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회복] 반공투쟁에서 승리하여 통일대한민국 선포 때 진정한 건국은 완성된다
[대한민국 회복] 반공투쟁에서 승리하여 통일대한민국 선포 때 진정한 건국은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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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능력으로 생존의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구한말이나 마찬가지로 외세 개입이 마지막 비상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의 중국공산당 압살 정책이 강화되어 중공 해체가 진행될 경우 국제적 후폭풍에 의해 한반도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대개편이 가속화 될 것이다.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제3의 영일동맹이 이 시대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는가?

#. 대한민국 건국의 세계사적 의미

누구나 알면서, 누구도 이야기 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이 있다. 대한민국의 세계사적 의미는 공산주의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결과물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라시아 대륙을 휩쓴 공산주의의 붉은 물결을 38선에서 막아내고 대한민국을 건국했으며, 스탈린·마오쩌둥(毛澤東)·김일성·박헌영 등 세계 공산주의자 연합의 6·25 침략을 휴전선에서 봉쇄하고 대한민국을 지켜냈다.

현행 헌법 제3조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다. 하지만 휴전선 북쪽을 ‘정부’를 참칭하는 불법 반란단체가 점령하고 북한 주민을 압제하고 있다. 따라서 헌법 제 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진정한 대한민국의 건국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산치하에서 신음하는 휴전선 이북의 2,300만 북한 주민을 해방시켜 그들에게 ‘자유롭고 독립적인 개인’으로서 하늘이 인간에게 준 천부의 인권을 향유할 수 있을 때 완성된다. 지금은 통일 대한민국을 위한 준비기간일 뿐이다.

이러한 과도기를 이용하여 북한의 공산집단과 대한민국 내에 그들을 추종하는 이념적 동조자들이 집요하게 대한민국을 파괴하여 공산통일을 추진하기 위해 집요하고도 조직적인 대공세를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처럼 공산주의자들의 수십 년에 걸친 집요한 공격으로부터 국가 자존을 지켜낸 나라가 있었던가. 그러한 도전에 ‘반공’ ‘멸공’으로 훌륭하게 응전해 온 이 나라가 지금 무력 침략이 아닌 간접적·문화적 침략, 즉 합법을 가장한 폭력과 선동으로 누란의 위기에 처해 있다.

#. 제1라운드, 공산주의자들의 자유시 참변 만행

공산주의자들과의 제1라운드 투쟁은 시베리아·만주에서 전개되었다. 청산리·봉오동에서 일본 정규군과 맞서 싸워 빛나는 승리를 거둔 3,000여 명의 항일무장투쟁 부대가 그 주력군이었다. 대한독립군단으로 통합 지도부를 결성한 독립군 세력은 1921년 6월, 러시아의 자유시(현재의 스보보드니)로 이동했다. 무장을 해제한 채 들어오면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코민테른의 약속을 믿고 비무장 상태로 말이다.

김좌진을 비롯한 일부 인사들은 “공산주의자들의 말을 믿을 수 없다”며 자유시로의 이동을 거부했다. 하지만 나머지 대원들은 일본과 비밀 협약을 맺은 소련 레닌 정부와, 그들의 하수인 격인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의 농간에 속아 무기를 반납하고 비무장 상태로 자유시로 유인되었다.

1921년 6월 28일 소련 적군 및 그들과 내통한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무장세력이 청산리, 봉오동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둔 대한독립군 세력을 몰살했다. 자유시 참변이다.
1921년 6월 28일 소련 적군 및 그들과 내통한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무장세력이 청산리, 봉오동에서 위대한 승리를 거둔 대한독립군 세력을 몰살했다. 자유시 참변이다.

1921년 6월 28일, 소련 적군 및 그들과 손잡은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무장 세력이 우리 독립군을 향해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독립군은 270여 명이 사살되고 31명이 탈출을 위해 제나강에 뛰어들었다가 익사했다. 행방불명 250명, 포로 970명…. 포로가 된 우리 독립군은 이루쿠츠크로 끌려가 소련 적군 부대에 뿔뿔이 흩어놓았다.

대한독립과 해방을 위해 일어섰던 항일무장 독립군 세력은 그 주력이 시베리아 한복판 ‘자유시’라 명명된 생지옥에서 공산주의자들에게 몰살당했다. 대한독립군단을 조직했던 북로군정서의 총재 서일은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 우리 독립군이 무참하게 사살되고 해체당하는 비운을 맞게 되자 그에 대해 책임을 지고 두 달 후 밀산에서 자결했다.

우리의 항일 무장 독립군을 몰살하고 토벌한 주체는 소련 공산당과 그 괴뢰 세력인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이것이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제1라운드의 싸움은 민족주의적 항일무장세력이 뿌리를 뽑혔으니 공산 세력의 일방적인 승리로 귀결되었다.

#. 제2라운드, 중공 빨치산 vs 일·만 간도특설대

자유시 참변으로 대한독립과 해방을 위해 고군분투했던 항일무장세력은 와해되었다. 그 후 만주 일대에서 봉오동·청산리 전투와 같이 일본군 정규군 연대급·대대급 부대와 정식 전투를 벌이는 형태의 우리 독립군의 항일무장투쟁은 사실상 소멸되었다.

1930년대에 지청천·양세봉 장군이 쌍성보(雙城堡) 전투(1932년 9·11월), 사도하자(四道河子) 전투(1933년 4월), 대전자령(大甸子嶺) 전투(1933년 6월)에서도 일본군·만주군과 싸워 승리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이 전투는 우리 독립군 단독 전투가 아니라 중국 항일구국군 계열과 합동으로 싸워 거둔 것이다. 그것도 중국 항일군이 주력이고, 우리 독립군이 보조 역할을 하는 형태의 전투였다.

이 무렵 만주로 이주한 한국인들의 85%는 공산주의 물결에 휩쓸렸다. 그들은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그 산하의 빨치산 부대에 소속되었다. 1931년 만주사변이 일어나 만주국이 건국되자 그들은 만주를 침략한 일본 관동군·만주군 공격에 나섰다.

일만군이 빨치산을 체포해 보니 거의 대부분이 한반도에서 건너온 한국인이란 사실이 확인되었다. 중국공산당이 한국인을 내세워 일만군을 공격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수법을 사용한 것이다. 일만군은 대비책을 준비했다. 한국인 위주의 토벌대를 구성한 것이 1939년 3월 간도특설대의 탄생이다.

일만군은 하사관과 사병 전원이 한국인, 장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절반씩으로 구성된 간도특설대를 앞세워 대부분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중공 빨치산 토벌에 나섰다. 만주벌판에서 중국 공산당 편에 선 한국인과, 일만군 편에 선 한국인들 간에 동족상잔의 피 튀기는 대리전이 벌어진 것이다.

1939년 일만군 소속 노조에 토벌대는 간도특설대를 비롯한 7만 5,000명 병력을 동원하여 만주 일대를 빗자루로 쓸어내듯 빨치산 토벌작전을 전개했다. 그 결과 만주의 중공 산하 빨치산들은 궤멸되었다. 살아남은 300~500여 명의 빨치산들은 소련령으로 도주했다. 그 도주의 무리 중에 김성주라 불리는 인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훗날 북한 수령이 된 그 인물이다. 당초 계획보다 2주 정도 앞선 1941년 3월 19일 빨치산 토벌 승리 축하연을 개최했다(서대숙 지음·서주석 옮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 청계연구소, 1989, 25~26쪽).

제2라운드의 싸움을 계가해 보면 일만군 편에 섰던 한국인들이 중공 빨치산 편에 섰던 한국인들을 압도적으로 토벌했고, 저들의 근거지를 싹쓸이 했으니 공산 세력의 패전이 분명하다.

#. 제3라운드, 해방 공간에서 나라 세우기

만주벌판에서 중국공산당 편에 섰던 한국인들은 소련군을 따라 38도선 이북으로 들어가 북한 탄생의 주역이 되었다. 일만군 편에 섰던 한국인들은 남쪽으로 내려와 대한민국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 이념과 체제가 상이한 두 개의 나라 탄생 과정에서 아비규환의 이념 대결이 폭발했다.

소련공산당은 철저한 기획 하에 자신들이 하바로프스크에서 게릴라 훈련을 시킨 김성주 대위를 책임자로 내세워 위성 괴뢰국가를 급조해냈다. 평양의 소련군정은 국호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북한 헌법, 최고인민회의 대의원(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댕), 정부(내각)의 장·차관에 이르기까지 완전무결하게 당 중앙(스탈린)의 지시와 지령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소련군정은 남한 내의 공산당 조직(남로당)을 원격조종하여 대구 폭동, 제주 4·3사건, 여수순천 반란사건을 통해 한반도 전체를 적화통일하기 위해 격렬하게 활동했다. 공산분자들의 폭동·반란 등 아비규환의 난동을 물리치고 대한민국을 수립하고 헌법 제정, 건국 선포, 그리고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로 유엔의 승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선포는 좌익 공산세력의 방해책동을 제압하고 이뤄낸 반공의 위대한 승리였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건국 선포는 좌익 공산세력의 방해책동을 제압하고 이뤄낸 반공의 위대한 승리였다.

한반도 남쪽에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토대로 한 대한민국이 건국된 데는 유엔과 ‘불후의 고집불통’, 반공의 화신으로 알려진 이승만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제3라운드의 싸움도 소련공산당과 북한 공산당, 그들의 사주를 받은 남로당 등 3대 합동 세력의 대공세를 물리치고 대한민국 건국에 성공했으니 대한민국 측의 승리다.

#. 제4라운드, 6·25 전쟁

기자는 미국과 소련이 38선을 그어 남북이 분단되었다는 인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남과 북에 이념과 체제가 180도 다른 나라가 들어서서 분단된 것은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닌, 이 나라 구성원들이 숙명처럼 떠안아야 할 문제다.

1948년 8~9월, 동일한 역사를 공유하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며, 혈연으로 얽힌 집단이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에 의거하여 독립된 국가를 출범시켰다. 이것을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열망이 구성원 모두의 신념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공산집단의 침략이 개시되었다.

1950년 6월 25일 38선 북쪽에서 남한을 공격한 공산군의 지휘관들 중 85%는 중국공산당의 인민해방군에 소속되었던 조선족들이었다. 인민해방군 소속 3개 사단이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의 비밀 합의에 의해 북한으로 건너와 북한 인민군복으로 갈아입고 남침의 선봉에 섰다.

공산 침략을 최일선에서 진두지휘한 세력이 중국공산당 산하 빨치산 부대(동북항일연군), 소련군 88특별정찰여단 소속의 한국인 공산주의자들이었다. 그들과 맞서 대한민국을 구해낸 지휘관이 백선엽·정일권·김백일·박정희·김종호·임부택·김정렬 등등이다. 절대다수가 일본 육사·만주 군관학교·일본 학병·중국 국민당군 출신이었다.

만주에서 중국공산당 편에 섰던 한국인과, 일만군 편에 섰던 한국인들의 피가 튀는 동족상잔의 비극이 한반도에서 또 다시 비슷한 형태로 진행된 것이다. 저들은 소련·중국 공산당의 후원과 지원을 받았고, 대한민국은 미국을 위시한 유엔의 후원을 받아 싸웠다. 싸움터와 그들이 입은 군복과 무기, 후원세력은 달라졌지만 본질은 동일했다. 공산세력의 남침 대공세를 휴전선에서 막아내는 데 성공했으니 이번 싸움도 대한민국의 판정승이다.

#. 제5라운드, 소위 ‘촛불혁명’ 이후

현행 헌법 제84조는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는 내란 또는 외환의 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파면되었다. 그가 현재 재임 중의 불법·비리 협의로 받고 있는 재판은 모두 형사사건 범죄 여부를 가리기 위한 것들이다.

그렇다면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판결에 의한 대통령 파면은 헌법과 법리상 정당했는가? 어느 누구도 이런 의문에 대한 합리성 여부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은 채 3년여 세월이 흘렀다. 그 3년 동안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는 붉은 물결에 난타당해 국민들의 합법적인 선거에 의해 공산화의 길을 걸은 ‘제2의 칠레’라는 소릴 듣게 되었다.

촛불시위로 시작하여 헌재의 박근혜 탄핵으로 결말이 난 2017년 3월 사태는 과연 합헌적이고 법치적이었는가? 우리는 아무도 이 문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여 체제변혁의 완성을 향해 격렬하게 질주하고 있다.
촛불시위로 시작하여 헌재의 박근혜 탄핵으로 결말이 난 2017년 3월 사태는 과연 합헌적이고 법치적이었는가? 우리는 아무도 이 문제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러는 사이, 문재인 정권이 출범하여 체제변혁의 완성을 향해 격렬하게 질주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파면 당한 후 들어선 문재인 정권은 헌법과 법률의 제약을 받지 않은 채 대한민국의 이념과 체제를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굳이 무리를 해 가며 헌법개정을 할 필요 없이, 현행 헌법체계 하에서도 얼마든지 사회주의화 내지 공산화를 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전법을 전 세계인들에게 중인환시리에 생중계하듯 보여주고 있다.

양동안 교수가 ‘우익은 죽었는가’를 외친 지 32년 만에,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 한미일 삼각동맹을 통한 국가안보의 담보 시스템이 붕괴되고 “평등하고” “더불어 잘 살며”, 게다가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의 급격한 이행이 완성 단계다. 무력전쟁에서 패하여 적들에게 국토를 점령당해 강요당하는 방식이 아니라, 1970년 칠레의 사례처럼 국민들의 선거에 의해, 국민들의 선택에 의해 체제변혁이 완성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또 다른 특징이다. 제5라운드는 대한민국의 완패다.

#. 생존의 길은 있는가?

현재 대한민국의 보수·우파를 표방하는 애국세력의 분열 행태로 볼 때 스스로의 의지와 능력으로 체제변혁의 광풍을 막아낼 동력 창출은 불가능해 보인다. 구한말 사회 지도부의 지리멸렬 현상과 완벽한 판박이다. 독자적인 능력으로 의미심장한 방어 세력을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체제변혁은 완성되는 것이다.

이미 김정일이 생전에 “남한을 공산화하면 1,000만 명 숙청, 1,000만 명은 해외 이민, 나머지 3,000만 명만 통치하면 된다”고 공약하지 않았던가.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이민’이란 컨테이너 박스에 적폐세력을 집어넣어 공해상 바다에 수장시키는 작업을 뜻하는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스스로의 능력으로 생존의 에너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구한말이나 마찬가지로 외세 개입이 마지막 비상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과 중공의 신냉전은 점입가경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미국의 중공 압박이 한 차원 더 강력한 수준으로 진행될 경우 중국 공산당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해지고 있다.

미국의 중국공산당 압살 정책이 강화되어 중공 해체가 진행될 경우 국제적 후폭풍에 의해 한반도는 우리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전혀 새로운 형태의 대개편이 가속화 될 것이다. 제2의 가쓰라-태프트 밀약, 제3의 영일동맹이 이 시대에 일어나지 말란 법이 있는가?

공산통일이냐, 자유민주 통일이냐를 앞둔 지금, 진정한 건국은 공산주의와의 투쟁에서 승리하여 통일대한민국 선포 때 가능해진다. 과연 우리는 이 위업을 독자적으로 해낼 수 있을 것인가?

김용삼 펜앤드마이크 대기자 dragon0033@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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