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무력 강화로 역내 패권국 지위 노려”

북한이 핵무기 보유수를 크게 늘려 역내 패권국이 되려는 목표를 추진 중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왔다. 북한의 핵무기가 이미 자위적 수단을 넘어섰다는 분석은 워싱턴에서 널리 공감을 얻고 있다고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지적했다.

북한은 그동안 핵무기 개발은 미국 등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한 방어용 수단이라고 강조했다. 공격용이 아닌 ‘억제용’이며 자국에 대한 미국 등의 개입을 피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수동적인 측면을 부각해온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 7월 27일 전국노병대회에 참석해 자위적 핵 억제력으로 북한의 안전과 미래가 담보된다고 밝혔다. 그보다 앞서 박춘일 이집트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2016년 1월 외국이 북한의 주권을 침해할 때 이를 억제하는 목적 이외에는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무기 개발을 ‘억제용’으로 한정했다.

그러나 미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의 선제공격을 막기 위해 핵무기 개발을 지속한다는 논리는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VOA에 “1953년 이래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기 어려웠던 것은 북한의 핵무기 때문이 아니라 서울을 직접 위협하는 재래식 무기 때문이었다”며 북한이 1차 핵 위기 당시 미국의 정밀 타격을 피한 것도 수도권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북한의 장사정포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넷 연구원은 “북한은 50~100개 사이로 추정되는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고, ‘억제용’를 위해서라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며 “실제 목적은 지역을 지배하기 위해 강압적 의지를 관철할 수 있는 ‘역내 패권국(regional hegemon)’이 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북한이 심각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200~300개의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목표를 추진 중이라며 그런 수준의 핵 역량을 갖춰야 주변국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역내에서 마치 ‘고구려 왕조’와 같은 지위를 꿈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VOA는 베넷 박사가 제시한 목표로 제시한 200~300개 핵무기는 중국의 핵탄두 보유 숫자에 맞먹는 수치다. 미 국방부는 지난 1일 의회에 제출한 중국 군사력 연례 보고서에서 “현재 200개 초반 수준으로 추정되는 중국의 핵탄두 보유량이 중국의 핵전력 확장과 현대화에 따라 앞으로 10년 동안 최소 두 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베넷 박사는 “북한 정권이 엄청난 재원을 투자하고 온갖 내부적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핵무기 보유량을 늘리는 것은 ‘억제력’ 확보에 그치지 않고 미 본토 위협을 통한 한미동맹 파기 등을 겨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핵무력 강화를 통해 지역 패권국 지위를 노리는 중요한 이유로 ‘중국 변수’를 들었다. 역사적으로 북한의 적은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며, 북핵은 ‘중국 견제용’ 성격도 강하다고 분석했다. 북한은 세계 패권국을 노리는 중국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을 피하려고 하며 핵무기의 제한적 사용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을 중국의 영향력을 줄이는 유일한 방안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베넷 연구원은 중국의 압박은 느낀 한국이 코로나19 발생 초기에 중국인의 입국을 막지 못했고,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 배치 때문에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보복을 당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북한은 이런 한중관계의 불균형을 교훈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을 미국에 대항하는 유용한 카드로 활용해온 중국이 언제든 북한에 대한 태도를 바꿀 수 있는 만큼 북한은 핵 역량 강화를 통해 한국이 중국에 당한 수모를 답습하지 않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무기가 자위적 억제력이라는 수동적인 개념을 벗어나 훨씬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평가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VOA는 전했다.

수미 테리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연구원은 VOA에 “북핵 프로그램은 미국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한 목적을 넘어선다”며 “결국 비공인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아 체제보장은 물론 경제적 지원까지 받았던 파키스탄을 롤모델로 삼고 있다”고 했다.

미 중앙정보국(CIA)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에서 한반도 문제를 담당했던 테리 연구원은 “북한의 최종적 관심사는 옛 소련과 같은 핵 강국으로 부상해 미국과 대등한 위치에서 군축 협상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북한은 중국, 러시아, 미국과 경쟁할 수 없다는 점을 자각하고 있지만 미국을 협상에 임하게 할 정도의 핵 무력 국가로 인정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테리 연구원은 “북한은 무시할 수 없는 강국으로 간주되고 싶어한다”며 “북한이 협상에 복귀하고자 한다면 이는 핵협상이 아니라 핵 군축 협상을 하려는 것”이라고 했다.

양연희 기자 yeonh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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