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심 “표현의 자유 안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것 아냐”
“법률이 정치적 입장 규정할 수 없다” 1심 판단 뒤집어
고영주 측, 즉각 상고 의사...“청와대 하명 판결"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고영주(71)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후 법정을 나서고 있다. 2020.08.27/촬영=안덕관 기자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고 발언해 문재인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고영주(71)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2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 최한돈 부장판사는 27일 오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고 전 이사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최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후신(後身)격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소위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추가 조사를 거부하자, 사직서를 제출하며 반발했었다.

앞서 공안검사 출신의 고 전 이사장은 18대 대선 직후인 2013년 1월 보수단체 신년하례회에서 “문재인은 참여정부 시절 민정수석으로 근무하면서 검사장 인사와 관련해 불이익을 줬고, 부림사건의 변호인으로서 공산주의자”라며 “이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발언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문 대통령은 2015년 9월 고 전 이사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작년 9월 “허위 사실을 퍼뜨려 문 대통령 명예를 훼손했다”며 그를 불구속 기소했다.

1심은 고 전 이사장의‘공산주의자’ 발언이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해 무죄를 선고했다. 당시 1심은 “정치적 입장이나 주장은 공론의 장에서 상호 논박을 거쳐 평가되어야지 형사 법정에서 규정짓는 것은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고 밝혔다.

2심은 이 판단을 뒤집었다. 최 판사는 “고 전 이사장은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논증했으므로 결국 진위를 가릴 정도로 구체화했다”며 “결국 문 대통령이 공산주의자이고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은 부림사건 피해자들로부터 들은 사실을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사실 적시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고 전 이사장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단했다. 이는 인사상 불평과 불만에 지나지 않아 명예훼손이라고 할 만큼 사실적시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고 전 이사장 발언이 허위 사실에 해당하는지와 문 대통령의 사회적 평가를 저해했는지 여부,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유죄로 봤다.

재판부는 “동족상잔과 이념갈등 등을 겪어온 우리 사회에 비춰보면 공산주의자라는 표현은 다른 어떤 표현보다 문 대통령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하는 표현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며 “발언 내용의 중대성과 문 대통령 명예훼손 결과, 사회 전반에 미치는 이념 간 갈등상황을 비춰보면 표현의 자유 안의 범위에서 적법하게 이뤄진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선고 직후 고 전 이사장은 펜앤드마이크에 “사법부의 판결이 아닌 청와대의 하명(下命) 판결”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대통령 대리인이 재판부에 신속한 판결을 내리라고 주문하자 재판부가 고민도 없이 판결해버렸다”며 “결국 대통령 지위에 휘둘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대법원이 문 대통령 입맛에 맞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지만 표현의 자유는 넓게 인정한다"며 "당연히 상고한다"고 했다.

안덕관 기자 adk2@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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