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전 대통령(이하 경칭 생략) 탄생 10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해 11월13일 서울 마포구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앞에서는 박정희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좌파단체들과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측의 충돌이 있었다. 기념도서관 부지가 서울시 소유여서, 조형물을 세우기 전에 서울시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군색한 이유로 '동상 없는 동상 기증식'('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 기증)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다. 좌파 성향 일부 언론은 박정희를 친일·독재의 상징으로, 동상 건립을 '우상화'로 규정하는 좌파단체의 주장을 집중 조명하면서 "기념재단이 법적·제도적 절차를 무시하고 동상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박정희대통령기념사업회 관계자는 "박정희·김대중 두 전임 대통령의 기념사업에서 김대중 대통령 측이 더 많은 지원을 받았고 사업 과정도 순조로웠다"고 반박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동상 건립을 비롯해 두 전직 대통령 기념 건축물에 대한 국고지원액을 살펴보면 기념사업회 측의 항변은 일리가 있다. 이밖에도 이승만 초대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아우르는 범위까지 논의를 확장하면, 동일한 현안을 두고 '우파 지도자 차별'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기념·관련 건축물 국고 투입, 김대중이 박정희 '압도'

국고 지원을 받아 건립한 대표적인 전직 대통령 기념 건축물을 꼽자면, 박정희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2012년 전시관만 개관)이 있다. 김대중의 경우 광주광역시의 '제1·2 김대중컨벤션센터'(각 2005년·2013년 개관)와 전남 목포의 '김대중 노벨평화상 기념관'(2013년 개관)이 대표적이다.

국고 지원은 김대중 기념사업이 훨씬 많았다. 1999년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 설립 예산으로는 국비 208억원과 민간기부금 500억원이 책정, 집행됐다. 반면 김대중의 정치적 지역 기반인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제1 김대중컨벤션센터는 국비 434억원·시비 337억원, 제2 센터는 국비 280억원·시비 280억원, 전남 목포시 삼학도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은 국비 100억원·도비 40억원·시비 60억원 등으로 민간기부금 없이 총 1531억원의 공공재원이 들었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의 경우 논란을 빚었던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의 신규 사옥을 김대중이 2003년 기증한 뒤 개칭한 것으로 설립에 따른 국고 투입은 없었다.

직접 대통령 이름을 따 기념하지는 않았지만 각 인물과 연관된 건축물로는 경북 구미시 새마을 테마공원(미완)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2015년 12월 개관)을 각각 거론할 수 있다. 국고 지원 규모도 비교해봄직 하다.

박정희의 구미 생가 인근의 새마을공원은 2009년 '새마을운동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다'는 취지로 국비 293억원·도비 160억원·시비 434억 총 887억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추산 기관에 따라 연 50억원 안팎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운영비는 경북도와 구미시가 절반씩 부담키로 했다.

김대중의 정치적 기반인 광주의 아시아문화전당(이하 아문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12월 대선 막바지 "예향(藝鄕) 광주를 문화수도로 육성한다"고 공약한 것이 시초다. '예향 광주'는 오랜 별칭으로, 김대중도 재임 당시 이를 언급하며 "국제 미술축제의 중심지로 발전하기를 바란다"고 밝힌 바 있다.

노무현 집권 후 국책사업으로 구체화한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2004년~2023년)은 총 5조2912억원(국비·시비 3조5575억원, 민자유치 1조7337억원)을 들여 광주 전역을 7대 문화권으로 나눠 조성하는 것으로, 핵심 사업인 아문당 건립에만 7천억여원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문당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기관이라는 지위도 부여받았다.

해당 사업은 김대중의 영향력이 큰 호남권 정당·정치인들과 이른바 '광주 5월 단체'들의 지대한 관심 속에 예산 지원을 보장받았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나뉘기 전 옛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3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로부터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 통과 합의를 받아내, 개관 이후 5년간 연 800억원 운영비 국고지원을 관철했다. 지금까지 총 1조1824억원의 예산이 집행된 가운데, 2017년 12월초 7대 문화권을 5대 문화권으로 압축 재설정됐다.

한편 노무현 기념 건축물 사업도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의 주도로 본궤도에 올랐다. 경남 김해시는 2013년 계획한 봉하마을 노무현대통령기념관 건립 사업을 2017년 9월21일 확정, 필요 사업비 138억원(국비 50억원·도비 15억원·시비 56억원·재단 자부담 17억)을 확보했으며 2019년 5월 완공을 목표로 지난 연말부터 착공했다.

노무현재단은 서울 창덕궁 인근에 일명 '노무현 센터' 건립도 추진해왔다. 당초 2010년 사업 시작을 계획했으나 총 550억원(국고 165억원·모금 등 385억원) 규모의 예산 조달이 지연된 결과, 2018년 5월23일(노 전 대통령 기일) 착공-2020년 5월 완공을 목표로 재추진되고 있다. 노무현시민참여센터라는 명칭으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일련의 전직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은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관련 기념재단·사업회 등이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건국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국가 예산으로 신설된 기념관이 없다. 서울 종로 생가 겸 사저 '이화장'(梨花莊), 강원도 화진포 별장이 수차례 복원과 용도변경 절차를 거쳐 2007년 8월부터 각각 기념관으로 운영되고 있는 게 전부다.

1975년부터 역사가 시작된 이승만건국대통령기념사업회가 각종 기념사업을 주관해왔으나, 별도의 기념관 건립으로까지 추진력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다. 국가 예산도 2010년 30억원 책정됐으나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지 않아 집행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념사업회는 2016년 기준 총 3억원이 안 되는 기부·모금액으로 운영되고 있다.

●기념사업 파열음·예산칼질, 이승만·박정희 관련사업에 집중

기념 건축물 건립이든 관련 사업이든, 이념적 반대세력이 발목을 잡은 사례는 이승만 박정희 등 우파 대통령에 집중돼 있다. 김대중 정부에서 시작한 박정희기념도서관 건립 사업은 초기 국고지원 208억원 중 16.3%인 34억원 집행에 그쳤고, '사업추진이 부진하거나 기념회가 기부금을 조달하지 못하며 보조금 지원을 전부 또는 일부 취소할 수 있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후 4년간 500억원을 목표로 진행된 민간 모금은 100억원 수준이었다.

이런 배경으로 사업 추진이 더딘 중에 노무현 정부는 2005년 3월 국가보조금 사용 중지 처분을 내렸다. 박정희기념사업회는 이후 대법원에 국가보조금 환수 소송을 냈고, 2006년 승소한 뒤에야 사업을 재개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10년 7월27일 국무회의에서 나머지 174억원의 국가보조금 지원이 의결된 뒤에야 2011년 12월 완공, 이듬해 2월 전시관부터 개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좌파진영의 지속적인 반발 등을 빌미로, 도서관 개관은 '박원순 서울시'에서 시유지 무상 제공을 대가로 공공도서관 방식 운영을 요구하면서 무기한 연기됐다. 당초 '박 전 대통령 관련 각종 사료 수집 및 보존, 전자도서관 및 인터넷 기념관 구축'이 핵심 취지였기 때문에 난색을 표하던 기념사업회는 무상제공된 시유지를 아예 수백억원을 들여 사들이기로 했으나, 반대 세력의 핵심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법원에 매각 절차 중단을 요구하는 가처분신청을 내면서 발목이 잡혔다. 결국 박정희 동상 건립은 서울시 조례에 따라 '시유지에 조형물을 세우는 문제'로 귀결되면서 2016년 11월29일 출범한 시 공공미술위원회의 심의라는 절차와 논란 장기화를 피하지 못하게 됐다.

이승만의 동상은 4·19 혁명 이후 줄줄이 철거됐다. '배재학당 출신'임을 기리는 대전 배재대 교정의 동상도, 직접 설립한 인천시 인하대 공과대학 교정의 동상도, 종로 탑골공원에 있던 동상도, 서울 남산공원에 있는 동상도 모두 철거됐다. 이 중 탑골공원·남산공원 동상은 1960년 하야 직후 철거됐다가 개인 소유가 된 이래 반세기 넘게 방치됐으며, 이승만의 유족 측이 인수를 추진한다는 소식이 2010년 전해진 뒤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이승만 동상 수난사는 21세기에 이르러서도 계속됐다. 2011년 부산 서구 부민동에 설립됐던 이승만 동상이 페인트 세례로 훼손된 뒤 철거돼 원래 조각가의 창고에 5년 넘게 방치됐다. 또 2016년 3월 경인여대는 대한민국사랑회가 제작해 기증한 3m 높이 동상을 제막했으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8월23일 동상 철거로 마무리됐다.

1983년 동상이 한 번 철거됐던 인하대에서는 2010년 이본수 총장과 총동창회가 동상 재건을, 2015년 최순자 총장이 소형 흉상 설치를 추진했지만 좌파진영의 공세로 좌절됐다. 지금 전국에서 이승만 동상을 볼 수 있는 곳은 이화장, 배재중·고교 교정, 국회 본관 로텐더홀, 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 정도에 그친다. 그나마 나라 밖인 미국 오리건주 윌슨빌시에서 한국전참전재단(회장 김병직)이 한국전 발발 67주년인 2017년 6월24일 맥아더 장군 동상을 세운 데 이어, 이승만 동상도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있다.

수난사는 동상에만 그치지 않는다. 이화장은 오랜 세월 민간·구청의 손길로 근근히 보존되다가 2009년 들어서야 국가문화재(사적 제497호)로 지정, 관리를 받기 시작했다. 국회의 2014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는 국가보훈처의 '이승만 박사 전집 발간비' 1억원이 야권의 반발로 전액 삭감당하기도 했는데, 2010년 7월27일 국무회의에서 김대중도서관의 기존 기념예산(자부담 64억원·국고 60억원)에 전집 발간 등을 위한 34억원(자부담 19억원·국고 15억원) 추가지원이 의결 집행된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김대중 동상은 이렇다할 마찰을 빚은 바 없이 국유지에 건립된 사례가 부지기수다. 전남제일고(옛 목포상고), 전남도청 앞 중앙공원 등 전국 20여곳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전남제일고는 공립학교이며 중앙공원은 무안군 소유의 '군유지'다. 행정·절차적 문제로 애로를 겪었다는 사례는 찾기 힘들다. 이밖에 김대중컨벤션센터 등 기념관 운영을 두고 해당 광역지자체에서 문제삼은 경우도 없다.

청남대의 역대 대통령 동상은 물론 광화문 세종대왕상과 박정희대통령기념도서관의 박정희 동상을 제작한 조각가 김영원씨는 박정희 동상 찬반 충돌 사건 다음날인 작년 11월 14일 "예술가로서 내 할 일을 한 것일 뿐"이라며 "예술가가 정치에 편입해 싸움질하는 것은 불필요하다"고 일축했다. 김씨는 "저는 예술가이고 일반 국민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우리 국민도 대단하지만, 위대한 나라를 만든 지도자들, 열 분의 대통령 모두 존경한다"고 밝혔다. 그는 "그런 마음으로 2014년 청남대의 역대 대통령 동상들을 완성했다"며 "그곳에는 김대중 대통령도, 노무현 대통령도 계시는데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두고 '해서는 된다, 안 된다'고 할 일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박정희 이승만의 업적이 과연 김대중 노무현보다 작은가?

일련의 논란은 표면적으로는 전직 대통령 기념 건축물과 기념사업을 둘러싼 시비로 비친다. 그러나 좌파진영 주도의 건국절과 친일파 논란 조장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면서 보다 본질적으로는 '정치적 반대자 죽이기'이자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 흔들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승만의 업적인 1948년 8월15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건국은 좌파진영의 '목소리'가 큰 역사학계·교육계 등에서 줄곧 공격받았다. 최근에는 정치권·언론·시민사회·역사학계의 좌파 인사들이 대대적으로 나서, '1948년 건국'을 입에 올리면 "친일 부역자" 내지는 "적폐"로 규정해버리는 행태가 확산되고 있다. 해마다 광복절 즈음에는 건국절을 '금기어'로 삼고 이에 반대하면 "청산 대상"으로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좌파진영이 지지한 김대중·노무현 역시 집권 시절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건국 시점으로 간주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어록이 남아 있다.

김대중은 취임 첫해인 1998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광복절 53주년 기념일이자 대한민국 정부수립 50주년"을 거론한 뒤 "대한민국 건국 50년사(史)"라는 용어를 썼다. 그는 또 "'국민의 정부'가 '제2의 건국'을 통해 추구할 철학과 원리, 그리고 총체적 개혁의 미래상을 국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이른바 '제2의 건국' 추진에 앞서 제1의 건국 50주년을 인정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노무현도 집권 직후인 2003년 "58년 전 오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일본 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됐다. 빼앗겼던 나라와 자유를 되찾았다. 3년 후에는 민주공화국을 세웠다"고 말했다. 2007년에는 "62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일본제국주의의 압제에서 해방됐다. 그리고 3년 뒤 이날, 나라를 건설했다"면서 '1948년 대한민국 건국'을 인정하는 광복절 축사를 남긴 바 있다. 노무현은 특히 "우리가 자유와 독립을 마음껏 누리고 사는 대한민국을 만들었다"고 말해 북한과 대조되는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체제를 강조했다.

이런 두 전직 대통령의 1948년 건국 인정 발언에도, 좌파 진영은 그 해석을 두고 '왜곡됐다'고 반발하거나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우파 공격을 지속했다. 김대중의 3남으로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사법처리된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은 2016년 8월18일 CBS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그 두 분 대통령이 건국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같은 단어도 누가 어떤 의도를 갖고 쓰느냐에 따라 조금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좌파 진영의 원로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낸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는 작년 7월말 한 언론 인터뷰에서 "오늘날 건국절 운운하는 것은 이승만의 분단주의 연장"이라고 했다. 강 교수는 박정희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 경제성장 성과에 대해서도 "어느 한 정권 때문이 아니라 전후 복구 과정에서 으레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치부한 뒤 "독재정권 미화 논거로 삼는 건 역사적으로 잘못"이라고 강변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모두 빛과 그늘이 있다. 이승만·박정희의 장기 집권과 독재 논란이 비판받을 소지가 적지 않은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광복 후 혼란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을 출범시킨 '건국의 공로', 김일성 공산주의 정권의 남침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켜낸 '호국의 공로', 오랜 빈곤의 사슬을 끊어내고 빠른 시일 안에 세계가 경탄하는 기적적 경제성장을 일궈낸 '산업화와 근대화의 공로'도 함께 보지 않으면 안 된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공과를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업적이 과오보다 훨씬 크다고 볼 수 있다. 긴 눈에서 한국의 역사를 살펴볼 때 과연 김대중과 노무현의 공로가 이승만-박정희보다 큰지도 의문이다. 더구나 이승만과 박정희를 심하게 매도하는 사람들일수록 두 사람과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독재와 폭정으로 주민을 억압하고 굶겨죽인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북한 3대 세습 전체주의 정권 비판에는 소극적이라는 점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김대중-노무현 기념은 별다른 차질 없이 이뤄지면서 이승만-박정희 기념은 어려움을 겪는 대한민국은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

조준경 기자 calebcao@pennmike.com
한기호 기자 rlghdlfqjs@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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