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 8월 22일. 대한제국은 일본의 강압에 못 이겨 한일합병조약이라는 것을 체결했고 1주일 후인 29일 그 효력이 발효되어 우리나라는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일제의 강권통치로부터 벗어나는데 만 35년이 걸렸다. 그래서 8월 29일은 우리 민족이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국치일'인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 인가. 정부측에서도 민간에서도 8.29 그 날의 비통함을 되새기며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 날 수 밖에 없었던가를 냉정하게 반추함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만전을 다해야 한다는 움직임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너무도 자신만만한 나라가 되었기 때문에 망국의 기억쯤은 묻어버려도 되는 것인가? 하지만 우리의 좌파 정권은 아직도 친일파 청산이 마치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중대한 현안인양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는 우리 대한민국을 자유민주공화국으로 독립시켜 발전의 토대를 만든 이승만 건국대통령과 세계 공산주의의 본산이던 소련과 중공의 지원을 약속 받은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을 방어해 낸 백선엽 장군까지 친일파로 매도하려는 광복회장 같은 인간들은 다 어디에 숨어서 국치일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말 한마디 없는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동북아에 대한 열강들의 세력각축의 소용돌이 속에서 망해가는 청국의 부속 국가와도 같았던 우리의 국세는 너무도 빈약했다. 조정은 곤궁에 뼈져 허덕이던 민심을 추스를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뒤늦게 개혁에 착수했던 우국지사들의 노력으로도 나라를 구할 길이 없었다. 국가라는 테두리는 깨어져도 민족만은 살려야 훗날을 기약할 수 있지 않는가 하는 것이 훗날 친일역적으로 몰릴 이완용 같은 사람들의 주장이었고 끝까지 합병에 저항한 인물들은 자결을 하거나 세상을 등지고 초야에 묻히거나 감옥에 갇히고 극히 소수는 망명길에 오르는 세가지 길 밖에 없었다.

한반도의 백성들 절대다수는 일본인들이 만들어 놓는 식민지 경영체제에 굴욕을 참으며 적응하여 살길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의 세력이 날로 팽창하던 20년대 30년대에는 민족적 정체성을 완전히 상실하지 않기 위한 문화와 교육계몽사업을 어느 정도 벌일 수 있었지만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시작된 후로는 일본의 압박은 더욱 치열해졌다. 민족지도자로서 다소나마 이름이 알려졌던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일본 군국주의 정책에 대한 지지와 협조를 들어내지 않고는살아 남을 수가 없었다. 절대 다수의 ‘조선’의 얼을 가진 사람들에게 일제치하에서 ‘친일’과 ‘반일’은 선택사항이 아니었다. 살아 남기 위해서는 번갈아 가며 갈아입거나, 혹은 한꺼번에 껴입어야 하는, 안과 밖이 색이 다른 두 벌의 옷과도 같은 것이었다. 물론 사리사욕에 어두웠던 악질 친일분자들이 더러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친일파로 낙인 찍힌 우리민족 구성원 절대 다수는 정신적으로나 육신으로나 고통스런 삶을 산 세대로서 연민의 대상은 될 망정 같은 민족 사이에서 증오나 경멸의 대상이 될 이유는 없었다. 그들 보다 도덕적으로 월등하여 강건한 항일 자세를 지키다가 심한 수난을 당했던 사람들을 그렇지 않고 일제에 적응하며 평범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특별히 기리고 감사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것이 “보훈” 제도이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항일투사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제도마저 좌우의 이념갈등의 희생물이 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남한의 반공세력에 타격을 입히기 위해서는 그들을 “반공”이라고 공격할 수는 없고 “친일”이라는 굴레를 씌우는 것이 반일감정이 남아있던 대중을 선동하는데 편리하다 함을 이미 해방직후부터 깨닫고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하지만 일제에서 해방 된지 70년이 넘어 전 세계적으로 너무도 많은 변화가 일어난 지금까지도 일본에게 과거의 죄를 묻고 친일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명분과 실익을 가져다 주는가? 남들은 앞을 보고 거침없이 나아가는데 우리는 뒤 돌아보기에만 바쁘다가 오히려 따라 잡기 어려우리 만치 남에게 뒤쳐진다면 새로운 형태로 다시 망국의 설음을 맛보게 될 위험은 없는가?

국치일을 마음속에 되새겨야 하는 것은 과거에 되 잡히지 않고 다시는 그런 쓰라림을 맛보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과거에 우리에게 아픔을 주었던 일본을 계속 배척하여 세계주요 국가이며 이제는 이념상 우호국인 이웃 일본과의 관계를 계속 적대적으로 방치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상호이익을 가져오는 적극적 교류와 협력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을 극대화 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이익에 더 도움이 되는가? 망국의 상황까지 치달았던 구 한말의 국제관계의 난맥상이 다시 우리 한반도를 둘러싸고 빚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지 눈을 똑바로 떠야 할 때이다.

이인호 객원 칼럼니스트(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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