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조윤희 부산 금성고 교사

30여 년이 다 돼가는 교직생활. 고백건대 그간 만난 아이들을 모조리 기억하느냐는 질문의 답은 ‘글쎄’다. 30여 년의 세월로 덧입힌 망각은 기억이 조각내 파편으로 만들어버리긴 했지만, 상상 이상으로 아이들을 기억하기도 한다. 이름, 얼굴, 혹은 표정. 또는 아이들의 말버릇 등으로.

그 편린들 사이에 또렷하게 가슴 한 켠에 남아있는 두 아이 이야기를 소개하려 한다. 제 길 찾아가 잘 살고 있는 아이들. 사람을 사람답게 기르는 것이 인성교육이라면 견실한 직업인으로 제 길을 잘 찾아가 살게 하는 교육이야말로 인성교육이 아니겠나 싶다.

●‘게임돌이’가 프로그램 벤처 사장이 되는 인성 교육

악동 중에 악동이었다. 시쳇말로 ‘골통’이었다.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기본이고 어쩌다 깨어 있을 때는 본인이 생각해서 만만하다 싶은 젊은 선생님, 그것도 여선생님 시간에만 눈을 부스스 뜨고 수업을 방해하기 일쑤였다. 떠들지 말라고 말하면 안 떠들었다고 뻗대었고, 질문하면 입을 굳게 다문 채 무조건 묵비권이었다. 적당한 거짓말과 잦은 지각과 결석에 시비가 붙으면 따박 따박 말대답. ‘선생님은 뭘 잘하셨는데요?’, ‘학생하고 이렇게 시비를 따지는 건 교사다우신가요?’로 따지고 들었다. 대가 약한 여린 선생님은 교실에서 울고 나오기 까지 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악명높은 그 녀석의 3학년 담임이 되었다. 본인의 생각대로 휘둘려지지 않자 온갖 거짓말이 등장했다. 출생의 비밀 비슷한 이야기에 급기야는 청력이 나빠 자신은 곧 귀가 멀 것이라는 이야기까지. 상담공부를 하고 난 지금 생각하는 거지만 그 아이는 관심을 받기위한 강화작용을 해 나가고 있었지 싶다.

그러던 어느 날, 3학년이 되자 피할 수 없는 진학 상담 시간이 왔다. 3월 초의 두 번째 상담. 희망 학교, 희망 전공이 뭐냐고 물었다. 시종 대학 따위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래도 네가 정말 하고 싶은 것, 잘하는 것이 뭐냐고 묻자 컴퓨터가 좋다고 말했다. 컴퓨터 게임하고 있을 때는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다고. 컴퓨터와 씨름하는 것은 무조건 좋다고 했다. 대학은 갈 생각도 없는 아이를 보충수업이니 야간 자율학습이니 붙잡아 놓으니 공부를 하려는 아이들을 쑤시고 말 걸고 들락거리고. 오히려 공부를 하려는 아이들에겐 방해가 되었고 자신은 고역인 시간들이었다. 3월이 되어 3주쯤 지나던 날 마주앉았다.

“oo야, 학교가 재미없지?”
“예. 지겨워요. 보충 안하면 안돼요? 선생님, 야자 안하면 안 되나요?”
“네가 컴퓨터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알겠는데. 그걸 놀이로만 해서는 먹고 살 수가 없다. 네가 직업으로 그것을 연결 시키려면 남보다 잘해야 한다. 기왕이면 좋아하는 일을 잘하면 더욱 좋고. 이렇게 하자. 자습도 보충 수업도 빼는 대신에 학원 등록한 등록증을 가져오너라. 네가 졸업 전까지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3개 이상 따오기로 하고 선생님이 자습과 보충은 유예시켜주마. 어떠니?”

아이는 천국의 문턱에 서 있는 듯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고, 그날 이후 제가 하고 싶은 일에 열심을 냈다. 그 다음 주에 컴퓨터 관련 학원 등록 수강증을 제출했고, 졸업식 날까지 다섯 개의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땄다. 할 일이 생겼고 그 일에 재미가 있어진 아이는 남을 괴롭히고 시비나 걸 여유가 없었다. 생활이 반듯해져갔고 약속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는 면모를 갖춰갔다. 4년제가 아닌 부산의 <oo 정보대(2년제 대학)>에 입학을 했고 근 8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찾아와서는 선생님의 선택은 ‘신의 한 수’였다고 너스레를 떤다.
아이는 지금 컴퓨터 관련 기술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벤처회사를 차려 열심히 일하고 있다. 밥은 먹고 사느냐고 했더니 월급쟁이보다 낫다며 활짝 웃곤 한다. 그렇게 제 밥벌이를 하는 아이의 길잡이 노릇을 하며 필자는 ‘인성’을 되찾아 주었다.

●아픈 가정사를 딛고 찾아가는 ‘자신의 길’로서 인성 교육

‘선생님이 하시는 경제교실에 무조건 넣어주세요.’

담임교사의 손에 이끌려 온 아이는 작고 마른 체구에 눈만 빛나고 있었다. 말수가 적었지만 다부져 보이는 입매가 책임감이 강한 아이라는 것을 한 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1학년부터 필자가 꾸리는 경제동아리에 들어온 아이는 내신 성적의 상위권 유지는 물론이고 동아리에서 하려는 프로그램들을 무서운 속도로 해냈다. 아침마다 필자는 영자신문의 칼럼을 하루에 하나씩 읽고 그 주제를 학생들이 요약하게 하거나 토론하는 수업을 ‘0교시(아침자습 이전 시간)’에 했었는데, 3년 간 그 시간에 빠지지 않았음은 물론이었다. 부지런하고 성실했다. 고2 말 무렵, KDI에서 주관하는 경제 경시대회에 응시해보고 싶다 해서 이런저런 준비를 시켰더니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면서 준비를 했고, 특목고와 자사고 아이들까지 모두 참여하는 전국 경제경시대회에서 전국 3등(은상)을 받기도 했다. 고3이 되었다. 그 아이의 멘토를 맡고 있었던 필자는 아이의 고교시절을 오롯이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진학을 위한 추천서를 쓰게 되었다. 본인의 희망은 ‘경제학’. 이 때 비로소 3년 가까이 지도해도 듣지 못했던 아이의 ‘경제학과 지원동기’를 듣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집안 형편이 나쁘지 않았었다고 했다. 그 덕에 학원을 하시던 부모님은 욕심을 내 학원 규모를 키우려고 무리를 하셨고, 그러던 차에 IMF 위기를 맞아 부도가 나게 되었는데 집안에 차압이 들어와 ‘빨간 딱지’가 붙는 것을 보았고, 경찰이 집에 들어와 부모님과 동행하여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울기만 했었다는 이야기. 아이는 눈시울이 붉어지며 울먹이고 있었다. 1학년 초 막연히 농담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이야기로 ‘돈을 잘 벌고 싶다’고 하던 아이에게는 그런 말 못할 사연이 있었다. 성실한 학교생활, 최선을 다하는 삶에 대해 늘 이야기 했고, 수학과 사회공부를 잘하며 경제 관련 학습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경제학’을 추천해왔던 터였다. 학교생활을 통으로 알고 있던 아이인 만큼 추천서는 진실 되고 간절하게 쓸 수밖에 없었다. 감기가 잘 떨어지지 않길래 홍삼진액을 주문해서는 부모님께서 부담가지실지 모르니 절대 말씀드리지 말고 학교에서 살짝 먹으라 했더니 집에 가서 요란스레 자랑을 하는 바람에 졸업식 날 어머니께서 느닷없이 큰절을 하시겠다 하셔서 곤혹을 치렀던 일, 생일날 아침에도 새벽 댓바람에 자습실로 나오는 바람에 김밥을 사다 먹였던 일. 아이와 얽힌 잔잔한 에피소드를 지금 이 지면에 어찌 다 풀어놓으랴마는 그렇게 대한민국 최고 대학의 경제학과를 가서 공부를 하고 지금은 수재들만 모인다는 투자회사에서 밤낮없이 일하며 제 갈 길을 하고 있는 아이의 이야기가 두 번째 사연이다.

늘 진로지도를 하며 아이들에게 묻는다. 뭘 하고 싶으냐고. 아이들은 섣부르게도 좋아하는 일에 자신의 진로를 갖다 붙인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도 할 수 있다. 남보다 ‘비교우위’에 있는 ‘잘하는 일’을 할 때 그것이 직업으로 연결될 수 있으며, 남의 도움만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제 손으로 땀 흘려 일하는 견실한 직업인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의 올바른 진로 교육이 직업교육이고, 바른 자신의 길을 찾아가게 하는 직업교육이 인성교육이 된다고 생각한다. 올바른 인성은 건강한 직업인이 되었을 때 제대로 갖춰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싶다.

자신의 길을 찾아가며 교사와 쌓아올린 신뢰와 사랑이 가슴을 따뜻하게 덥히는 배려와 공감의 정서적 교육으로, 기본 생활 습관과 예절 및 도덕규범, 올바른 시민 의식을 길러내는 정의적 교육으로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진짜 인성교육이란 올바른 진로교육을 통해 이렇게 차근차근 ‘만들어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그렇게 아이들은 자신의 길을 찾아 방황하고 있다. 교사는 불투명한 미래 앞에 고민하는 아이들을 끝까지 돕는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인성교육은 멀리 있지도 따로 있지도 않을 것이다.

조윤희(부산 금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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