 소집했는데, 합의를 보지 못하고 제1계층인 성직자 일부와 제3계층인 평민계층이 테니스장에 모여 ‘국민의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헌법의 입안을 원하였다.

‘테니스코트의 서약’을 통해서 루이 16세는 국민의회를 인정하고 헌법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길거리 시민들은 왕이 군대를 동원하여 국민의회를 진압한다는 소문에 흥분하여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감옥을 습격함으로써 프랑스혁명이 시작되었다. 국민의회를 구성한지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이다. 또 헌법초안을 만들자고 국민의회를 국민헌법의회라고 이름을 바꾼지 불과 닷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로부터 보름도 지나지 않아, 봉건제를 폐지하고, 귀족들의 특권을 폐지하고, 카톨릭 성직자들이 징수하던 십일조를 폐지하였다. 11월에는 카톨릭 교회가 갖고 있던, 전 국토의 10%에 달하던 토지를 국유화하였다. 다음해 2월에는 수도서원을 폐지하고, 수도회를 해산하고 수사와 수녀들에게 환속을 요구하였으며, 성직자법을 통과시켜 교황의 성직자 임명권을 부정하였다. 이 모든 것이 1년도 채 되지 않은 사이에 일어났다. 루이 16세는 이러한 변화를 받아들였지만 끊임없는 음모와 소문에 시달리다 결국 왕비 마리 앙뚜와네트와 함께 1793년 1월에 반역죄로 단두대에서 처형당했다. 그리고 프랑스는 이미 시작된 오스트리아와 프러시아와의 전쟁에 이어서 스페인과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 전쟁을 시작하였다. 이 전쟁은 1815년 나폴레옹이 유배를 갈 때까지 23년 이상 이어져 전 유럽이 전쟁의 고통 속을 헤매게 된다.

혁명 당시의 특권층은 면세혜택을 받았고 조세부담은 부르조아 계급과 농민, 도시 임금노동자들에게 집중되었다. 세금을 걷고자 별의별 세금이 다 생겨났다. 판매세, 통관세, 소금세, 토지세, 십일조, 수득세, 인두세 등이 있었다. 이와 더불어 영주에게 부역과 현물을 받쳐야했고, 농토에 대한 지대와 소출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정미소, 포도착즙기 등 영주 소유의 모든 시설 이용료는 별도였다. 또 당시에 세금의 징수는 조세징수인에게 위탁했는데, 그들은 계약된 일정한 액수를 납부하고 나머지는 자신의 몫으로 챙겼다. 매관매직을 통해서 조세징수인이 되었는데, 왕에게 연례적으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추가적인 부담을 하면 아들에게 세습도 가능했다. 이와 더불어 의도적으로 만들어내는 인플레이션은 화폐가치를 떨어뜨리고 물가를 폭등시켜서 심각한 생존의 위협에 처하게 되었다. 당시 세금을 통한 착취는 너무 가혹해서 굶주림에 고통받는 도시의 서민들은 언제든지 폭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우리나라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이고 당돌한 세계 최초의 세금들

지난 4.15선거를 통해 압도적 다수를 점한 정부여당은 자신만만하게 세금과 관련된 많은 법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개정안’이라는 ‘협력이익공유제’ 법안이다. 이 법안은 대기업의 사적 이익을 중소기업과 강제적으로 나누라는 것으로 자본주의 시장의 원리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적인 법안이고, 이는 세계 어떤 나라도 시행한 적이 없는 초유의 반기업 법안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공동으로 정한 매출이나 영업이익이 목표를 달성하면, 대기업의 이익 일부를 나누어 주라는 제도인제, 이는 법으로 이익을 공유하라는 또 다른 종류의 세금이다. 어떤 기준으로 이익 목표를 설정할 것이며, 이익 공유를 어떻게, 어느 정도로 할 것인지 정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냐는 비판이 있다. 잘못되면 이익배분을 놓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소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익배분을 바라는 중소기업들은 해외시장은 포기하고 국내 대기업들과 거래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또 대기업에 납품하는 해외 기업들도 이익 공유를 주장할 때, 이에 응하지 않으면 불공정 사례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될 수도 있다. 또 기존 협력업체가 공유된 이익을 받게 된다면 결국 협력업체 시장에서 우위를 갖게 되고, 다른 업체는 시장에 진입을 못하게 된다. 그 결과는 결국 시장이 위축되고 국가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다. 악법중의 악법이 될 것이다.

이렇게 말이 안 되는 탁상공론의 법안에 대해 2018년 11월에 정부가 법제화를 추진했었는데, 반시장적인 법안이라며 반대하는 야당에 막혀서 20대 국회에서는 입법화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당과 여당 2중대 정당 의원들의 의석수가 180석 이상이 된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지난 7월 31일 위헌요소가 가득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통과시키는 것을 보고 상황을 깨닫게 된 대기업들은 이제 기업의 해외이전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논의할지도 모른다.

이번 정부 들어서 부동산 가격을 잡겠다고 부동산 안정화 대책을 22번인가 23번인가 하여간 셀 수도 없이 내놓았다. 그럼에도 서울의 아파트 값이 50%도 더 올랐다 한다. 이를 잡겠다고 정부는 세금을 더 올린다. 주택을 사거나 보유하거나 팔거나 할 때 늘 세금이 따라다닌다. 취득세, 등록세, 재산세,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등. 또 임대수입에는 임대소득세 혹은 종합소득세도 있다. 이에 연동된 의료보험료도 있다. 주택이 2개 이상이거나 고가주택일 때 세금은 더 높다. 사람들은 이를 부동산 보유에 대한 징벌적 세금이라고 한다. 정부의 시장개입과 정책 잘못으로 오른 부동산 가격에 대해 국민들에게 그 책임을 묻는 격이다. 주택을 2개 갖고 있다는 것이 왜 벌을 받을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은퇴 전에 돈을 모아 직접 거주하고 있는 집 이외에 주택 한 채를 더 사서 월세를 받아 생활비로 사용하는 은퇴자가 있을 수 있다. 이 사람은 앞으로 임대료 수입보다 내야할 세금이 훨씬 많아지게 된다. 그렇다고 팔 수도 없다. 양도소득세를 내고 나면 자산이 크게 줄어든다. 쉽게 팔 수 없도록 법을 만들었다. 사거나, 살거나, 세를 주거나, 팔거나 모든 경우에 세금이 너무 많다. 부동산과 관련된 세금의 종류가 세계에서 가장 많고, 세율도 가장 높다. 그리고 임차인을 보호한다고 위헌소지가 다분한 주택임대차보호법을 통과시켰다. 급했는지 여당은 법안 통과 과정에서 법안 심사도 없이 사기에 가까운 수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았다. 특히 집을 살 때 은행대출을 끼고 집을 사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이는 선진국들이 모두 젊은이들의 내 집 마련을 위해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다. 세금으로 모든 경제의 흐름을 막아버렸다. 따라서 경제에 대한 의욕도 막혀버렸다. 기업과 부자 때려잡는 법들도 앞으로 이러한 방식으로 통과될 것을 걱정하며 잠 못 이루는 기업인들이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세금 제도는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국가들보다 훨씬 더 사회주의적이다. 상속⋅증여세도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이다. 그러나 정부는 얘기한다. 이렇게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숫자가 많지 않다고. 즉 부자를 벌하는 모습을 보여 사회주의 정책으로 서민의 표를 얻겠다는 것이다.

대기업도, 중소기업도, 임대인도, 임차인도, 무주택자도, 1주택자도, 다주택자도, 집 없는 청년도, 집 있는 노년도 모두가 불안해하고 불행해지는 그런 법안들이 무더기로 통과되고 있다. 오로지 선거에서 표를 더 얻는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되면 편을 가르고 분노를 자극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해방 후부터 6.25동란 전까지 우리나라가 이념으로 갈라져 극심한 혼란을 겪었던 이래로 우리 사회가 이렇게 심하게 편이 갈라져서 갈등을 보인 적이 있는가? 그런데 이번에는 그 주범으로 정부와 여당이 나서서 분열을 조장한다.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표가 될 만한 정책으로 얼마든지 선거 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고 보는 것 같다. 권력의 오만으로 국가는 이렇게 몰락해간다. 바보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정책은 실패하기 마련이고,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제한하여 성공한 적이 없고, 이를 통하여 국가의 몰락의 시작이 된 경우는 수없이 제시할 수 있다.

한손에는 세금을 다른 한손에는 복지를 들고 흔들며, 국민들 편을 가르고, 선심성 예산을 마구 살포하고, 공무원 늘리고, 시장에 부당하게 개입하여, 결국 몰락의 길을 간 베네주엘라, 그리스, 터어키 등을 보고 왜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따라하려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최근에 깨달았다. 그들은 세금으로 저주를 자초한 그 길로 가기로 작심을 하고 있다. 그 나라들처럼 해서 경제가 폭망하면 선거에서는 이긴다는 것을 배운 것 같다. 20년 집권을 얘기하지 않는가? 그런데 국민들은 그런 정당과 그 당의 정책들에 박수를 친다. 인간은 정당한 대가없이 노력하지 않는다. 무지막지한 세금제도는 과거 영국, 미국, 프랑스에서 봤듯이 우리 사회를 근본부터 뒤흔들게 될 것이다. Milton Friedman이 말한 ‘공짜 점심은 없다’는 교훈을 그 대가를 치르면서 깨닫게 될까? 그런데 사회주의의 길로 들어선 그 대가는 우리 세대보다도 우리의 자손들 세대가 두고두고 치르게 될 것이다. 점심은 자기가 먹고 그 대가는 자손들이 치르게 한다면 이 얼마나 못난 민족인가!

황승연 객원칼럼니스트(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2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