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 칼럼] 「미사일지침」 개정의 전략적 의미 살려야
[김태우 칼럼] 「미사일지침」 개정의 전략적 의미 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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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미사일지침 4차 개정...40년 만에 '고체연료 사용 제한' 삭제
"이제 미사일지침 때문에 북한 미사일 대응하는 미사일 개발할 수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제 남은 것은 남북 간 미사일 격차 좁히려는 정부의 의지와 북한의 WMD 위협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눈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

지난 7월 28일 김현종 국가안보실 제2차장이 한미 미사일지침(Missile Guidelines)의 4차 개정 소식을 전했다. 한국의 우주발사체에 고체연료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이 삭제되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고체연료는 액체연료에 비해 구조가 간단하고 제작비가 간단하여 인공위성을 손쉽게 발사할 수 있고 군사위성 발사도 더 용이해진다.

1979년 ‘한미 미사일각서(Missile Accord)’를 통해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개발에 재갈을 물리기 시작한 것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장 야망을 잠재우기 위함이었지만, 이후에도 미국은 ‘대량살상무기 반확산(WMD Counter-proliferation)’ 정책의 일환으로 핵 및 미사일의 수평적 확산을 억제하는 기조를 지속해왔다. 그럼에도 미사일 개발에 가해진 제약을 완화하기 위한 한국 정부와 전문가들의 노력도 줄기차게 이어졌고, 그렇게 하여 4차 개정까지 이루어진 것은 40년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그렇게 하여 한국이 보다 자유롭게 미사일을 개발·운용할 수 있게 된 것은 더디지만 고무적인 변화이며 대북 억제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정부가 의지를 가진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박정희를 빼고는 미사일지침을 말할 수 없다

박정희에게 있어 1960년대와 1970년대는 가난을 떨치고 일어서기 위해 몸부림을 치던 시기인데다 1968년 1월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 사건,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등 북한의 무력도발로 인해 뒤숭숭했던 시련의 시대였다. 그 와중에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고 미 7사단이 철수하자 한국인들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그것이 박 대통령이 핵개발을 결심한 배경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면서 박 대통령은 1975년 8월 제임스 슐레징거(James Schlesinger) 미 국방장관에게 핵개발 포기를 약속해 주었고, 프랑스의 기술로 건설하려 했던 재처리공장도 포기했다. 그럼에도 언젠가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야심은 1979년 김재규의 흉탄에 서거할 때까지 사그러들지 않았고, 미사일 개발에 대한 열정도 식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지시로 1971년부터 미사일 개발에 착수했던 국방과학연구소(ADD)는 “1976년말까지 지대지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라”는 박정희의 추상같은 명령을 받고 안 해본 것이 없었다. 미국의 나이키 허귤리스(NH)를 베끼기도 했고, 미국이 하푼 미사일의 판매를 거부하자 프랑스의 엑조세(MM-38)를 구입했다. 1978년 9월 26일 충남 안흥 해변에서 사거리 200km의 2단 고체연료 미사일 ‘백곰(NHK-1)’의 시험발사에 성공했을 때 연구원들은 얼싸안았고 박 대통령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았다. 그러자 미국은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를 180km로 그리고 탄두중량을 500kg로 제한하라고 압박했다. 1979년 7월 박 정부는 노재현 국방장관을 시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겠다는 서한을 존 워컴 주한미군 사령관에게 보냈다. 그것이 한미 미사일각서였다. 박정희는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는 대가로 한미연합사 창설(1978)을 얻어내고 무기기술들을 이전받았다. 박 대통령 서거 후 집권한 전두환 정부가 핵·미사일 사업들을 폐지하고 관련 인력을 해산한 것은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제1차 개정, 미사일 주권 향한 첫걸음

한국군과 안보전문가들에게 있어 1990년대 초반 북한의 핵 및 미사일 개발이 국제문제로 부상한 이후에도 한국의 농축과 재처리를 금지하고 미사일 개발에 제약을 가하는 미국의 반확산 정책은 원성(怨聲)의 대상이었다. 필자가 ‘평화적 핵주권(핵무기 자체를 제외한 핵무장 잠재력 확보)’과 ‘미사일 주권(미사일 개발 관련 모든 제약 해제)’을 주장하고 나섰던 것도 이 무렵이었다. 미사일 문제와 관련해서 한국 정부도 1995년부터 미사일각서 개정을 위한 대미 협상을 시작했지만, 워싱턴의 입장은 강경했다. 그러다가 2001년 1월 17일에 발표된 제1차 개정으로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300km로 연장되었다.

필자에게 있어 미사일지침 개정은 남달리 특별한 소식이었다. 필자는 1995년 10월 어느날 학계 선배의 권유로 동교동 서교호텔에서 당시 야당 총재였던 김대중 씨를 만난 자문해준 적이 있었다. 필자는 한국의 평화적 핵주권 확보와 미사일의 사거리 연장를 강력하게 주장했고 김 총재는 짧지 않은 설명을 끝까지 경청하고는 실행을 약속했었다. 집권 후 김 대통령은 1999년 7월 방미에서 클린턴에게 500km를 요구했고 결국 300km로 낙착되었다. 제1차 개정은 당연히 당시 청와대나 외교부가 이룬 성과였을 것이지만, 필자도 잠시나마 서교호텔에서의 대화를 회상할 수 있었다. 개정 내용은 기대에 못미쳤지만, 미사일 주권을 향한 첫걸음을 뗐다는 의미는 적지 않았다.

제2차 개정, 미사일주권의 ‘상당한 회복’

2012년 10월 7일의 제2차 개정으로 탄도미사일의 사거리는 800km로 늘어났고 500kg으로 제한되어 있던 탄두중량에도 사거리와 탄두중량을 교환(trade-off)하는 방식의 융통성이 부여되었다. 즉 사거리가 800km보다 짧은 미사일에는 탄두중량을 반비례적으로 늘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무인항공기(UAV)의 경우 항속거리가 300km이하에서는 탑재중량이 무제한이고 300km가 넘는 경우에도 탑재중량을 500kg에서 2.5톤으로 늘렸으며, 탑재중량이 2.5톤 이내는 항속거리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순항 미사일의 경우에는 탑재중량 500kg 이하시 사거리는 무제한이고 사거리가 300km 이하면 탄두중량이 무제한인 기존 내용에서 변화가 없었다. 항속거리 800km 이상인 우주발사체의 고체연료 사용은 금지된 상태로 남았다.

제2차 개정 직후에도 필자는 많은 것을 회상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외교안보자문교수의 일원이었던 필자는 2009년 한 자문교수 조찬회의에서 미사일주권을 거론하면서 800Km로의 연장을 미국에 요구할 것을 건의했다. “왜 하필 800km인가”라는 대통령의 질문에 “북한 지역의 대부분을 커버하면서도 중국과 일본을 자극하지 않는 거리”라고 답했다. 어쨌든 이 대통령은 재임 중에 오바마 대통령에게 미사일지침의 개정을 반복적으로 요구하여 제2차 개정을 얻어냈고 실무 책임자인 천영우 당시 외교안보수석과 김태효 전략기획관이 맹활약을 했다.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양국 대통령 간의 친밀도가 큰 역할을 했다는 후문도 있었다. 나중에 필자가 만난 코사(Ralph Cossa) 박사는 ‘두 대통령 간의 의기투합(personal chemistry shared by the two Presidents)이 만들어낸 결과‘라고 했다. 2차 개정으로 한국은 미사일에 채워진 족쇄들 중 상당부분을 걷어냈다.

3,4차 개정의 전략적 의미도 적지 않다

2017년 11월 17일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동안 개최된 한미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제3차 개정으로 탄도미사일의 탄두중량 제한이 완전히 해제되었다. 북한의 연이은 미사일 시험발사가 개정 협의를 재촉하는 촉매였다. 당시 북한은 매년 20차례 내외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강했었고, 2017년에만 준중거리 화성-12호(5월 14일, 8월 29일), 대륙간탄도탄급 화성-14호(7월 4일, 7월 28일)와 화성-15호(11월 29일) 등을 발사했다. 사거리가 13,000km로 추정되는 화성-15호 발사 후 북한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미 본토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 완성이라는 역사적 대업을 완수했다”고 기염을 토했다. 3차 개정과 함께 한국군은 2019년 사거리 800km에 탄두중량이 2톤에 달하는 현무-4 미사일을 개발했고, 2020년 3월 24일 첫 시험발사를 실시했다.

북한은 한국의 미사일에 채워진 족쇄들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불만을 표시했다. 4차 개정 후 우리민족끼리TV, 메아리 등 북한의 선전매체들은 “대결 흉심을 드러낸 것”으로 비난했고, 3차 개정 직후에도 조선중앙통신은 “상전에게 매달려 미사일 탄두중량을 늘리는 데서 살길을 열어보겠다니 가소롭다”는 논평을 냈었다. 하지만, 북한이 일찍부터 미사일 강대국의 길을 걸으면서 한국과의 ‘미사일 격차’는 20년이 넘는다. 북한의 대남 비방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궤변일 뿐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의지

네 차례의 걸친 미사일지침의 개정으로 한국군은 미사일의 개발과 운용에 상당한 융통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는 미사일지침 때문에 북 미사일에 대응하는 미사일을 개발할 수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게 되었다. 800km는 북한의 대부분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다. 탄두중량 500kg 이내에서 사거리가 무제한인 순항미사일의 경우 500kg면 그다지 부족하지 않은 탄두중량이다. 현존하는 최대 중량급 무인기인 글로벌호크의 탑재중량이 2.3톤인 점을 감안하면 탑재중량 한도가 2.5톤인 한국의 무인기도 거의 제약없이 방어·공격용 무기들을 실을 수 있다. 4차 개정으로 군사위성 발사도 좀 더 용이하게 되었다. 주변 강대국들이 수많은 군사위성들을 운용하고 있는 중에도 한국은 오랫동안 군사위성을 가지지 못했다. 지난 7월 21일 군사 전용 통신위성 '아나시스(Anasis)-2호'를 발사함으로써 ‘군사위성 부재국’이라는 딱지를 떠어냈지만 군사위성의 꽃인 정찰위성은 여전히 부재하다. 때문에 필자는 더 이상 ‘미사일주권’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려 한다. 남은 제약들이 있지만 굳이 그런 표현이 필요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렇듯 미사일지침의 개정이 가지는 전략적 의미는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제 더해져야 할 것은 남북간 미사일 격차를 좁히겠다는 정부의 의지와 북한 대량살무기 위협의 전체를 조망하는 눈이다. 미사일은 핵무기를 투사하는 투발수단일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문재인 정부가 핵추진 잠수함, 경항모 등 첨단무기의 구매를 시사하면서 미사일지침의 3, 4차 개정까지 이루어낸 것에 다른 정치적 계산이 없었기를 기원한다. 그것이 북핵 및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지키려는 의지의 발로였기를 바라며, 전작권의 조기 분리와 축소지향적 국방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를 끌어내려는 정치적 계산은 개입하지 않았던 것으로 믿고 싶다.

김태우 객원 칼럼니스트(전 통일연구원장·전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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