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역사에게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들...'남욱'이란 사람을 아세요?
그에게 무한한 신뢰와 믿음 보내는 최영섭 대령의 모습
1951년도부터 시작된 남욱 선생의 흔적들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할 보물을 받다
"그 때는 내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 죽음 각오하고 싸울 수 있었어. 어떻게 세운 나란데"

객원 칼럼니스트
객원 칼럼니스트

필자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있게 만든 결정적 전투인 ‘대한해협 해전’에 대해 알게 된 것은 6년 전의 일이다.

대한민국의 험난했던 그 때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그 이야기는 필자를 사로잡았고, 육군의 역사로 기록된 군역사에 가려진 이 해전은 반드시 알려져야 된다는 생각에 시나리오 작업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영화로 만들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주인공을 누구로 할지 수많은 인물들을 탐색했고, 멤버들은 대부분 이승만 대통령과 손원일 제독을 권했지만 필자가 선택한 인물은 당시 갑판장이었고 훗날 백두산함의 함장까지 지내셨던 ‘최영섭’ 대령이었다.

그렇게 그를 주인공으로 시나리오를 작업했지만 최영섭 대령을 만나게 된 것은 6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올해 6.25전쟁 70주년 기념 문화제에서였다.

연세가 93세셨지만 힘이 있는 목소리와 그 수많은 자료들을 보여주면서 이야기에 힘이 있는 그 분을 보면서 내 선택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확인했고, 그 분과 미치도록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 바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연평해전 고 한상국 상사의 아내인 ‘김한나’ 선생과 천안함생존자전우회 ‘전준영’ 회장의 도움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필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보물보다도 더 귀한 큰 선물 하나를 받게 됐다.

독자분들께 미리 말씀드린다.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6.25전쟁이나 백두산함 최영섭 대령에 관련된 얘기가 아니라, 그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반드시 세상에 알려져 할 대한민국의 근대사를 관통하는 한 인물에 관한 것이다.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한 인물(남욱)을 만나다!

최영섭 대령을 만나면 묻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도 많았다.

하지만 필자는 단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저 듣기만 할 수밖에 없었다.

쉴 새없이 터져 나오는 전혀 듣지못한 새로운 이야기들은 필자의 입을 다물게 했고, 말씀에 묻어나는 힘에 재미까지 실린 최영섭 대령의 이야기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6.25전쟁 때의 숨겨진 이야기부터 시작해 이순신 장군의 고하도 등 이야기 하나 하나를 놓칠 수 없었고, 그런 이야기들이 철저한 자료조사에 의한 팩트라는 것에 더 몰입도가 강하게 작용했다.

‘전준영’ 회장이 인사를 드리러 그를 찾아 갔을 때, 실존인물이 자신을 찾아올 줄 몰랐다며 당사자도 가지고 있지 못한 자료들을 내어 주신 얘기를 들으면서는 탄복할 정도였다.

그의 이야기에는 힘과 위트, 해학과 재미, 그리고 그것을 증명할 자료 등 모든 게 다 있었다.

이순신 장군의 고하도 얘기가 끝나갈 즈음, 필자가 영화 만드는 사람이고 문화인이라는 말을 듣고 최대령은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리고, 그것은 필자에겐 정말 충격적이면서도 놀라운 결과로 다가왔다.

최영섭 대령이 필자가 문화인이라고 하자 꺼낸 이야기는 한 인물에 관한 것이다.

전혀 들어보지 못했고,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전하는 최영섭 대령의 이야기에 필자는 홀린 듯 빠져들었다.

그것은 한 인물의 이야기를 넘어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루는 근대사를 관통하는 한 역사적인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고, 숨겨진 문화인에 대한 기록이었으며, 살아있는 증언이었다.

그의 인생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이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다.

대구에서 빨치산으로 활약하다 스스로 자신의 몸에 총을 쏴 생존한 후 북으로 넘어가 공산당 인민군으로 활동하다가, 공산당에 환멸을 느끼고 흥남철수 때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넘어온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공인 러시아어를 살려 군정보학교에 들어가 군인으로써 러시아의 군사암호를 분석하고 번역하는 임무를 맡게 되며, 혁혁한 공과를 세운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당시 국내에 출간되는 대부분의 러시아문학서적들의 번역작업을 도맡아 하다시피 하면서 러시아문학을 국내에 알리는 매개역할을 했다.

또한, 북과 남에서 활동하면서도 꾸준히 시를 쓰기 시작한 문학가였으며, 남한에 온 이후 북한 공산주의를 비판하는 희곡을 집필하기도 했다.

그의 러시아어 실력과 필력, 그리고 인간적인 매력에 반한 당시 한국일보 사장이 그를 채용해 한국일보 문화부에서 근무를 하던 중 젊은 나이에 급사를 하게 되는데, 최영섭 대령의 증언에 의하면 당시 한국일보 사장이 자신의 전재산을 다 줄 테니 반드시 이 사람을 살려 달라고 의사에게 간청했다고 하는 일화는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당시 그는 풍족한 월급에도 불구하고 돈만 생기면 가난한 시인들과 문학인들의 생계를 걱정하며 다 퍼주다 보니 정작 자신은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렇게 남과 북을 오가며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면서도 나라에 대한 애정과 문화에 대한 사랑, 사람과 자유와 삶을 사랑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분명 울림이 크게 다가왔다.

그 사람의 이름은…. ‘남 욱’.

그의 이름을 말하면서 무한한 신뢰와 믿음을 보내는 최영섭 대령의 모습을 보았다.

세상이 다 모르고 있지만 반드시 알렸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 노령의 전쟁영웅이 보내는 시선을 차마 피할 수 없었지만, 그것보다 필자가 이 생전 처음 듣는 이름에 강한 애착과 함께 이 분을 세상에 알리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자유진영에도 문화인들의 ‘족보’는 있었다!

필자에겐 꿈이 있었다.

문화계가 완전히 좌파로 물들어 버린 이 세상에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대한민국 문화역사를 바로잡을 자유진영의 문화인들을 찾아내 말 그대로 ‘족보’를 만드는 것이었다.

영화판에서 좌파들과 싸우다 우파선언을 하고 난 후 아무런 기반이 없는 우파의 문화계를 보면서 자괴감이 들었고, 그 이후 ‘스승님’이라 부를 만한 역사적 인물이 존재했으면 하는 필자의 바람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고자 하는 열망 같은 것이었다.

물론 먼 과거에서 춘원 이광수부터 가깝게는 이문열, 복거일 선생까지 계시긴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그 ‘족보’의 기원을 이룰 상징적인 존재가 필요했다.

저들은 문화적 상징으로서의 족보들을 오래전부터 만들고 있었지만, 자유진영은 그러질 못했다.

그렇다고 저들의 족보가 대단한 건 아니었으며, 오히려 지금의 ‘듣보잡’ 같은 인물들이 많았었다.

그런 듣보잡 마저도 좌파들은 발굴하고 홍보해서 그들의 역사와 족보를 만들어 가며 긴긴 세월 지나 지금의 문화계를 장악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이제 영화와 각종 문화 컨텐츠를 통해 그 역사를 신화로 만들고 있고, 신화가 되었다.

필자에겐 그런 존재들이 필요했다.

역사는 기록하는 학자들의 몫이고, 필자 같은 문화인들이 해야 할 일은 ‘신화’를 만드는 일이다.

말 그대로 역사적 인물 형식보다는 ‘신화적 인물’로서의 족보의 기원이 필자에겐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해방기때 좌파사상이 문화인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었고, 그 안에서 신화적 인물을 찾는다는 것은 필자 개인에겐 그저 버거운 일이었다.

그렇게 필자의 꿈 하나를 포기하려던 시점에 등장한 인물이 ‘남욱’이었고, 과거의 잊혀진 인물을 반드시 발굴해야만 하는 또다른 이유가 필자에겐 하나 더 있었다.

지금 21세기에는 그 문화(산업)의 파괴력은 더욱 더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며, 특히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문화가 좌파세력의 홍위병으로 전락하며, 대중들을 선동하고 미혹에 빠지게 만들면서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시점에서 ‘문화전쟁’은 절대적이며 절체절명의 상태다.

그래서 이제라도 대한민국 역사를 관통하면서도 문화계의 방향성을 변화시켜줄 인물이 절대적으로 필자에겐 필요했고, 그것은 지금 현재가 아닌 자유진영 문화계의 ‘족보’를 이룰 기원을 대변해 줄 인물이었다. 기본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그런 필자에게 최영섭 대령의 ‘남욱’이란 인물의 존재는 희망이 되었고, 반드시 필자가 해야만 하는 사명이 되어 버렸다.

그런 필자에게 최영섭 대령은 감히 소인배인 필자가 감당하지도 못할 선물(보물)을 내어 주셨다.

반드시 세상에 알려야 할 보물을 받다.

의욕을 불태우는 필자에게 최영섭 대령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남욱 선생에 관한 자료를 내어 주셨다. 이 분이 세상에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그리고, 그 자료들을 받아 본 순간, 필자는 어떻게 해야 될 지 몰라 눈 앞이 하얘졌다.

1951년도부터 시작된 남욱 선생의 흔적들이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최영섭 대령이 그에 관해 정리한 글부터 남욱 선생이 직접 쓴 희곡과 시들이 노트와 원고지에 빼곡히 들어 있었고, 그것은 60년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주민등록증부터 신상정보, 군대기록까지 개인에 대한 자료도 다 들어있었다.

하다못해 남욱 선생이 몸담았던 한국일보 재직시절의 명함까지 세세한 자료들이 빼곡히 오래된 상자 안에 잠들어 있었다.

공산주의의 폐해를 알리는 희곡과 그런 조국을 바라보면서 느꼈던 감정들이 詩가 되어 흐르고 있었고, 세월의 흔적을 알리는 듯 누렇게 퇴색된 원고지들은 필자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가쁜 숨을 내쉬며 부서지면서 현실과의 이별을 고하는 듯했다.

그렇게 한 사람을 통한 역사의 한 부분이 힘겹게 세월을 버티고 있었다.

필자는 마음이 다급해졌고, 이 자료들의 보존을 위해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 대한 현실의 벽은 높기만 했다. 물론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고…(이 자리를 빌어 도움을 주신 강규형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그래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작업이기에 일단 일을 저질러 보기로 했다.

최영섭 대령의 안내로 알게 됐지만 과거가 없는 인물을 추적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다.

전혀 발굴되지 않았고,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더욱 그렇다.

지금까지 찾아낸 약간의 기록들을 보면 대구에서 예술인모임으로 활동했던 흔적이 있고, 그들이 소수지만 자유우파의 문화인들이란 약간의 흔적만이 엿보인다.

그 기록과 몇 가지의 흔적을 통해 충분히 시작해 볼 수 있는 꼬리는 찾아냈고, 기나긴 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이 무모한 작업에 동참하겠다는 젊은 문화역사학자도 만나 곧 시작을 앞두고 있다.

자유우파에도 문화역사가 있고, 역사적 문화예술인이 있고, 신화적 족보의 기원을 찾아가는 실마리는 그렇게 우연찮게도 대한민국을 목숨 걸고 지킨 전쟁영웅의 손에서 내게 전해졌다.

그가 내민 손과 자료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안보도, 경제도, 문화도, 사람도 ……

그렇게 그가 준 건 한 사람의 기록이나 흔적이 아닌 그 모든 것을 담은 ‘자유 대한민국’이었다.

최영섭 대령은 환하게 웃으면서 말한다.

“그 때는 내 나라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죽음을 각오하고 싸울 수 있었어. 어떻게 세운 나란데……”

문화전쟁, 그 아주 오래된 미래를 맞이하자!

필자의 좌우명은 ‘문화는 미래를 장전한 무기다’라고 늘상 말했었다.

최영섭 대령이 필자에게 주신 그 보물보다 값진 자료들은 분명 대한민국의 의식을 지배하는 문화전쟁의 무서운 무기가 될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야 될 임무(?)를 후손인 필자에게 전달한 것이다.

필자는 그 임무를 위해 해야 될 일을 하겠지만, 걱정되는 게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보수우파진영의 문화에 대한 ‘무지’ 내지는 ‘무관심’이다.

좌파들이 일제 해방기때부터 지금까지 문화를 통해 역사와 신화를 전파하면서 21세기 대한민국의 근간을 이렇게 흔들어 놓고 있지만 보수진영은 여전히 ‘문화전쟁’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안 된다 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문화는 무의식과 대중적 삶을 투영하고, 그것은 민주주의 시스템에서는 치명적이기에 문화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본의(?)아니게 역사와 신화를 버리는 것과 같다.

지금 보수진영이 이렇게 역사를 외면하고 있는 것과 신화가 사라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사람이 있을까?

우리는 이미 역사를 잃었고, 신화를 지웠으며, 스스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퇴색시켜 버렸다.

상대적으로 그래서 ‘남욱’이란 인물의 존재는 비록 오래된 과거의 인물이지만, 그로 인해 신화를 만들어 다시 한번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인물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야만 한다.

이제 영웅이 나타나길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우리가 만들어야 되는 것처럼……

그런데 지금 보수진영은 그럴 준비가 되어 있을까?

과거의 역사를 다시 세우고, 미래의 신화를 창조할 능력이 과연 보수에 존재하는가에 대한 스스로의 질문에서 필자는 아직 확답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최소한…… 미래마저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둘째는, 아주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한 인물의 흔적을 찾아 역사적으로 기록하고, 다시 그걸 신화로 만들어 국민들(대중)들의 삶 속에 투영시키는 작업은 지난한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이다.

여기서 다시 스스로에게 질문 하나를 던지게 된다.

그 지난한 시간을 버티면서 미래에 대한 시간과 자본을 투자할 사람들이 있을까?

이미 노쇠해져 남은 시간에 대한 다급함 때문에 오로지 정치에만 함몰되어 버린 올드보수들의 모습에서 조금은 더 지난한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후대들을 믿고 그 시간의 굴레를 벗어나시면 참 좋을 텐데…….

위 두가지 문제는 모두 보수진영 내부의 문제고, 이 것에 대해 기분 나빠 하실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라는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다.

그런 분들께 사죄보다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다.

“이미 여러분들이 만들어 놓으신 과거는 후대가 만들어가야 할 오래된 미래의 이정표입니다.

그러니 오래된 미래의 족보는 여러분들이 이미 만드셨던 과거의 역사입니다.

그런 역사를 미래의 신화로 만드는 작업을 위해 여러분들의 남은 시간과 자본을 투자하십시오.

후원이나 기부가 아니라 분명 이것은 ‘투자’임을 명심해 주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여러분들은 과거의 사람들이 아닌 밤하늘의 별로 빛나는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처럼 영원히 변치 않는 신화가 되어 국민들(대중)들의 삶과 무의식 속에 자유 대한민국을 일군 위대한 인물들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은 여러분들이 이미 바탕을 만들어 놓은 아주 오래된 미래의 모습입니다.

그게 미래를 되찾는 문화전쟁이며, 문화는 그래서 미래를 장전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최공재 객원 칼럼니스트 (영화감독/(주)작당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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