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한국 언론은 수없이 많은 허위와 과장, 마녀 사냥식 선동과 선정적 보도를 쏟아냈다. 이 정도의 집단적 거짓보도가 기승을 부린 사례는 한국 언론 역사상 전례를 찾기 어렵다. 내용도 확인되지 않은 무차별적 의혹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몇몇 인터넷 매체와 시사잡지, 1인 방송 등을 제외하면 신문과 방송, 메이저와 마이너 매체의 구별도 없었다. 거의 모든 언론이 공범이다 보니 명백히 잘못된 보도에 대한 상호 감시와 비판도 존재하지 않았다. 문제가 드러난 뒤에도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 언론과 달리 제대로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모습도 눈에 띄지 않았다. 박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공과에 대한 객관적 평가나 비판과는 별개로 지난 탄핵 과정에서 나타난 한국 언론의 광기에 가까운 문제성 보도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들을 신문과 방송으로 나눠 두 차례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여러 신문은 사실로 확인되지 않거나 나중에 오보로 밝혀진 '카더라' 수준의 내용을 기정사실로 예단하면서 국민의 분노를 부추겼다. ‘진실이든 아니든, 어차피 잘못을 한 만큼 무리하게 '지르는' 보도도 무방하다.’라는 왜곡된 인식이 팽배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난 중요한 오류나 허위 보도에 제대로 책임지거나 사과한 언론사는 찾기 힘들었다. 특히 정책 판단에 대한 엄정한 판단보다는 대통령이 약물에 취해 비정상적 정신 상태라는 식의 보도나 관음증에 가까운 식의 무책임한 저질 보도와 논평으로 일반 국민의 분노를 의도적으로 부추긴 사례도 많았다.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통과된지 1년이 지난 작년 12월 일본의 유명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을 번역해 출간한 '여혐의 희생자,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획, 편집한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5년마다 정권이 바뀌는 자유민주주의 선진 국가에서 임기가 불과 1년 남은 현직 대통령을 강제로 끌어내린다는 시대착오적 기획이 성공한 것은 거의 전적으로 (섹스와 연관된) 포르노그라피성 스캔들 덕분이었다"며 '소셜 미디어의 가공할 만한 확장력과 정통 언론의 무책임한 공모'를 질타했다. 상당수 신문은 증거가 부족한 발언과 의혹마저 여과 없이 보도했고 이미 자신들이 '국정 농단'이라고 규정한 결론에 끼워맞춘 기사와 논평을 쏟아냈다. 언론이 원하는 식의 팩트가 나오지 않으면, 이를 '아직 밝혀지지 않은 거짓말'로 몰아붙이기도 했다. 상당수 신문과 언론인들의 편견과 독선, 무책임과 무지가 남긴 폐해와 후유증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신문을 비롯한 한국 언론 전반에 대한 국민의 불신감이 커졌고 특히 주류 신문 독자들의 대거 이탈로 이어지면서 해당 언론사들에 부메랑으로 돌아갔다.

●쏟아진 오보… 그리고 사과하지도 책임지지도 않는 언론

중앙일보 이철재 기자는 2016년 10월 27일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 2007년 미 대사관 외교전문>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하지만 국내 소문에 대해서 쓴 내용이 미국 대사관이 직접 최태민을 라스푸틴이라고 평가한 것처럼 오역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당시 이와 같은 보도는 전후 설명 없이 <기밀 외교문서에서, 美대사관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라는 식의 제목으로 확산됐다. 그러나 ‘최태민=라스푸틴’이라는 보도가 루머를 교모하게 왜곡보도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중앙일보는 “미국은 ‘비선 실세’ 의혹을 받고 있는 최순실(63ㆍ여ㆍ최서원으로 개명)씨의 부친 최태민씨를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교전문은 해킹된 뒤 폭로전문 사이트인 ‘위키리크스’에 실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미국 대사관이 직접 평가한 것이 아니라 한국의 루머를 전한 것이었다. 재미 작가로 인기높은 영어교재 저술가인 조화유 칼럼니스트는 2016년 11월 1일 “중앙일보가 외부 주장이나 소문을 대사관 평가로 오해하게 보도했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는 별다른 설명 없이 문제의 '최태민=라스푸틴' 기사를 슬그머니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는 미주 중앙일보와 JTBC 링크만 남아있다.

주한 미국 대사관이 촛불집회 ‘1분 소등 행사’에 동참했다는 잘못된 내용이 탄핵 분위기를 부추기듯 확산 보도된 경우도 있다. 이는 다음날 미 대사관에 의해 직접 반박됐으나 제대로 정정하는 언론사는 없었다.

중앙일보는 2016년 12월 4일, 인터넷판에 <美대사관도 촛불 지지?…'1분 소등' 동참 눈길>이라는 제목의 기사에 “3일 광화문에서 열린 5차 촛불집회 중 1분 소등 행사에 주한미국대사관도 동참해 눈길을 끌었다.”라고 보도했다. 또 “바로 옆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환하게 불을 밝힌 것과 대비됐다”라며 대비된 장면을 부각했다. 중앙일보 계열 종합편성채널인 JTBC도 이 내용을 보도하면서 “이 장면을 두고 누리꾼들은 "미국조차 박근혜 정권을 포기한 것"이란 해석을 내놓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보도에 대해 일부 누리꾼은 ‘나라 망신이다’ ‘미국조차 촛불시위와 함께한다’라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 대사관 1분 소등’ 소식은 중앙일보 유길용 기자가 12월 4일 새벽 가장 먼저 보도한 것으로 알려졌다.(현재 중앙일보 기사는 네이버를 통해서는 검색되지 않았다.) 이 보도에 이어 다른 신문사들도 지면이나 인터넷을 통해 같은 내용을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4일 인터넷판에서 “3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5차 촛불집회 중 1분 소등 행사에 주한 미국대사관도 참여했다고 외교 소식통이 4일 전했다.”라며 외교소식통의 이름을 빌리기도 했다.

그러나 주한 미국 대사관은 5일 이들 보도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라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미 대사관의 부인 이후에도 자신들의 오보를 제대로 바로잡은 신문사는 찾기 어려웠다. 대부분 인터넷판에서 ‘미대사관이 참여하지 않았다고 한다’는 짧은 보도만 올라왔다. 사람들에게 실제로 정보가 정정됐는지는 관심받지 못했다. 중앙일보는 전날(6면)에 비해 초라한 위치인 간추린 뉴스(18면)에 간략히 보도했고, 이조차 보도하지 않은 매체가 다수였다. 자신들이 원하는 진실을 위해서라면 오보도, 실수도 무방하다는 왜곡된 인식을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저질 황색 저널리즘...'아니면 말고' 마녀사냥식 의혹 쏟아내기

탄핵 정국에서 상당수 신문은 ‘누가 더 의혹제기와 조롱ㆍ인신공격을 잘하는지’ 경쟁이라도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성형과 미용, 약의 노예, 꼭두각시, 주술과 드라마에 빠진 한심한 여자라는 가공된 이미지를 부추기는 기사가 쏟아졌다. 사실이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을 홍수처럼 보도하며 국민의 분노를 부추기는 모습이 만연했다. 실제로 상당수 국민이 이런 왜곡된 보도의 영향에서 지금까지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2016년 12월 7일 <세월호 가라앉을 때 올림머리 하느라 90분 날렸다> 보도

「세월호가 가라앉던 2014년 4월16일 박근혜 대통령은 승객 구조 대책을 마련하는 대신 강남의 유명 미용사를 청와대로 불러 ‘올림머리’를 하는 데 90분 이상을 허비한 것으로 6일 확인됐다. 의문의 7시간 가운데 1시간30분은 밝혀진 셈이나, 나머지 5시간30분 동안은 무엇을 했는지 여전히 의문이다.
<한겨레>가 청와대와 미용업계의 관계자를 복수로 만나 들은 얘기를 종합하면, (중략) 당시 상황을 아는 한 관계자는 “이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머리를 손질하는 데 90분가량이 걸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청와대 “당사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20여분”. 윤전추 1월 5일 헌재에서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에 이미 간단한 메이크업...90분 들 이유 없어”」

위 보도를 살펴보면 청와대 반박내용을 싣기도 했지만, 당시 상황을 아는 한 관계자의 말을 빌린 것만으로 상당히 단정 짓듯이 제목을 실었다. 아직 사실인지 아닌지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부분이고,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기 힘든 상황임에도 제목은 무척 자극적이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한겨레에 의해 확인된 사항을 청와대가 변명하는 것이라고 해석될 여지도 있다. 이 보도를 한 한겨레 하어영 기자는 2016년 10월 12일부터 12월 말까지 네이버 검색 기준으로 이른바 '단독'이라는 표시를 붙인 14개의 기사에 이름을 올렸다.

각 신문이 앞다투어 '박근혜-최순실 마녀사냥'에 나서던 시점에는 이른바 '단독 보도'가 하루에 10개 이상씩 올라오기도 했다. 제목도 지극히 자극적이었다. 이들 보도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과 다르거나 현저히 과장된 것으로 드러났다.

많은 매체에서 편향적인 일부 사실에만 근거해 보도하며, 사건에 대해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진실인지 아닌지 불분명한 정보들이 당사자들이 아닌 익명 관계자ㆍ제3자의 입을 빌려 일방적으로 보도되며 우선적으로 믿어지는 양상도 보였다. 한 번 수용한 정보는 그 이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정정되기 힘든만큼, 불분명한 정보로 낙인찍는 방식의 보도는 신문사의 신뢰도에 영향을 주었다.

▲경향신문 2016년 11월 23일 <청와대 '태반' '백옥' 등 영양·미용 주사제 대량 구입> 보도 (인터넷 판 제목: 청와대, 국민 세금으로 비아그라까지 샀다)

「청와대가 일명 ‘태반주사’, ‘백옥주사’ 등이라고 불리는 영양·미용 주사제를 대량으로 구입한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구매목록에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 팔팔정도 포함돼 눈길을 끈다.
지난해 12월에는 남성 발기부전 치료제인 한국화이자제약의 비아그라를 60정 구매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비아그라는 원래 심혈관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실제로 심장질환 치료제로는 잘 쓰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이어 23일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이기도 하지만 고산병 치료제이기도 하다”며 “아프리카 순방시 고산병 치료를 위해 준비했는데 한 번도 안 써 그대로 있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5월25일부터 에티오피아, 우간다, 케냐 등 아프리카 3개국을 방문한 했는데, 이들 3개국은 아프리카의 대표적 고산국가여서 순방수행 직원들의 고산병 치료 용도로 구매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는 기사에 인용된 표현처럼 확실히 눈길을 끌었다. 여러 정황을 빌려 비아그라가 다른 의도(성적 관련)로 쓰인 것은 아닌지 상상하도록 부추겼고, 인터넷 상에서는 비아그라로 인해 성추문 등이 퍼지기도 했다. 이에 대해 독신여성 대통령에 대한 관음증 수준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당시 뚜렷한 근거 없이 국민의 분노를 부추긴 가십성 보도는 한 둘이 아니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실현되도록 도와준다’ 주술 미신 논란 ▲박 대통령 "혼이 비정상" ▲세월호 당일 청와대 굿판 ▲차움병원 ‘길라임’ 가명 논란 ▲최순득(최순실 언니) 대통령 동문설 ▲“최순실 아들 청와대 근무했다” ▲“사실. 비아그라 나오고, 마약 성분 나오고. 계속해서 더 나올 거거든요. 섹스 관련된 테이프가 나올 거에요”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확인되지 않은 온갖 소문의 진위를 바로잡아야 할 언론이 이런 책무를 하기는커녕 오히려 선동과 광기를 부추기는 모습이 줄을 이었다.

●촛불 집회는 띄우고 태극기 집회는 깎아내린 편파보도

대다수 신문은 대통령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시위를 적극 띄웠다. 실제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목을 단두대에 내건 끔찍한 장면과 이재용 삼성 부회장 등 한국 경제를 주도하는 주요 기업인들에 대한 인신모독적 '폭력과 야유' 등이 난무했지만 마치 평화적인 집회가 이뤄진 듯한 보도만이 줄을 이었다. 촛불 민심을 거스르면 '악'이라는 식의 인민재판적 보도도 많았다.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사실이 명백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현직 대통령을 임기 도중 끌어내리는 데는 거부감을 지닌 민심도 존재했지만 철저히 언론에서 외면당했다.

촛불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의 숫자 부풀리기도 경쟁적으로 이뤄졌다. 우파 정권 때마다 '공격 거리' 찾기에 열을 올린 좌파 성향 매체들이야 으레 그렇다 치더라도 2008년 광우병 난동 등에서 그래도 한국 사회의 중심을 지키는데 기여한 메이저 신문들도 탄핵 정국에서는 마찬가지였다. 실제 참석자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주최측 주장 촛불집회 참석자 수가 신문의 1면 머릿기사와 사설 제목으로 버젓이 등장하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촛불 집회 참석자 수가 태극기 집회 참석자 수를 밑돌자 촛불집회 누적 인원수(주최측 주장)를 환산해 '촛불집회=대한민국 민심'이라는 식으로 몰고 가는 양상도 눈에 띄었다.

 

<당시 '촛불 집회' 관련 조간 보도 양상 중 일부>

 

반대로 보수우파 성향 국민이 적극 참여한 태극기 집회는 언론에서 차가운 홀대를 받았다. 2016년 말과 2017년 초의 한겨울 태극기 집회에는 전현직 기업 고위 임직원과 예비역 군 장병, 대학 교수및 초중고교 교사들, 주요 대학및 고교 졸업 동기회, 개인사업이나 자영업을 하는 서민, 그동안 정치에 관심을 별로 갖지 않았던 가정주부 등 각계각층 국민이 대거 참여했다. 30년 전 전두환 정권의 호헌 결정에 반발해 각계 각층 국민이 거리로 나섰던 1987년 6월 항쟁에 적극 참여한 시민도 많았다. 이런데도 상당수 신문은 집회 참여자들을 대부분 '박사모' '친박 단체'인 듯이 몰아붙였고 심지어 '극우 세력'으로 깎아내리는 양상도 보였다. 촛불시위가 한창이던 때는 '촛불민심'만 부각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집회 참가자 수에서 태극기 민심이 촛불 민심을 압도하자 뒤늦게 양비론을 펴면서 자제를 요청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당시 '태극기 집회' 관련 조간 보도 양상 중 일부>

 

●핵심 독자층의 '신문 이탈' 불러온 문제성 칼럼들

일선 기자들이 쓰는 기사 외에도 간부급 언론인들의 글도 많은 논란과 비판을 받았다. 우파 정권 때마다 내내 흠집내기에 주력한 좌파 매체들이야 으레 그렇다 치더라도 특히 보수우파 성향 지식인이나 국민의 집중적인 비판을 받은 것은 저널리즘의 최소한의 기본을 외면하고 무리한 칼럼을 잇달아 쓴 주류 신문의 일부 언론인이었다. 김순덕 동아일보 논설주간(전 논설실장)과 이하경 중앙일보 주필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탄핵 정국에서 쏟아낸 칼럼들은 '대통령 비판' 등의 명분을 인정하더라도 저널리즘의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선 글이었고 박정자 명예교수가 지적한 '정통 언론의 무책임한 공모'의 전형적인 사례로 꼽힌다.

2016년 10월 31일 김순덕 칼럼 ‘丙申年 대통령제 시해 사건’의 일부 내용

「우리가 뽑은 대통령이 아니라… 한국판 라스푸틴의 딸...비선실세가 국정 주무른 나라… 측근비리로 끝나는 불행한 대통령...워싱턴포스트가 ‘기념비적 연설’이라고 언급한 2014년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마저 최순실이 손을 봤다니 표현만 다듬은 건지, 평화통일 구상까지 해준 건지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중략) 입안의 혀 같은 외교장관 있고 보좌진 수두룩한데 최순실한테 뭘 물어볼 만큼 백지상태란 말인가. 국민이 가장 분노하고 또 허탈해하는 것이 바로 이 점이다. 분명 박정희와 육영수의 딸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았는데 알고 보니 제정 러시아의 요승(妖僧) 라스푸틴에 비견되는 최태민의 딸이자 호스트바 마담 출신 남자와 반말하는 강남 여편네가 대통령 머리 꼭대기에 앉아 일일이 가르치며 국정을 주물렀다는 얘기다. (중략) 이름도 입에 올리기 고약한 병신년(丙申年) 2016년, 박 대통령과 최순실의 비선·부패·섹스 스캔들은 대통령제를 시해(弑害)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으면 한다.」

2017년 1월 23일 김순덕 칼럼 ‘박 대통령은 정말 피해자일지 모른다’의 일부 내용

「“박근혜 대통령이 부신기능저하증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맞느냐.” 국민의당 김경진 의원의 질문에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맞을 공산이 크다고 나는 본다. ‘만성피로 해결사 부신을 고치자’라는 저서로, 태반주사 등을 이용한 부신기능 치료로 이름난 의사가 김상만이어서다. (중략) 박 대통령은 믿었던 최순실에 의해 청와대 관저에 갇혀 산 피해자일지 모른다. 하긴 최순실 없는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게 없는 대통령을 보면 진짜 피해자는 국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블랙리스트 같은 건 알지도 못한다니, 혹시 졸피뎀 영향에 자신이 한 일을 기억도 못하는 게 아닌지 궁금하다.」

탄핵 정국에서 나온 일련의 '김순덕 칼럼'은 보수우파 신문의 주력 독자인 상당수 국민에게 영향력이 큰 재야 지식인들이 분노하고 잇달아 공개비판하는 '이례적 기록'을 세우면서 정통 주류신문인 동아일보의 이미지에 상처를 입혔다. '머리의 정직성'을 강조하는 박성현 전 뉴데일리 주필은 작년 10월 페이스북 글에서 "김순덕이 라스푸틴을 언급하며 박 대통령을 비판한 살벌한 칼럼은 최태민과의 연관성을 포르노적 차원에서 암시한 글이었다"며 "김순덕이 탄핵을 적극 지지했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라스푸틴을 끌어들인 수법은 악랄한 터치(접근법)였다"고 질타했다. 그는 또 "2016년 말 촛불집회에는 검은 갓,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흰 종이에 '저승사자'라고 써붙인 그로테스크한 군상들이 돌아다녔다"고 상기시킨 뒤 "촛불집회가 '밝고 생동감 있다'는 김순덕의 미적 판단은 완전히 비틀린 입맛"이라고 꼬집었다. 조우석 전 미디어펜 주필도 작년 3월 미디어펜 칼럼에서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조선-중앙이 연일 사실상의 내란 행위를 부추긴 미친 지면을 만들 때 동아일보가 부화뇌동하지 않고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충실해 중심만 잘 잡고 있었더라면 신문시장 1위 탈환도 가능했지만 1등 신문이 될 기회를 놓쳤다"며 "저질인데다 심한 정치적 편향을 지닌 김순덕의 글이 대표적으로 지면을 망가뜨렸다"고 비판했다.

중앙일보 이하경 주필의 칼럼도 자주 도마에 올랐다.

2017년 1월 9일 이하경 칼럼 ‘피비린내 나는 무도회와 세월호 7시간’의 일부 내용

「비극적 몰락의 전조 있었던 것이 박근혜와 니콜라이 2세 공통점...타인 고통을 공감 못해 상식 배반...모스크바에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와중에 황제는 무도회를 열고 황후와 춤을 추었다. 28세의 젊은 황제를 ‘사랑하는 아버지’로 부를 정도로 충성심이 강한 러시아 백성들이었지만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차르를 마음에서 추방했다. (중략) 1917년 2월혁명으로 폐위되고 다음해 볼셰비키에 의해 처형되는 니콜라이 2세의 운명은 21년 전 상식을 배반한 무도회에서 예고된 것이다...취임 1년여 만인 2014년 4월 16일 304명의 생명이 산 채로 수장(水葬)되는 세월호 참사를 만난 박근혜도 대통령답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비극의 심연(深淵)에 함께 가라앉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았다. 배가 침몰하는 동안에 집무실이 아닌 관저에 헬스트레이너 출신 행정관과 함께 있었고, 미용사를 불러 머리를 손질했고, 피부과 시술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대통령이 어디 있는지를 몰라 안보실장은 최초 상황보고서를 본관과 관저로 동시에 전달했다. 대통령은 오전 10시에 첫 보고를 받고 7시간 만에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나타나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고 물었다. 이미 배가 가라앉았다는 건 온 국민이 실시간으로 TV를 보고 알았는데 대통령 혼자만 몰랐다는 합리적 의심은 참사 1000일이 되도록 풀리지 않고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할 대통령직의 가치를 스스로 모욕한 비상식은 민생에 눈감은 차르와 닮은꼴이다. (중략) 내 마음속의 피비린내 나는 무도회와 세월호 7시간의 비인간성을 지워내는 속죄의 제의(祭儀)가 필요하다.」

2016년 11월 22일 이하경 칼럼 ‘‘촛불 시민’은 앙시앵 레짐 해체를 원한다’의 일부 내용

「유모차에 탄 아이부터 노년층까지 남녀노소의 열망은 국정 농단과 헌정 문란의 중심인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이라는 일차적 목표에 머물지 않고 있다. 모두가 주인이 되는 새로운 민주공화국의 수립을 요구하고 있다. 앙시앵 레짐을 해체한 18세기의 양대 시민혁명, 미국의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의 주체할 수 없는 에너지가 200여 년 뒤 대한민국의 광장에서 탄생한 시민의 ‘촛불 혁명’으로 부활하고 있다.
4차 촛불집회가 열린 19일은 기적의 날이다...가수 전인권은 “박사모가 때리면 그냥 맞아요”라고 호소했다. 전체적인 리더가 없었지만 모든 사람이 각자의 생각을 평등하게 드러내고 경청했다...이보다 더 명예롭게 비폭력 혁명을 수행하는 완전체가 존재할까...민심은 앙시앵 레짐을 전면적으로 대체할 새로운 시대의 틀을 요구하고 있다. ‘박근혜’라는 실패한 대통령을 만든 ‘박정희 패러다임’의 폐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시민들은 “다수의 의사로 운영되는 민주공화국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고 묻고 있다.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정치권 전체가 촛불 혁명의 심판 대상이 되고 공멸할 것이다.」

이에 대해 조우석 전 주필은 “이하경의 경우 말끝마다 혁명을 찬양해 우릴 실소케 했다. 촛불과 대통령 탄핵을 ‘즐거운 시민혁명’이자 ‘멋진 벨벳혁명’으로 포장했다.”며 "촛불이 대중광기와 폭민정치임이 드러난 지금 그저 가소로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주필의 이런 글들은 중앙일보 계열 종편인 JTBC 손석희 사장의 극심한 편향적 보도에 대한 반감과 맞물리면서 중앙일보는 우파성향 독자 격감과 심각한 재무적 악화라는 위기를 맞고 있다. 조우석은 탄핵 정국 당시 주류신문의 전반적인 보도 행태에 대해서도 "촛불민심에 가세해 나라 전체를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몰고 갔으며 지난 몇 개월 동안 그들이 벌였던 인민재판식 선동보도의 광기를 우리 모두는 기억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발행부수가 가장 많은 조선일보의 경우 탄핵 정국에서 문제성 칼럼을 둘러싼 논란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지만 '송희영 전 주필 사건'과 우병우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겨냥한 대형 오보에 이어 탄핵 관련 일반 기사및 이진동 TV조선 부장과 고영태를 둘러싼 잡음 후유증으로 주력 독자들의 대거 이탈이라는 어려움에 처했다.

언론의 왜곡된 보도 행태에 박근혜 정부가 상당한 빌미를 제공한 부분이 있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무리 정권 후반부였다고는 하지만 명백히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책임도 크다. 그러나 언론이 어떤 식의 변명을 하더라도 지난 '탄핵 정변' 당시 한국 언론을 뒤덮은 수많은 무책임한 보도들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미국이나 일본 신문이라면 해당 기자나 간부들의 중징계는 물론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정도의 심각한 왜곡 보도도 적지 않았다. '아니면 말고' 식의 허위-선동 보도를 기정사실로 단정짓고 보도한 뒤 잘못이 드러난 뒤에도 제대로 사과도 하지 않고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에 분노하는 국민은 지금도 많다. 특히 그들 중 상당수는 판촉 활동에 영향을 받지 않고 해당 신문들을 오랫동안 구독한 충성도 높은 핵심 독자층이었다. 지금이라도 탄핵 정국에서 쏟아낸 잘못된 보도 행태를 겸허히 인정하고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의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떨어져나간 독자들의 마음을 되돌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세영 기자 lsy215@pennmike.com
이슬기 기자 s.lee@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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